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잡설 (279)
.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RSS 리더를 사용하는 탓에 등록해 놓은 블로거들이 올렸다가 지우거나 비공개로 돌려놓은 글들을 보게 된다. 오늘은 요즘 한창 시끄러운 목수정 문제를 놓고 개인적으로 상당히 좋아하는 한 사람이 입장을 표명한 글을 보았는데, 직접 웹페이지로 들어갔더니 존재하지 않는다고 나온다. 평소에 댓글이나 방명록도 허용하지 않는 사람이라 그것만으로도 논란이 자자한데 무슨 일인지 궁금하다. 사실 이번 일 관련해서 노정태가 댓글을 지운다고 욕을 먹던데 그는 이미 오래전에 주인의 판단에 따라서 댓글을 지울수도 있다고 명시해 놓은 터다. 자, 여기서 윤리의 문제가 도출된다. 일종의 공공성을 갖는 블로그라는 공간에 이미 한번 공개한 글을 비공개로 바꾼다던가, 타인의 댓글을 지우는 것은 과연 '개인의 자유'라는 말로 모두 옹호될 ..
블로그라는게 생각보다 굉장한 것 같다. 하다 보니 소위 '논객'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링크를 하나씩 늘려가고 있고, 그/녀들의 글을 읽으며 생각하게 되는데 이에 일일이 답하는 것을 의무로 여기자니 너무 많고, 안 하자니 스스로 정체되는 것 같다. 특히, 한국에서는 이슈가 너무나도 쉽고 빠르게 바뀌고, 이에 대한 사람들도 제각각의 의견을 갖고 있기에 따라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듯하다. 게다가 성격상 어떤 이에 대한 다른 사람의 평에 쉽게 흔들리기도 하고, 감정적으로 애호하는 것과 이성적으로 비판해야 할 필요성을 잘 분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종종 헛다리를 짚기도 한다. 심지어 '글'로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까지 강하여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이렇게 장황하게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최..
벌써 10여 년이 되어 가는 일이다. 소위 고래를 잡았던 것이. 요 근래 허지웅의 글 중 가장 웃겼던 '포경수술의 음모'라는 글이 저 아련한 기억을 끄집어 냈다. 포경은 내 또래 한국 남자들의 대부분이 거친 신성한 제례다. 굳이 비율을 따지자면 한국 남자 중 연애 못해 본 남자가 고래 안 잡은 남자보다 많지 않을까. 사실 요즘 들어서는 그다지 필요하지도 않고, 허지웅의 글과 그에 딸린 댓글들에 따르면 무려 318가지(!)의 폐해가 있는 포경수술은 겉만 번지르르하되 속은 아직도 '후진국'을 벗어나지 못한 한국 사회를 그대로 반영하는 걸지도. 개인적으로 허지웅처럼 극적인 경험은 없었다. 발기, 몽정, 자위의 '3위일체'가 시작되기 이전인 중1때 포경을 했던터라 허지웅처럼 달밤에 창 밖을 보며 애국가를 부르는..
요즘 이 블로그에 들어오는 사람이 하루에 약 3,000여명 정도 된다.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 달 총합 방문자수였는데 말이지. 이유를 잘 모르겠다. 소위 말하는 파워블로거들을 보면 글의 파급력에 비례하여 댓글이 달리는 데 솔직히 그것도 아니고, 다른 상업용 블로그처럼 광고나 선정적인 내용의 포스팅을 올리는 것도 아닌데. 이걸 보면 방문자 수는 참 덧없지 싶다. 어제 197000명 가량에 달하는 것을 보고 '20만명 방문 기념 이벤트'를 해야지 싶었는데, 하루 사이에 훌쩍 넘어 버렸다. 그래서 이벤트는 다음 기회로. 혹시 방문자 수가 이렇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이유를 아시는 분은 댓글 부탁드림.
근황이기도 하고 알림이기도 하고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하다. 보다 할 이야기가 많았는데 글 자체의 완결성을 위해 곁가지는 쳐내야 할 듯 싶어 이 정도만. 또 다른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요즘의 고민은 가깝게는 한국에 돌아간 이후의 일, 멀게는 대학교 졸업의 일이다. 그리고 이 둘은 결코 떨어져 있지 않다. 이번 방학에는 참여연대 인턴을 할 생각이다. 물론 내가 하겠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크게 못할 이유는 없지 않지 싶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회 운동'을 경험하고 싶어서. 물론 참여연대 인턴을 해야지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자격으로 각종 사회 운동의 현장에 나갈 수도 있고, 학교의 사람들과 같이 갈 수도 있고, 다른 단체를 찾아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굳이 저런 생..
목수정이라는 글쟁이가 있다. 작년에 이런 책을 써서 알게 된 사람인데, 이번에 레디앙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한국이 낳은 천재 음악가'로 꼽히는 사람 중 한 명인 정명훈이라는 사람의 내면에 대해 알 수 있는 글이다. 물론 '주관적'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애초에 '객관적'이고자 쓴 글이 아니지 않는가. 예술가와 양심은 사실 다른 차원의 문제다. 둘이 함께 간다면 좋겠지만, 병립하지 않는 경우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정명훈의 태도에 대한 비판은 '지휘자 정명훈'이 아닌 '인간 정명훈'에 대한 비판이 되어야 한다. 물론 그 내용은 단순하다. '멍청이.' 이 비판은 단순히 그를 인격적으로 폄훼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의 닫힌 냉전적 사고, 인간적 저질성, 걸맞지 않는 귀족 의식 등에 대한 비판이..
..... 사람을 냉혹하고 비정하게 만드는 것은 아주 간단해. 몇십 년이 걸릴 것 같지? 최소한 오륙 년은 걸릴 것 같지? 그렇지 않아. 이삼 년이면, 빠르면 육 개월이면...사람에 따라서는 집중적으로 두세 달이면 끝나. 어떻게 하느냐면, 그를 바쁘게 하는거야. 당장이라도 천년 동안의 잠에 곯아떨어지고 싶어할 만큼 피로하게 하고, 그러나 쉬고 싶을 때 쉬지 못하게 하는 거야. 쉬더라도 고통스러울 만큼 아주 조금만 쉬게 하고, 깨어 있는 시간 동안 끊임없이 굴욕당하게 하고, 자신을 미워하게 하는 거야. 그렇게 수백만의 불행을 만들어내는 도시, 수백만의 피로한 인간들을 뱉어내는 도시에 대한 영화야. 제목은 '서울의 겨울'이라고 붙이겠어. 겨울뿐인 도시..... 친구의 블로그에서 이런 인용구를 보았다. 아, ..
그간 나름 많이 노력해 왔는데, 이렇게 무너질 순 없다. 남들과 다를 줄 알았으면서 선택한 것인만큼 힘들어도 이겨내야 한다. 지금까지 잘 해 왔으니, 나머지 절반도 잘 할 것이다. 이미 느끼지 않았던가. 한 발짝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을. 높이나는 새가 멀리 보는 법이다. 이래서 밤이 문제다.
냉소주의는 비겁함의 또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어느 한 곳에도 정체성을 고정시키지 못한 채 부유하고 있는 탓이다. 일례로, 집단 속에서는 개인을 지켜야 한다며 버티는 한편, 파편화된 인간들 사이에서는 공동체의 복원을 주장한다. 결국 개인주의자도 아니고, 공동체/집단주의자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에서 균형 잡기를 시도하는 탓에 냉소라는 '제3의 길'로 빠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스스로 인간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항상 헷갈리곤 한다. 어쩔 때는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내다가도, 어느 새 팩 토라져 인간들을 저주하고 욕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양 극단에서 진동하며 살아가는 바, 늘 그 종착역은 적당한 '거리두기'가 되기 일쑤다. 이런 개인의 성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