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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일독을 권함. 우리들의 겨울은 따뜻했다.
간만에 김규항의 한겨레 칼럼을 읽었다. 다시금 '좌파'에 대해 논의하는 글이다. 입에서 말이 튀어나왔다. "그래서 어쩌라고." 단순한 반발은 아니다. 다만 너무 힘들어서 그렇다. 김규항의 요구사항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더 낮은 곳으로"이다. 지난 2년 반 가량 거의 전적으로 김규항의 영향 아래 관념적으로나마 지향해왔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래봤자 결국 김규항의 기준으로 보건대 "자유주의자"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회의중이다. 변명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실천 가능한" 길을 모색하는 것이 참 힘들다. 요 근래의 패배주의, 허무주의, 무기력감이란 "구원"을 바라마지않게 될 정도다. 사실 무시하면 마음은 편해진다. 다만, 내가 아는 나라는 사람은 그러지 못할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위선과 기만과의 전투를..
이 책은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는 책이다. 철학, 교육학, 사회학, 심리학, 심지어 정치학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가 없다. 어떤 주제를 어떻게 다루길래 이토록 반향이 큰 것일까. 저자인 랑시에르는 기존 학문의, 정치적 기획의, 교육적 실천의 전제조건이었던 지적 조건의 불평등이라는 테제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다. 인간은 지적으로 평등하며, 바로 거기에서 모든 것이 출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근대 계몽주의를 거부하는 20세기 후반의 몸짓보다 더 과격하고 급진적인 주장이다. 랑시에르가 이 같은 주장을 제기한 배경에는 지적 불평등의 격차 해소를 두고 지루하게 이어진 논쟁과 갈등이 있다. 진보주의와 공화주의, 과학주의적 강조와 대중 자발성에 대한 강조 등으로 대립해온 모든 논쟁의 역사 이면에는 대중은 무지하고 지적..
한 사회를 끝장내는 가장 완전한 방법은 무엇일까. 역사 속에서 실행된 적극적인 방법은 학살일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또한 학살만으로 한 사회를 끝장낼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히틀러는 유대인을 박멸하기 위해 가스실까지 동원했지만 지금 유대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없던 나라까지 만들어 죄없는 팔레스타인 인민들을 학살하고 있지 않은가? 제노사이드는 유대인의 숫자를 일시적으로 줄이는 데 성공했지만 그들의 결속력은 오히려 더 강화시켰다. 한 사회를 끝장내는 가장 완전한 방법은 바로 그 사회 성원들의 결속력을 파괴하는 것, 즉 모든 사람을 오로지 나만 아는 인간으로 만들어 만인이 만인을 상대로 아귀다툼을 벌이는 사회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만 하면 그 사회는 설사 지금 제 아무리 휘황하..
촛불은 아름다웠다. 어른들이 ‘세상이 다 그런 거지’ 뇌까리며 느물거릴 때 촛불을 들기 시작한 여중생들도, 아이들 손을 잡고 나온 사람들이 이룬 거대한 대열도, 그들이 보인 유쾌한 직접 민주주의의 풍경도. 제정신을 가진 누구도 그 아름다움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왜 이렇게 달라진 게 없을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외치고 행동했는데 이렇게 달라진 게 없을 수 있을까? 딱히 달라진 건 없더라도 사회진보의 열기가 살아나는 계기라도 되었어야 마땅한데, 오히려 다들 맥이 빠져버린 모습이니 대체 어찌된 일일까?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렇지만 다들 너무 이기적인 것 같다. 촛불 시위 피켓엔 “이명박 너나 미친 소 쳐먹어” ''내 인생 좀 펼쳐보려고 하니 광우병 걸렸네“ 등 내가 죽..
처음 촛불시위에 다녀오던 날 “쌍절곤을 가져올 걸 그랬나봐”라고 말해 일행을 유쾌하게 만든 김건(12살 먹은 내 아들)이 며칠 전 밥을 먹다 말했다. “그런데 아빠. 어른들이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뽑았잖아.” “그랬지.” “그런데 자기들이 뽑아놓고 왜 이명박만 욕 해. 어른들은 왜 그래?” “그러게. 어른들은 왜 그럴까? 그런 말 하는 친구가 또 있니?” “응, 우리 반에도 여러 명.” “그래...” 촛불 시위와 광장의 열기 속에서 우리가 잊고 있는 혹은 함께 생략하고 있는 중요한 사실은 이명박 씨는 박정희나 전두환처럼 군사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게 아니라 ‘자유롭고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는 사실이다. 지각 있는 사람은 이런 경우, 말하자면 자신의 책임이 포함된 어떤 나쁜 일이 벌어졌을 경우 두 ..
증오는 같은 편, 혹은 같은 편이 될 수 있는 사람(동지라고 쓰면 부담스러워 할 것 같아서)을 향해서는 안 된다. 이는 상황마다 달라지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렇지 않다. 특히, 잇따른 대선과 총선 결과를 보며 경악을 금치 못하여 '진보' 혹은 '좌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들이 있다. 이들을 배척하고 비난하며, 심지어 증오한다면 결과는 무엇인가? 노무현이 될 뿐이다. 차라리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를 하며, 서로를 길들이고 공유 기반을 쌓아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로부터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 내 편이 될 수 있는 사람을 추스리기에도 생각은 충분히 힘들고 각박하며, 세상에는 너무도 명백히 분노를 투사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 '잠재적'이라는 것만으로도 희망이 있다. '증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