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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책은?”이란 질문에 “단연 헤르만 헤세의 ”라고 답한 적이 있다. “아마도 중2 때 읽었던 듯하고 그때 요절했다면 ‘이 한권의 책’이 될 뻔했다”고 덧붙였다. 그때보다 훨씬 나이를 더 먹은 지금은 물론 ‘내 인생의 책’도 달라졌다. 하지만 충격의 ‘원체험’을 찾자면 아무래도 ‘수레바퀴 밑’으로 기어 내려가는 수밖에 없다. 그 시절에 읽은 세계문학전집판은 다시 구할 수 없기에 나는 라고 새로 번역된 책을 책상머리에 두고 있지만, 아무래도 ‘아래서’보다는 ‘밑에서’가 더 강한 정서적 울림을 갖는다. 그 ‘밑’은 ‘밑바닥’의 ‘밑’이기도 하니까. 더듬어 보면 은 내 독서체험의 밑바닥이다. 성냥팔이 소녀도 죽고, 인어공주도 죽었지만, 그리고 에선 허다한 영웅호걸들이 ..
요즘 당사자 운동, 그 중에서도 내가 소속된 '20대/청년'의 운동에 관심이 있다. 마침 새사연에서 관련되어 나온 글을 보아 퍼왔다. 글이 길어 접는다. 1. 우리 사회운동의 두 사각지대, 자영업과 청년 10여 년 동안 지속된 신자유주의 고용 유연화 정책으로 ‘고용 불안’은 한국 사회의 최대 문제가 되었다. 우리사회의 심각한 불안 요소인 사회 양극화도 기본적으로는 고용 불안과 고용조건 격차로 인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 사회운동에서 ‘비정규직’ 이슈가 가장 큰 문제가 되었던 것도 맥락을 함께 한다. 이처럼 고용 불안은 우리사회의 양극화를 초래한 근본 원인일 뿐 아니라 노동자 내부의 문제를 포함해서 여성, 청년, 노인, 자영업에 이르기까지 문자 그대로 ‘국민적 의제’가 된 지 오래..
이란의 4600여 만 유권자가 제10대 대통령을 뽑기 위해 투표소로 향한 지난 12일. 예멘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하던 한국인 엄영선 씨는 휴일을 맞아 독일인 및 영국인 동료와 함께 북부 사다 지역의 와디(건천)를 산책하고 있었다. 이들은 무장 세력에 납치돼 끔찍하게 살해당했다. 아직 자세한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지만 납치 직후 살해된 것으로 보인다. 예멘에서만 올해 들어 한국인에 대한 세 번째 공격이었다. 지난 3월에는 예멘 동남부 시밤 지역에서 한국 관광객을 노린 폭탄공격이 발생해 4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태 수습을 위해 급파된 정부대표단도 수도 사나에서 폭탄공격을 받았다. 엄 씨의 납치 살해 사건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누가 자행했는지, 그리고 향후 대책은 무엇인지 등 모든 것이 아직 의문으로만 남..
결국 예상대로 MBC 뉴스데스크의 앵커가 교체되었다. 이택광의 말이 매우 적절하다. "황당한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대한민국의 풍경은 언제쯤 사라질까. 무슨 조폭들 노는 나와바리도 아니고, 정권 바뀌면 줄줄이 인사들이 교체 당하는 원시사회에서 어떻게 정치가 가능하겠는가." 이건 YB의 KBS 출연금지보다 더 코미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촌놈들의 정부'가 과연 얼마나 가는지 두고보자. 살면서 마음에 드는 언론인은 솔직히 처음이었는데 매우 아쉽다. 부디 잠시 쉬었다가 다음에는 더욱 멋진 모습으로 나타나길 바란다. Ciao.
이 책은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는 책이다. 철학, 교육학, 사회학, 심리학, 심지어 정치학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가 없다. 어떤 주제를 어떻게 다루길래 이토록 반향이 큰 것일까. 저자인 랑시에르는 기존 학문의, 정치적 기획의, 교육적 실천의 전제조건이었던 지적 조건의 불평등이라는 테제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다. 인간은 지적으로 평등하며, 바로 거기에서 모든 것이 출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근대 계몽주의를 거부하는 20세기 후반의 몸짓보다 더 과격하고 급진적인 주장이다. 랑시에르가 이 같은 주장을 제기한 배경에는 지적 불평등의 격차 해소를 두고 지루하게 이어진 논쟁과 갈등이 있다. 진보주의와 공화주의, 과학주의적 강조와 대중 자발성에 대한 강조 등으로 대립해온 모든 논쟁의 역사 이면에는 대중은 무지하고 지적..
대안학교를 ‘또 하나의 특목고’라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이 많다. 중산층 인텔리들이 제 아이를 공교육의 불합리한 현실을 우회하여 대학에 집어넣는 학교라는 것이다. 대안학교가 한두 개가 아니니 그리 말할 구석이 있는 곳도 없진 않겠지만, 분명한 건 어느 대안학교도 애당초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지진 않았다는 것이다. 다 부모들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교육 불가사리’라고나 할까? 한국 부모들은 교육 문제에 관한 어떤 특별하고 의미 있는 가치도 모조리 녹여선 경쟁력이라는 하나의 가치로 찍어낸다. 그들은 어쩌다 그런 가공할 힘을 가지게 되었는가? 여러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아무래도 복지 없는 사회의 체험, 마냥 뜯어먹고 동원만 할뿐 정작 내가 위기에 처하면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사회에서 살아온 덕일 것이다. 실직자..
책으로만 하는 공부를 사람들은 대개 높이 치지 않지만 적어도 대학원생의 공부라면 8할은 책으로 시작해서 책(혹은 논문)으로 끝난다(인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필독 목록에 있는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정리하고, 정리한 내용에 대해서 발표하거나 토론하는 것이 대학원생의 일상사다. 한데, 그 책은 어떤 책인가? 책의 분야가 아니라 분류를 묻는다. 책은 출판지와 쓰인 언어에 따라 국내서, 국외서, 번역서로 분류된다. 아무리 종류가 많아도 이 세 가지 범주로 분류 가능하다. 이 중 국외서(원서)를 논외로 하면, 대학원생이 읽는 책의 절반 이상은 번역서가 아닐까 싶다. 그런 추정에 근거를 대보자면 이렇다. 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에 따르면, “해마다 통계가 들쭉날쭉하지만 우리 출판물..
언니 이렇게 말하면 기분나쁠까봐 미안한데, 나 언니 볼 때마다 그냥 베타걸의 슬픔을 느꼈어요. 베타걸이 뭐냐구요? 알파걸 아니면 베타걸이지 뭐겠어. 예쁘지도 않고 아무렇지도 않은 여자들. 돈을 잘 버나, 하는 일이 무지하게 보람이 있길 하나, 주변에서 이쁨을 받기를 하나 그냥 그저 그런 여자들. 사실 언니가 왜 막돼먹어. 그런 베타걸들을 막돼먹게 만드는 게 세상 아니에요? 막돼먹지 않으면 도무지 살아남을 수가 없는데 어떡해. ▲ '막 돼먹은 영애씨' 시즌5의 영애씨 설명 누가 그러더라구요. 20대에 보수인 놈들은 금숟가락 물고 태어난 놈들이고, 50대에 진보적인 사람들은 그냥 사회부적응자라고. 씁쓸한 농담이었지만 금 숟가락 안 물고 태어난 여자들, 예쁘지도 않고 잘나지도 않은 여자들이 살아남는 마지막 길..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했다. 내 기억에는 여전히 그를 처음 만났던 날이 선연한데, 벌써 열네 살이란다. 더는 엄마 손을 놓칠세라 종종걸음치던 어린애가 아니란다. 아이가 주먹을 옥쥐고 눈을 부릅뜨고 말대꾸를 하기 시작했다. 몇 마디 잔소리에 식탁에 컵을 탕탕 내려놓고, 제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린다. 몸의 성장 속도를 따라 좇지 못하는 마음, 치기와 혼동되는 미숙한 열정, 시시때때로 회오리바람처럼 그를 휘젓는 불균형한 욕망까지 … 아, 바야흐로 질풍노도, 주변인, 이유 없는 반항의 사춘기가 왔다. 전국의 사춘기 아들딸을 둔 엄마들과 함께 이 고통의 축제를 만끽하리라! 그러니 이 조숙한 아이들의 초등학교 졸업식 풍경이 부모세대와 전혀 닮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다. 엄마가 사진을 찍어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