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평 / Review (59)
.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책 없이 해피엔딩 - 김연수.김중혁 지음/씨네21북스 김연수, 그리고 김중혁.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그리고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어쩌다 한번 들어본 듯도 하지만 잘 모르겠는, 그런 사람들이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40대 초반의 철없는 소설가 둘. (소설가여서 철이 없고, 나이 먹고도 시덥잖은 농담 던지는 걸 보니 철이 없고.) 그 중 김연수는 온갖 상을 독식하며 요즘 가장 핫한 (하지만 에서 미끄러져서 요즘은 소설뿐만 아니라 각종 산문과 문화콘텐츠 창작에 매진중인) 작가, 김중혁은 본업인 소설보다는 다른 재능을 인정받으며 여기저기서 마구 자신의 재능을 낭비하고 있는 작가. 그리고 이 둘은 김밥천국의 도시, 김천에서 같이 나고 자란 초등학교 친구. 각설하고, 말그대로 죽마고우인 이 둘은 지난 200..
신의 궤도 세트 - 전2권 - 배명훈 지음/문학동네 베르나르 베르베르라는 프랑스인 소설가가 있다. 혹자의 평에 따르면, 고국인 프랑스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큰 인기를 끄는 작가다. 한 인터넷 서점에 따르면, 최근 번역 출간된 소설이 종합 top10에 6주 째 올라 있다. 필자의 기억이 맞는다면, 그가 이렇게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가 된 계기는 라는 장편 소설이었다. 인간을 "손가락들"이라 지칭하는 이 과학적 추리 탐구 소설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베르나르 베르베르라는 이름을 한국인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시켰다. 이후 베르베르는 내는 책마다 한국에 번역 출간되며 인기를 구가하였고, , , 등 수도 없이 많은 베스트셀러를 양산하며 번역 소설계의 스타 작가로 자리잡았다. 이처럼 서두에 장황하게 베르베르에 대한 소..
찬다. 때린다. 돈을 뜯는다. 빵셔틀을 시킨다. 맞는다. 놀란다. 맞는다. 준다. 갔다 온다. 고개를 돌린다. 일어선다. 다가간다. 제지한다. 놀란다. 본다. 못 본 척 한다. 나가 버린다. 2000년대 초반 강북의 한 남녀공학 중학교 2학년 12반 교실에서 늘 일어나던, 혹은 일어날 만 했던 일이다. 계급 구조는 단순했다. 착취하는 자, 착취 당하는 자, 착취에 저항하는 자, 착취를 외면하는 자. 사회의 작동 기제는 '착취'였다. 기묘한 상황이었다. 어느 교사들의 단순한 생각의 결과. 전교의 모든 사고뭉치들을 한 반에 모아 다른 애들로부터 격리시키자! 아예 층을 달리 하여 1학년들과 같은 층으로 보내버리자! 사고뭉치들로 한 반이 구성되지 않으면 다른 반 구성하고 남은 것들 다 밀어 넣어버려! 그렇게 그..
* 전문 평론가가 아닌 입장에서, 단평임을 밝힙니다. 뮤지컬 캣츠는 무엇보다도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인다. 이토록 배우들을 착취하는 뮤지컬은 처음이다. 그/녀들은 무대 위에서 각종 액션(발레, 댄스, 기계체조 등을 포함한)을 수행하는 것은 물론이고, 극중 뿐만 아니라 인터미션에까지 쉴 새 없이 관객석을 오간다. 그만큼 뛰어난 육체적 능력이 필요한데, 다행히 대부분의 배우들이 잘 소화해낸다. 그야말로 빛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하다. 이토록 재미없는 대형 뮤지컬은 처음이다. 다양한 캐릭터가 존재하지만 나열에 그치고, 이들을 하나로 엮어내는 스토리가 없다. 인순이를 광고하지만 거의 뒷방 늙은이처럼 다뤄지고(비중도, 감동도 없다는 뜻이다. 이게 여주인가?), 남주 역시 개인 넘버 하나를 제외하고는 역..
7년의 밤 - 정유정 지음/은행나무단평이다. 간만에 베스트 셀러다운 소설을 만났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이야기가 독자를 위압한다. 충분한 양은 불볕더위를 피해 일상을 벗어나길 꿈꾸는 소시민에게 적절하다. 읽는 내내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훌륭한 이야기였다. 이야기만으로 소설(가)의 가치를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재밌는 이야기가 소설의 가장 큰 매력임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가격도 다른 소설에 비하면 과하지 않으니 더욱 좋을 수밖에. 강력히 추천한다.
보통의 존재 - 이석원 지음/달 아름다운 것 p. 21. 그때 칠흑같이 어두운 속초 앞 밤바다에, 마치 물 위에 잠실야구장이 몇 개나 떠 있는 것 마냥 무섭도록 환한 불빛들이 수백 척의 오징어잡이배에서 쏟아져나오던 광경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을까. 나는 내가 본 아름다운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귀한 것. 오직 너에게만 보여주고 싶은 것. 연애의 풍경 p. 104. 난 여자가 사랑에 완벽하게 빠졌을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안다. 상대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너무나 충만해서, 기쁨에 겨워 눈은 반쯤 감긴 채 마치 꿈을 꾸는 듯한 얼굴로 누군가를 한없이 바라보는 바로 그 표정. 이석원이 행복하게 늙어가기를 바란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코맥 매카시 지음, 임재서 옮김/사피엔스21 p. 216 "얼마 전에는 여기 신문에서 몇몇 교사들이 30년대에 전국의 여러 학교에 보낸 설문지를 우연히 발견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설문지 문항은 학교 교육에서 부딪히는 어려운 문제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교사들이 발견한 설문지는 답안이 채워져서 전국 각지에서 돌아온 것이었는데 가장 큰 문제로 거론된 것은 수업 중 떠들기나 복도에서 뛰어다니기 같은 문제였다. 껌을 씹거나 숙제를 베끼는 일도. 뭐 그런 따위였다. 교사들은 답이 비어 있는 설문지를 찾아서 그것을 무수하게 복사해 똑같은 학교에 다시 보냈다. 40년 후에 말이다. 그리고 이제 답지들이 도착했다. 강간, 방화, 살인. 마약. 자살. 나는 이 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는..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 조지 오웰 지음, 신창용 옮김/삼우반 p. 159. 요약해보자. 접시닦이는 노예이고, 대개는 불필요하고 쓸모없는 일을 하는 낭비되는 노예이다. 궁극적으로 말하자면, 그에게 계속 일을 시키는 것은 그가 여가를 얻을 경우에는 위험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다. 그리고 마땅히 접시닦이의 편을 들어야 하는 교육 받은 사람들은 접시닦이에 대해 아는 것이 없고, 그 결과로 그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이런 과정을 묵인하고 있다. 내가 접시닦이에 관하여 말하는 것은 그의 사례를 고찰해왔기 때문이다. 다른 무수한 유형의 노동자에게도 이것은 똑같이 적용될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직접적인 경제 문제와 관련 없이 접시닦이의 생활에 대한 기초적인 사실들에 관하여 나 자신의 의견을 밝힌 것뿐이며, ..
김산 평전 - 이원규 지음/실천문학사 이 글은 하나의 메모에 불과하다. 이라 불리는 고전을 거치지 않고, 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우회로를 통한 김산에 대한 접근인 탓이다. 따라서 이 글은 차후, 을 읽은 뒤에 작성할 서평을 위한 하나의 서곡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구체적으로 상술하기 보다는 대략적인 개요를 잡는 데 만족하도록 하자.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지점은 김산 - 본문에서는 보통 장지락이라 지칭되는 - 의 혁명 활동 기저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휴머니즘, 즉 인간애라는 지점이다. 그가 민족주의-아나키즘-공산주의라는 사상적 유목을 거치면서도 놓지 않은 마지막 조각이 바로 휴머니즘이었다. 이는 일생 전반에 걸쳐 톨스토이로부터의 진한 영향에서 드러난다. 휴머니즘이라는 바탕과 일제에 의한 조국 강점이라..
김산 평전 - 이원규 지음/실천문학사 "나는 아나키스트야. 너는 그게 뭔지 설명할 수 있지?" ... "권력이나 권위는 인간 사회에 필요 없는 거다, 그런게 없어도 인간은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사상이지요. 다시 말하면 국가라는 이름을 걸고 자행하는 모든 전쟁, 모든 억압을 규탄하는 거지요.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려면 개인이 자아를 확립해야 하며,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금욕과 자기 억제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통치자는 민중을 법과 규율로 구속하고 그 질서 안에 가둬야 한다고 확신하지요. 그것에 반대해 아나키스트는 국가가 없고 법률이나 규율이 없어도 인간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고 그렇게 되어야 비로소 인간다운 인간이 된다고 여기지요." 어떻게 아나키스트의 이상을 현실화할 것인가. 몇 년이 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