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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해 8월3일 오후 10시45분께 일본 제이알 오사카행 특급 열차 ‘선더버드’의 6번 차량 안. 오사카 시내에 사는 21살 여성(회사원)이 눈물을 흘리며 36살 남성에게 화장실로 끌려가는 모습이 부근에 있던 일부 승객들에게 목격됐다. 남성은 “뭘 물끄러미 쳐다봐”라고 큰 소리를 치며 유유히 여성을 화장실로 끌고가 30분에 걸쳐 성폭행을 저질렀다. 당시 6번 차량에 있던 승객 40여명 가운데 일부는 범행 사실을 눈치챘다. 그러나 남성의 위압적 태도에 눌려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차장에 신고하는 등의 긴급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고 이 22일 보도했다. 당시 열차 안에는 긴급 사태 발생 때 차장을 부를 수 있는 벨이 설치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신고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용의자는 오..
미국 동부 뉴햄프셔주에는 킴벌유니언이라는 사립 고등학교가 있다. 한국에도 이름이 나 꽤 많은 학생들이 이 곳 문을 두드린다. 놀라운 것이 하나 있다. 학생은 400명이 안 되는데 면적은 600에이커(73만평)에 이른다. 시설 역시 한국의 작은 대학교 수준이다. 매사추세츠주의 또다른 사립 고등학교 쿠싱아카데미 학생들은 모두 노트북 컴퓨터를 갖고 있다. 교사가 강의하면서 전자칠판에 적은 내용이 나중에 파일로 만들어져 노트북에 전송되기 때문이다. 사실 캠퍼스와 시설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들은 중위권 학교밖에 안 된다. 최고 수준에 있는 명문 사립학교들 가운데 이들보다 시설이 훨씬 떨어지는 곳도 많다. 중요한 점은 교사들의 자질과 태도다. 명문 사립학교 교사들 가운데는 박사 학위 소지자들이 적지 않다. 한국..
17세기 영국의 베이컨과 밀턴의 주장 이후 천부적 인권으로 발전한 ‘학문의 자유’는 대학의 역량에 크게 영향을 받아왔다. 따라서 대학의 구성원인 교수나 학생들이 당사자의 자질 등을 이유로 총장 퇴진 운동을 전개하는 등의 모습은 당연히 예측 가능한 일이다. 그러한 점에서 최근 뜨거운 감자로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고려대 이필상 전 총장에 대한 사퇴 논쟁은 그 자체가 문제가 될 일은 아니다. 당사자의 사퇴 선언에도 불구하고 이미 국민적 관심사가 되어버린 ‘이필상 사태’는 몇 가지 점에서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될 부분들이 있다. 첫째, ‘문제 제기의 시점’이다. 이필상 총장의 퇴진을 주장한 학교 안 조직이나 인사들이 총장 선거 전에 현안 문제들을 지금처럼 집요하게 문제시했느냐는 것이다. 만약 알고도 문제시하..
언제부턴가 사랑 이야기를 담은 대중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면 눈물을 흘리곤 한다. 예술과는 거리가 먼 유치한 이야기에 등장하는 상처받은 자의 마음이 쉽게 내 것이 된다. 고통에 대한 연민과 공감 때문이 아니라,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나만의 상처를 소독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오래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자신을 부정해야 할 만큼 깊은 상처가 나에게 없었던 것이다. 이기는 길만 찾아왔을 뿐 제대로 지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어릴 적부터 큰 노력 없이 주변으로부터 인정받으며 살 수 있었던 행운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상처가 내게도 찾아왔다. 늦었지만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지는 것을 배우는 과정은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스스로를 부정하지 않으면 강요당한 자기..
대한민국의 겨울은 대학 수학능력 시험과 함께 오고, 졸업식과 함께 떠나간다. 올해에도 봄이 다가오는 길목에서 약 60만명의 젊은이가 전국의 대학에 진학하고, 또 그 수만큼 대학을 졸업한다. 그 졸업생 한 사람 한 사람을 축하하고 싶다. 이 나라 제도교육의 굴레에서 ‘일단’ 해방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당사자는 아니지만, 이제까지 그들이 지내온 날들이 인간으로서의 행복한 삶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것은 말할 수 있다. 아니 그들뿐만 아니라 이 땅의 거의 모든 자식들은 행복을 언급하는 것이 사치스러울 정도의 육체적·정신적으로 ‘쫓기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초등학생에서부터 고등학생 시절까지는 모든 초점을 조금이라도(자신보다는 부모나 남들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준비에 맞춰 살아야 하고..
끊이지 않는 논문 표절 문제는 쉽게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 이는 표절 당사자들이 말하듯 그야말로 ‘관행’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관행은 부도덕함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관행과, 우리 사회의 지적 생산자들의 창의성 부족 풍토, 여기에서 비롯되는 창의성 없는 지적 생산물에 대한 너그러운 관행이 뒤엉켜 있다. ‘관행’의 문제를 조금 뒤로 미루고 창의성 부족의 문제부터 이야기해보자. 우리나라에서 연구 행위가 일종의 창조와 생산의 행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연구하고 논문 쓰는 생산 행위에 이르지 못하고 그저 남의 지적 생산물을 ‘소비’하는 ‘학습’ 행위만으로도 충분히 연구자의 자질을 갖추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입론(立論) 없이 오로지 남의 이론(대개는 다른 나라의 이론이다)을 번역하여 요약하..
개인용 컴퓨터의 광학저장장치가 시디-아르더불유(CD-RW) 드라이브에서 ‘디브이디(DVD) 레코더’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700MB짜리 공시디가 보통 장당 400~500원하는데 견줘 4.7GB(실제로는 약 4.3GB)의 용량을 저장할 수 있는 ‘공 디브이디’ 값이 500원 밑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디브이디에 데이터를 기록하는 디브이디 레코더도 내장형은 경우 4만~5만원이면 살 수 있어, 2만원대의 CD-RW 드라이브와 가격차이도 크지 않다. 디브이디 레코더는 CD-RW 드라이브 기능도 갖추고 있다. 시장에는 엘지, 삼성 등 국내 업체 제품은 물론 라이트온(Lite-on), 파이오니어, 소니, 벤큐(BenQ) 등 외산 제품들도 판매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디브이디 레코더는 크게 내장형과 외장형 제품으..
또 입시철이 돌아왔다. 하루에 4, 5시간밖에 못 자고 몇 년씩 고생 고생을 한 학생들이나 수능시험 날 경적 소리나 비행기 소음조차 조심스러워하는 어른들이나 모두 딱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데 이런 ‘수능’시험을 치르면 과연 ‘대학수학능력’이 갖추어지기는 하는 것일까? 사실 대학 강의실에서는 수강 능력과 태도가 결여된 학생들을 만나는 것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서울에서 이름 있는 대학의 사례다. 교양과목을 수강하던 한 학생이 수업 중 이랬단다. “교수님, 판서해 주세요!” 교수는 기가 막혔지만 판서를 해주었는데, 그랬더니 학생들의 적지 않은 수가 판서한 칠판을 카메라로 찍더란다. 내 경험으로 ‘판서’는 중학교 시절에 끝났다.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판서가 없는 수업에 적잖이 낯설었던 기억이 역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