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잡설 (279)
.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엄마의 잔소리를 듣는 기분이다. 룸메이트가 내게 하는 말의 절반은 'study'다. 너 공부하고 있니? 공부하니? 공부할거니? 공부했니? 와, 공부할 거면 자기나 하지 이렇게 자기 스트레스를 나에게 전염시키나. 와, 즐겁게 놀고 이것저것 생각도 하고 새벽 세시에 들어왔는데 들어오자 마자 룸메이트라는 녀석이 저딴 소리나 하고 있으니 갑자기 열이 확 뻗친다. 이래서 한 학기 같이 살 수 있을까.
살면서 이런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오기 전에는 물론이고, 지난 주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그만큼 예상치 못했던 일이기에 조금 당혹스럽다. 요체는 이렇다. 먼저, 영어로 말하기가 두렵고, 비한국인에게 다가가는 것이 두렵다. 영어 말하기에 대한 두려움은 고등학교 때 시작된 듯하다. 학교에서 명목적으로나마 영어의 상용화를 추구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영어를 사용했었다. 그 때, 주변 남자애들이 나의 영어 사용을 놓고 시비 혹은 지적을 했었다. 일대일이라면 서로 얘기를 했겠지만 - 싸웠을지도? - 상대 쪽이 대부분 다수다보니 아무래도 심정적으로 위축됐었다. 한번 떨어지기 시작한 자신감은 영 회복될 기미가 안 보였다. 영어 공부를 한지는 벌써 16년째인 것 같다. 엄마 손에 이끌려 ..
지난 주에 이 곳에 와서 처음으로 운동exercise을 했다. 농구를 했는데, 문제는 농구 자체가 아니라 체력. 반 년 정도 거의 운동을 안 해서인지, 원래 체력이 약해서인지 이 곳에 와서 처음으로 스스로가 싫어질 정도였다. 그래서 거금 140$를 내고라도 체육관에 등록하기로 마음 먹었다. 오늘은 그 이후 처음으로 운동을 하러 갔다. 30분 정도 트레드밀에서 뛰고 왔는데, 조금 힘들지만 좋다. 일단 목표했던 '응어리'는 풀고 왔다. 오후 늦게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해 가슴이 답답하고 안절부절 못 하고 있었는데 말끔하게 해결! 애초에 이 곳에 오면서 세운 목표 중에 하나가 건강해지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언제부턴가 달리는 체력을 잠으로 해결하곤 했었는데, 이젠 좀 벗어나고 싶다. 하고 싶은 일도 조금씩 명확해..
2시간 째 화가 가라앉질 않는다. 문제는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는 거. 추측 가능한 원인은 마지막에 들은 수업에서 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건지 모르겠다는 거랑 저녁 약속이 있었는데 상대가 번호를 잘못 알려줘서 못 만났다는 거랑 엄마가 지난 번에 보냈던 메일을 또다시 보내달라고 해서 짜증이 났다는 거 정도. 사실 다 별거 아니다. 근데 왜 이리 가라앉지가 않지. 그냥 오랫동안 쌓인게 폭발한건가. 여기 와서 처음 이러는 듯도. 사실 4시 정도까지는 일이 잘 풀리고 있었다. 수업도 괜찮게 들었고, 드디어 한국어 책들도 마음껏 빌렸고 (!), 날씨도 정말 좋았고. 상황이 급변해서 그런가 영 기분이 풀리질 않는다. 심지어 저녁을 먹고 와도! 왜 이러지. 아무래도 운동을 다녀와야겠다. 땀 좀 빼면 기분이 나아지겠..
아침 8시부터 저녁 9시까지 6종류의 수업을 10시간 동안 들었더니 멍하다. 뭘 했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시간이 잘 간다. 이번 주 고비는 좀 넘어간 것 같으니 내일은 정신을 차리겠지.
한국에서 가져온 책을 아껴 읽고 있습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와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을 가져왔는데, 네 달 가량 지내면서 한국어로 된 책이 보고 싶을 때마다 펴보고 있어요. 평소에 읽던 식으로, 심심할 때마다 읽다보면 금세 다 읽어버릴 것 같아서 하루에 네댓페이지씩 아껴 읽고 있어요. 미국까지 와서 영문 책도 안 보고 청승이지만, 어쩌겠나요. 사람이 쉽게 바뀌지 않는 걸. 지난 주에 도서관에 갔어요. 아직 '유사 학생증'이나마 나오지 않아 도서관 본관에는 출입이 안 되어서 'East Asia Library'란 곳에 갔어요. 작년인가 재작년에 새로 지어진 건물인데, 말 그대로 동아시아와 관련된 책을 집중적으로 소장하고 있죠. 지난 목요일에 처음 들어갔는데, 신간 코너에 지승호가 인터뷰..
살다보면 주제에 과분하게 연애 상담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오늘도 한 소년의 이야기를 들으며 떠오른 생각은 그거다. 홀로서기. 연애를 하려면, 그 전에 혼자 제대로 설 줄, 완전히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홀로됨을 견딜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전제되지 않는 한, 연애는 끊임없이 실패하고, 짧게 끝날 수 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서로 상처를 쌓아가는 삶의 궤적이 될 수 밖에 없다. 사실 이 말은 당장 절실한 사람에게 매우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고, 아무런 합리성이 없게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시간은 알게 해준다. 결국 둘이 만나서 행복하려면, 각자 미리 행복했어야 한다는 것을. 그와 그녀의 사랑이 부디 끊어지지 않기를 기원한다.
'한국인은 당파성이 강하다.' 오래 전부터 '한국인의 민족성' 어쩌구 하면서 자주 논란이 되던 말 중 하나다. 식민사관이라는 비판부터 '한민족'이라는 개념의 허구성을 지적하는 주장까지 다양한 주석이 달려있기도 하다. 이런 말이 나오게 된 가장 주된 배경은 역시 '한국인'이라고 지칭되는 일련의 인간 집단이 같은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모이는 걸 매우 몹시 엄청 너무나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임은 단순히 뚜렷한 공통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소한 지점 하나의 교차로 인해 이뤄지기도 하지만, 대부분 강력한 집단적 이해관계 혹은 친소관계를 공유하는 보다 세분화된 집단으로 변화한다. 학생의 입장에서 이 같은 일반적인 현상을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공간은 기숙사다. 단순히 하나의 건물 안..
어릴 적, 사립 탐정이 되고 싶었다. 추리 소설의 영향일까, 머리를 써 문제를 해결하는 이들의 모습이 그렇게도 멋져보였드랬다. 셜록 홈즈가 싫어졌다. 그는 무언가 오만하고 정의로운 체 하지만 차가웠다. 차라리 까칠하지만 따뜻한 아르센 뤼팽이 좋았다. '공권력'이라는 이름이 아닌 자신의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뤼팽에게 끌렸다. 경찰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촌스러운 파란색 제복을 입고 교통 정리나 하는 것을 꿈으로 가지기에는 어렸다. '경찰청 사람들'에서 보이는 것처럼 우락부락해서 범죄자들한테 욕이나 하고 싶지는 않았다. 민중의 지팡이, 라는 표현이 참 좋은 건줄 알았다. 민중의 뜻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된 것은 대학 들어와서 이지만, 그저 지팡이 역할을 한다기에 호감이었다. 고생하는 것을 알기에 애틋한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