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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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 / Zenol

090126 도서관

zeno 2009. 1. 27. 12:53
  한국에서 가져온 책을 아껴 읽고 있습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와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을 가져왔는데, 네 달 가량 지내면서 한국어로 된 책이 보고 싶을 때마다 펴보고 있어요. 평소에 읽던 식으로, 심심할 때마다 읽다보면 금세 다 읽어버릴 것 같아서 하루에 네댓페이지씩 아껴 읽고 있어요. 미국까지 와서 영문 책도 안 보고 청승이지만, 어쩌겠나요. 사람이 쉽게 바뀌지 않는 걸.
  지난 주에 도서관에 갔어요. 아직 '유사 학생증'이나마 나오지 않아 도서관 본관에는 출입이 안 되어서 'East Asia Library'란 곳에 갔어요. 작년인가 재작년에 새로 지어진 건물인데, 말 그대로 동아시아와 관련된 책을 집중적으로 소장하고 있죠. 지난 목요일에 처음 들어갔는데, 신간 코너에 지승호가 인터뷰 한 '장하준, 한국경제 길을 말하다'가 있더군요. 한국에서 다 못하고 와서 아쉬운 것 중 하나가 장하준의 책을 결국 한 권도 채 다 못 읽고 왔다는 거였던터라 열람석으로 가져다 읽었어요.
  그동안 불명료하던 머리가 트이는 기분이더군요. 평소에 생각했던 것들을 깔끔하게 정리해준달까요. 인터뷰를 잘 진행한 지승호의 능력도 탁월하지만, 장하준이 이해하기 쉽게 말을 하더군요. 그 책 역시 아껴 읽었어요. 이 곳에 어떠한 한국어 책이 얼마나 있는지를 모르니까요.
  그리고 오늘 공강 시간에 그 곳에 다시 갔어요. 아쉽게도 지승호의 책은 사라졌더군요. 그래서 아쉬움도 달랠겸, 도서관 전체를 대강 돌아보며 한국어 책을 탐색했어요. 쉽지 않더군요. 일어와 중어 책은 무수히 많은 반면, 한국어 책은 흔치 않더라구요. 그나마 '한국학'에 필요한 책들이 대부분이라 가볍게 읽을 생각인 제게는 그다지 적합치 않았지요. 이 곳에서 '승정원일기'를 보고 싶진 않거든요.
  한국 소설이 보고 싶었어요. 평소에 한국에서 학교 다닐때도 주로 한국 소설들을 사서 혹은 빌려서 통학하는 지하철 안에서나 공강 시간에 읽곤 하는데 여기서는 그렇게 못하니 뭔가 빠진 것 같거든요. 돌아다니다 보니 박노자, 강준만, 이덕일, 손석춘 등 눈에 익은 몇몇 저자들의 책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조금 안도하게 되었지요. 도서관 출입증만 만들면 대출이 될테니 더 이상 한국어 책을 아껴 읽지 않아도 되는구나. 하지만 소설은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계속 찾아 다녔죠. 사실 최근간들이 있었으면 했지만, 아쉽게나마 20세기 후반 작품들만 있어도 괜찮을 것 같았으니까요. 30여 분을 헤맸을까, 포기하려던 즈음에 드디어 눈에 들어오더군요. 최근간은 작년 공지영의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부터 오래전 책까지 있더라고요. 책이 아주 많지는 않았어요. 일어나 중어 책에 비하면 정말 미미한 수준이었죠. 하지만 대부분의 책들이 새 것인터라 마치 제 자신의 서가를 가진 것처럼 행복해지더군요. 이 곳에서 있는 동안 이 책들만 다 읽어도 그간 항상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 같아 기갈을 느끼던 스스로의 욕심을 조금은 채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오늘은 며칠 만에 날씨도 좋았던터라 이러다가 문학청년의 꿈을 다시 갖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사실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청승을 떨어야 하나 싶기도 해요.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맨날 노트북 앞에 들러붙어 앉아 사람들 블로그나 수시로 들어가보며 헤맬텐데요. 차라리 그 시간에 괜찮은 소설과 사회과학 서적들을 읽는 것이 낫겠지요? 같은 프로그램으로 온 사람들은 무슨 책을 읽냐며 도서관 출입증도 안 만들겠다고 하기에 무언가 나 혼자 또 튀려고 하는건가, 싶기도 하지만 하고 싶은 건 해야죠. 25달러 짜리 비싼 출입증이라고는 해도 책 3권만 읽어도 본전은 하는 거잖아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