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한겨레 (28)
.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예전 - 아마 1년 전쯤까지 였던 듯 - 한겨레의 책 관련 섹션지 제목이 18도 였다. 두뇌가 활동하기에 가장 좋은 온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진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과학 쪽에는 아예 무지하다보니.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거지 뭐. 평소에 사는 방이 참 그렇다. 여름엔 집에서 가장 덥고, 겨울엔 집에서 가장 춥고. 오죽하면 작년 한겨울에 술 먹다 데려온 친구를 바닥에서 재웠더니 그 다음날 애가 일어나서 입이 살짝 돌아가서 말을 못하더라는.. 그래서 늘 불평을 하고 살았다. 집 위치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고 해서. 그런데 이번에 발간된 에서 주거권 관련 글을 읽고 나니 미국 다녀온 뒤 녹두 등지의 학교 근처로 옮기려던 계획을 접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서울 한복판에 한 몸 편히 누일 공간..
이 기회를 빌려, 딱딱하고 인기 없는 교육개혁 시리즈를 실어준 에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진심이다. 앞의 두 얘기는 사교육 문제와 대학 서열화를 다루는 국민투표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도 미쳤지. 1987년 개정된 9차 헌법은 국민투표를 신설했지만, 이 권한을 대통령에게 독점적으로 부여했다. 이명박 시대! 교육 개혁을 위한 국민투표를 상상하는 나도, 제정신은 아닌 것 같다. 참, 이 기회에 독자 여러분에게 닉 데이비스라는 사람의 라는 책을 권해드리고 싶다. 영국이 학교끼리 ‘쎄게’ 경쟁 붙였다가, 어떻게 망했는지 소상히 나와 있다. 정말이지, 꼭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란다. 얼마 전에 러시아 발레단이 한국에 온 적이 있고, 그래서 그 중간에 생겨난 얘기를 좀 얻어들을 기회가 생겼다. 충격이었다. 한국 학생들..
정말이지 요즘 어른들이 “요즘 애들이 문제야 …” 운운하는 소리를 듣노라면 지겨워서 으아악! 하고 발작이라도 일으킬 것 같다. 애들이 나약하다, 힘든 일은 안 하려고 한다, 순수하게 사랑하는 게 아니라 남녀관계에서도 조건만 따진다. … 그들이 늘어놓는 ‘요즘 애들이 돼먹지 못한 이유’는 같이 주워섬기려면 한도 끝도 없지만 이왕 건방진 인간으로 찍혔고 앞으로도 찍힐 김에 불어 버리자면 사실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진심은, “요즘 (남의) 애들이 문제야 …”라는 것이다. 그렇게 열렬히 말하는 어른들일수록 자기 자식은 나약하고 곱디곱게 키우고, 힘든 일 따위는 절대 하지 않아도 되도록 온갖 안배를 하고, 순수한 사랑이니 뭐니 철딱서니 없는 소리를 늘어놓지 않고 무엇 하나 손해 보지도 말고 길러 준 부모님 마음에..
경제경영서를 펴내는 한 출판사 대표는 자신이 최근 ‘멜라민의 함정’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멜라민을 이용해 수많은 식품을 만드는 일을 줄곧 해 왔는데 갑자기 멜라민을 써서는 안 된다는 말이 나오니 앞이 노랗다는 이야기였다. 신자유주의를 근간으로 해 모든 기획을 진행해 왔지만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책 시장에서 신자유주의 철학은 사실상 종말을 고했다. 따라서 그동안 기획해 놓았던 책의 대부분을 폐기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처음부터 다시 기획해야 한다. 그러니 폐기해야 할 기획의 선인세를 크게 오른 환율로 당장 갚아야 하는 것부터가 난감하다는 이야기다. 이런 함정에 빠진 것이 어디 그 출판사 대표뿐이겠는가? 경제를 살리겠다는 대통령을 뽑아놓았지만 경제를 살리기는커녕 갈팡질팡하기만 해서 불안은 더욱 커지고..
지난번부터 나는 도쿄 아키하바라의 도리마 살인사건(아무런 이유 없이 길 가는 사람을 무작정 칼 등으로 살해하는 행위)의 고찰을 계속하고 있다. 이전에는 일본의 젊은 세대가 놓여 있는 워킹푸어(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빈곤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계층)의 문제, 미래에 희망을 갖지 못한 가혹한 노동환경의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렇지만 나는 이 문제의 배경에 또하나, 일본의 젊은 사람에게 자기긍정감의 결여라는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용의자인 가토 도모히로의 경우 그것은 학교와 가정을 포함한 교육의 문제로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가토는 중학교 때까지는 성적이 좋아서 아오모리현의 최우수 고교에 입학했다. 이 단계까지는 그가 이른바 ‘가치쿠미’(승자 그룹)에 있었다. 이 ‘성공’은 엄격하고 ..
필자는 지난주 화요일, 한 지면에 피터 페리클레스 트리포나스의 (이제이북스, 2003)에 대한 독후감을 썼다. 그 글을 쓰면서 베이징 올림픽이 무르익고 있는 이때에 이런 독후감을 쓰는 건 “부담”스러우며, “이 글은 본전을 찾기 힘들다”고 서두를 뗐다. 원고를 송고하고 비겁함과 무력감에 시달렸다. ‘올림픽 광풍’을 혐오하고자 나는 에코라는 권위에 매달렸다. 그리고 글쟁이가 크게 손해 보는 글을 쓰면 쓸수록, 사회가 조금, 아주 조금 이득을 본다는 생각도 해 보면 안 되나? 워낙 이름 석 자에 호구가 걸려 있는 터라 나는 그걸 못한다. 기호학자이며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는 우리가 눈여겨보지 않은 사이에 유럽의 축구문화를 조롱하는 여러 편의 에세이를 썼던 모양이다. 이 책은 단번에 외우기가 힘든 긴 이름을 ..
“배후는 너다”. 3일 장대비 속에 열린 촛불집회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어린 여학생의 등에 붙은 구호였다. 꺼질 줄 모르고 번져가는 촛불시위에 대해 “촛불은 누구의 돈으로 샀는지 조사해 보고하라”는 유치한 수준의 대응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통렬한 야유였다. 이날 있었던 정부의 기만적 미봉책 발표로 촛불시위가 흔들리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와 달리 이날 시위에는 2만명 이상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이번 촛불이 쉽게 꺼질 것이 아님을 알려주는 즐거운 신호였다. 그러나 진보적 정치학자로서 이번 시위에서 정말로 즐거웠던 것은 두 가지다. 우선 ‘즐거운 혁명’이다. 20세기 초의 페미니스트 운동가였던 엠마 골드만이 지적했듯이 “만일 내가 춤을 출 수 없다면 그것은 혁명이 아니다.” 그러..
오랜만에 블로그에 어떤 글을 쓸 까 고민하다가, 막상 쓰려니 자신이 없어 컴퓨터를 끄려던 차에 갑자기 불현듯 생각이 났다. 한겨레에서 이번에 하는 인터뷰 특강을 결제해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관련 홈페이지에 들어갔더니 이미 마감되어 있었다. 다행이었다. 사실 신청은 그저께 아침에 해두었지만, 3만원이라는 돈이 부담스러워 아직 결제를 하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이렇게 된 김에 결국 책을 사서 볼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3만원이란 돈이 누구에게는 큰 돈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평소에 읽지도 않는 책을 사며 돈을 써대는 나로서는 일상적으로 늘 아껴야지만 미친 책 욕심을 채울 수 있기에 특강을 신청하는 것이 부담됐다. 그래서 조국 교수가 하는 특강 - 이것은 아직 마감되지 않았지만. 역시 진중권이 스타는..
ㄱ씨. 열아홉. 외국어고등학교 졸업 뒤 대학 진학 준비 중. ㄴ씨. 서른여섯. 대학병원 원무과 근무. ㄷ씨. 스물셋. 대학 재학생. 외국유학 준비 중. 도무지 공통점이 없을 것 같은 이 사람들, 경제학 강의실에서 만났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비즈니스 경제학 강의를 열었다. 우리 주변에서 여러 가지 현상을 경제학의 틀로 설명하면서, 경제학의 기본 개념을 가르치는 강의였다. 강의 성격상, 화이트칼라 직장인들이 업무에 참고할 교양경제 지식을 얻으려 찾아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수강 신청자는 1989년생부터 1962년생까지 폭넓었다. 고등학생부터 대기업 부장급, 전문 번역가와 출판기획자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비즈니스 경제학을 배우겠다며 돈을 내고 찾아왔다. 경제학에 관심을 둔 사람들은 ..
글로벌 인재를 키운다며 영어로만 수업하는 국제학부나 국제대학원을 다투어 만든 대학들이 이제는 일반 학부에서까지 영어강의 개설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른바 ‘민족대학’을 자임했던 고려대가 전체 강의의 35%를 영어로 해 그 선봉에 서고, 연세대, 이화여대 등 사립대는 물론 서울대까지도 경쟁에 가세하고 있다. 영어강의 여부를 학과 평가와 교수 개인 업적평가 기준의 하나로 삼는 대학이 늘어남에 따라 중문과 등 외국문학과는 물론 국문과나 국사학과조차 영어 강의 개설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영어강의 가능 여부가 신규 교수 채용 요건의 하나고 신규 임용 때는 영어강의 서약까지 해야 한다. 일본에서 학위를 한 뒤 몇 년 전 임용된 한 교수는 시간표를 짤 때마다 과에서 영어강의를 맡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