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ㄴ 칼 폴라니, <거대한 전환> (9)
.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중상주의하 영국에서 노동을 조직하는 법령으로는 직인법과 구빈법이 있었다. 1563년에 만들어져 1795년까지 존속하며 국가 가부장주의를 대변했던 직인법은 전국적 노동 조직의 대강을 규정했다. 구빈법은 몸이 성한 빈민으로 하여금 지방 차원의 행정을 담당하던 교구의 통제에 따라 노동하도록 규정함으로써 이를 보충하였다. 빈민 구호는 지대 수입에 근거해 모든 이들로부터 징수된 빈민 구호 지방세rates를 통해 조달되었다. 참고로, 빈민이란 토지에 기반한 계급 외 전체라 할 수 있는 일반 민중과 사실상의 동의어로써 구호 대상 극빈자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까지 포괄하는 개념이었다. 그런데 직인법과 구빈법이 합쳐진 노동법Code of Labor 체계는 전국적 노동을 가능하게 했지만 지방적 구호를 야기하는 등 일관성이 ..
18세기 사회는 시장의 부속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 저항했다. 대표적인 예로, 스피넘랜드 법Speenhamland Law은 영국의 농촌에서 노동 시장이 형성되는 것을 그 법이 제정된 1795년부터 1834년까지 막아냈다. 이 법은 모든 민중들이 앞 다퉈 자유 노동시장의 등장을 요구할 때까지 존속하며 시장경제의 자기조정을 방해했다. 스피넘랜드 법 이전부터 노동이 토지나 화폐보다 늦게 시장에 상품으로 나오도록 막았던 법이 바로 1662년에 제정된 정주법인데, 이로 인해 농촌 노동자들이 교구에 묶임으로써 전국적 노동 시장의 형성이 1795년까지 늦춰졌다. 그런데 전통적인 국가 가부장주의의 노동 조직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노동자의 임금을 최소 수준에서 보조하는 ‘수당 체계’를 도입하는 스피넘랜드 법이 전국적으..
19세기의 시장경제가 등장하기 이전의 시장은 분명 사회 체제에 흡수되어 있는 경제 체제의 일부에 불과했고, 시장 역시 자기조정은커녕 중상주의 이후의 국가 규제를 통해 전국적으로 확대될 수 있었다. 시장경제의 자기조정 메커니즘은 인간이 화폐 수익 극대화를 달성하려는 존재이며 경제의 재화의 생산 및 분배가 모두 여러 가지 가격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전제한다. 한편, 모든 생산은 이제 시장에서의 판매를 위해서 이루어지는데, 그 결과 재화뿐만 아니라 노동 ‧ 토지 ‧ 화폐 같은 생산 요소 역시 시장에서 상품으로써 거래되게 된다. 그리고 각각의 가격은 임금 ‧ 지대 ‧ 이자라고 불리어 각각의 생산자의 소득이 된다. 그리고 시장만이 경제 영역을 담당하는 권력이어야 하고, 정부의 정책과 법안은 시장의 영역을 침..
(물물)교환이라는 경제 원리는 이것을 전담하도록 만들어진 시장이라는 제도 - 기존 사회 제도와 달리 별도의 경제적 제도 - 를 통해서만 기능할 수 있다. 반면, 다른 세 가지 경제 원리는 기존 사회 조직이나 제도를 활용할 뿐이다. 이 같은 시장의 특징은 그것이 경제 체제를 장악하는 순간 사회 조직마저 압살하는 결과를 낳는다. 사회 관계에 묻어 들어가 있던 경제가 도리어 사회 관계를 그 안에 묻어 들어가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 결과, 기존에 고립적으로 존재하던 시장들이 뭉쳐져 하나의 단일한 시장경제를 형성하고, 이것이 자기조정시장이라는 담론을 만들어내게 된다. 이는 당대인들에 의해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졌지만 실은 사회에 인위적으로 밀어 넣은 것에 불과했다. 원시 사회에서는 화폐 없이도 시장이 존재..
시장경제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그 전제부터 알아야 한다. 시장은 후기 석기 시대 이래로 항상적으로 존재해왔지만, 그 역할은 사회 내에 묻어 들어간embedded 부수적인 것에 그쳤다. 애덤 스미스가 강조했던 것처럼 인간의 노동 분업은 교환하려는 성향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비록 19세기 이래 인간의 그러한 경향이 횡행하게 되었을지라도, 그 이전의 인간 세계는 그렇지 않았다. 초기에는 애덤 스미스의 주장을 좇던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그들의 대전제가 역사적 근거에 의해 반박 당하자 자연 상태의 인간의 성향에 대한 관심을 사장시켜 버렸다. 사실 지난 2천여 년 간 인류의 진보는 대부분 정신적인 것에 그쳤고, 경제학적 발전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경제는 인간의 사회적 관계 속에 파묻혀서 존재해왔고, ..
변화의 방향이나 속도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라면 당연히 그 변화는 억제되어서라도 공동체의 안녕을 위협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19세기 영국에서 자유주의와 공리주의에 의해 추동된 경제 성장의 옹호와 공동체적 통제에 대한 비난은 이 같은 상식을 소멸시켜 버렸다. 이 같은 경제적 자유주의의 오류는 산업혁명보다 이미 훨씬 더 먼저 경제 개발 논리를 앞세워 삶의 터전을 파괴한 바 있는 - 비록 궁극적으로는 사회 전체의 부를 증대시켰을지라도 - 종획운동enclosure를 살펴보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종획운동 같은 경제 개발은 결국 보상효과 - 농업이 목양업이나 양모 제조업으로 바뀌고, 서비스업이 자동차제조업으로 바뀌는 등의 과정을 걸쳐서 형성되는 장기적 균형을 가능케 하는 것 - 를 가져왔지만 이는 시장경제의..
20세기 초반의 세계 경제 해체와 1930년대에 이루어진 문명의 거대한 전환을 잇는 연결고리인 국제 금본위제의 붕괴는 단순한 경제 제도의 몰락이 아니었다. 이는 단지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잘못된 믿음에 불과했다. 사실 1930년대에 일어났던 사회적 전환에 선행한 1차대전 이후의 전세계적 혼란은 신세기적 변화라는 당시의 믿음과 달리 19세기 문명의 붕괴를 종결짓는 것이었다. 1900년 이래의 세계 경제의 붕괴는 정치적 혼란을 야기했고, 이것이 세계대전으로 폭발했다. 게다가 전후처리를 위해 도입됐던 베르사유 조약은 패전국들의 일방적 무장 해제를 강요하며 세력균형 원리의 복구를 완전히 불가능하게 만들고 말았다. 이런 현실에서 국제연맹의 존재는 유명무실했다. 한편, 국제연맹은 국제 통화 체제의 복구를 통한 각국..
19세기 문명의 붕괴에 가장 결정적인 것은 국제 금본위제의 소멸이었다. 세력균형 체제, 자기조정시장, 입헌 국가라는 다른 세 가지 기둥과 같은 제도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국제 금본위제의 붕괴로 말미암은 19세기 문명의 몰락은 막을 수 없었다. 사실 19세기 체제의 모태는 자기조정시장이었다. 국제 금본위제는 국내적 자기조정시장의 국제적 버전이었고, 세력 균형 체제는 이에 의존하는 상부구조였다. 입헌 국가 역시 자기조정시장의 피조물이었다. 그러나 자기조정시장이라는 개념은 그야말로 유토피아적이었다. 따라서 실현 불가능한 개념을 실현하려고 한 결과, 파국은 처음부터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사실 이처럼 하나의 개념을 통해 문명의 붕괴를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는 그야말로 억지로 보이기 쉽다. 다양한 요인의 상호작용으..
제목과 같습니다. 최근 홍기빈 씨에 의해 재번역출간된 칼 폴라니의 을 장별로 제가 요약발제한 발제문을 업로드할 계획입니다. 친구와 함께 소규모로 세미나 하면서 쓴 것이라 전문 연구자 수준은 되지 못하겠지만, 폴라니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하시다가 책의 방대한 분량이나 난해함 때문에 곤란을 겪고 계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공개하고자 합니다. 다른 글들과 마찬가지로 상업적 이용은 불허하나 학문적 혹은 실천적 관심에서 퍼가시거나 하는 것은 출처를 밝혀주시고, 제게 댓글로라도 알려주시면 허용합니다. 이미 다 써놓은 것들을 일부 오탈자 수정을 해서 올리는 것이라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만,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네요. 여튼, 즐거운 공부 되시길 바랍니다. 덧. 의 목차를 첨부합니다. 제1부 국제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