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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케빈 베이컨'이나 '에르도스'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세상은 경험적으로 참 좁다. 오늘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고등학교 후배를 만났다. 서로 얼굴을 확연히 알아본 것을 보면 서로 아는 사이가 맞다. 처음에는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지만 - 고등학교 때 말을 몇 마디 나눠본 게 전부니까. - 이제 생각났다. 김영민군. 그나 나나 외양은 그대로인 걸 보면 - 그랬으니까 서로 알아봤겠지. - 참 한국 남자애들은 대학 가도 안 꾸미는 애들이 허다하다. 사실 이렇게 세상이 좁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말이 있다. '그건 우리가 일종의 상류 사회 - 문화적 자본을 가진 - 의 일원이기 때문이지.' 물론 이는 '상류 사회'에 속해있음을 자부심으로 여기고자 하는 말은 아니다. 그저 사실이 그렇다는 것일..
"졸업식은 급진성이 현실로부터 검증 받기 시작하는 날. 더욱 근본적이며, 더욱 유연하길. ㅎ" 한 '급진적인' 청년에게 보낸 졸업식 덕담. --- 졸업이 머지 않았다. 대학에 다니는 동안 스스로를 '급진주의자Radicalist'로 규정하게 되었다. 지금도 현실이지만, 졸업 이후 내딛는 발걸음은 더욱 현실에 가까워지게 된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Radical은 급진적임과 동시에 근본적임을 의미한다. 거기다가 하나가 더 붙었다. '유연.'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기록될 필요가 있다. 유연하되, 근본적으로, 또 급진적으로.
시간이 참 빨리 간다. 내일이면 온지 6주. 그 사이 학교에서는 09학번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단다. 반 커뮤니티에 올라온 새터 사진을 보니, 에휴, 모르는 얼굴들이 절반을 넘어가는 것을 보니, 나도 고학번이구나. '새맞이'라는 이름을 오래간만에 떠올려보니 뭔가 애잔하다. 1학년 때, 재미 없었다. 2학년 때, 힘들고 짜증났다. 3학년 때, 황당했다. 그리고 4학년. 뭐 별로 좋은 기억들은 아니었구나. 그래도 06년 겨울의 시간들이 아주 무의미했다고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니까. 하지만 내가 바라는 새맞이, 그리고 새터와 일반적인 흐름이 다른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불만을 가질 수밖에. 어차피 이젠 지나간 일이고, 아마 다시 겪을 일은 없을 것 같다. 1학년 새터에서 가장..
종강한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개강이다. 사실 힘들던 지난 학기가 끝난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긴 하지만, 생각보다 그 한 달이 짧으면서도 길었다. 하루하루가 정말 빨리 갔지만, 그렇게 30여 일이 모인 한 달은 꽤나 길었다. 하루하루를 나름 충실히 살았던건가. 이제 내일이면 본격적으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다. 지난 열흘 간은 '적응기간'이었다고 하면 될 것 같다. 아직 한국과의 단절, 과거와의 단절이 다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 어처구니 없게 사람이 6명이나 죽었는데 어찌 한국과 연이 끊어지겠는가! 그리고 블로그에 업로드할 생각인 지난 학기 레포트가 3개나 남아있다. - 어쨌든 물리적 시간의 흐름으로 인하여 개강을 하게 되었다. 장강의 물결은 도도하게나마 계속 흐..
‘한국 지성의 죽음’이란 이 글의 제목은 주말 잠결에 부고처럼 나에게 찾아왔다. 무심코 받았다가 눈을 부비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쓸 수 있는 것은 기껏 ‘나의 죽음’뿐이다. 물론 내가 한국 지성의 대표는커녕 지성 축에 끼인다고도 절대로 생각하지 않지만 ‘한국’ 지성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이 글은 그런 이유로 내가 지성이라는 가정 하에 쓰는 지극히 서글픈 개인적 유서 같은 것에 불과하다. 나 자신을 지성이라고 말하기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음은 지성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와 관련되는데, 지성을 ‘권력과 자본을 위시한 모든 권위와 압력으로부터 독립한 자유로운 아웃사이더 아마추어 자유인-교양인-全人의 심성과 실천’이라고 보면 더욱 그렇다. 지성을 이와 다르게 정의하는 예도 많지만 이 글에..
어제, 올해 마지막 노숙자 인문학강의를 했다. 괴상망측한 우익 역사교육 소동으로 시끄러운 탓만은 아니었지만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주제로 관련 영화와 예술작품들을 함께 보았다. 북한 배경의 007영화에 동남아의 집과 물소가 등장하는 것을 보고 아이들처럼 함께 웃은 것을 시작으로 서양의 동양침략을 정당화한 수많은 영화나 그림들을 노숙인들은 정확하게 보고 비판했다. 그 대부분은 그들이 생전 처음 보는 것임에도 그러했다. 아는 만큼 본다고? 아니다. 보는 만큼 안다. 아니다. 아는 게 중요하지 않다. 이해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여러 인간, 계급, 민족, 나라들이 서로 이해함이 중요하다. 올봄, 그 강의를 의뢰받자마자 즉시 수락한 것은 1970년대 노동야학 이후 그런 수업이 가장 즐거웠기 때문이다. 물론 돈 없이 말..
술 기운이 다 가시기 전에 꼭 써야겠어서 짧은 메모로나마 남겨보려고 했다. 그래서 글과 제목이 모두 조악할 수 있다. 오늘 한 수업의 종강파티가 있었다. 서울대입구역의 한 음식점에서 교수와 학생들이 만나 저녁을 먹고, 근처 술집에 가 뒷풀이를 즐겼다. 그 교수가 강의한 두 수업의 학생들이 모두 모인 자리였는데, 공교롭게도 대부분 한 수업의 학생들만이 와 있었다. 전혀 엄밀한 조사 및 연구를 거치지 않은 추론이긴 하지만, 그 수업의 학생들은 대부분 05학번 이상의 이른바 '고학번'들이었다. 그래서 10명이 겨우 넘는 숫자에도 불구하고, 기말고사 기간이라는 악재를 뚫고 거의 모든 학생들이 교수와의 종강자리에 참석하였다. 한편, 소수의 학생들만이 온 수업은 대부분 06학번 이하의 이른바 '저학번'들이 듣는 수..
필자는 대학생이다. 그래서 필자가 학교에서 만나는 '선생'이란 사람들은 '교수'라는 직함을 갖고 있다. 아니다. 그들은 '교수'가 아니다. 교수'님'이다. 대학교 내에서 순도 95%의 구성원들은 교수라는 집단을 '님'이라는 존칭을 꼭(!) 붙여 부른다. 그래서인지, 그들 역시 그 호칭에 익숙해져 있다. '님'이라는 호칭은 아마 상대를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붙이는 호칭일게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존칭을 붙인다는 것은 하등 문제가 될 게 없다. 오히려 권장할 일이다. 내가 먼저 상대를 존중한다면, 상대는 기분이 좋아져 나도 존중해 줄 것이고, 점차 사회는 아름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대학에서 범람하고 있는 이 존칭은 조금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들의 스승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