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김규항 (23)
.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 사회를 끝장내는 가장 완전한 방법은 무엇일까. 역사 속에서 실행된 적극적인 방법은 학살일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또한 학살만으로 한 사회를 끝장낼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히틀러는 유대인을 박멸하기 위해 가스실까지 동원했지만 지금 유대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없던 나라까지 만들어 죄없는 팔레스타인 인민들을 학살하고 있지 않은가? 제노사이드는 유대인의 숫자를 일시적으로 줄이는 데 성공했지만 그들의 결속력은 오히려 더 강화시켰다. 한 사회를 끝장내는 가장 완전한 방법은 바로 그 사회 성원들의 결속력을 파괴하는 것, 즉 모든 사람을 오로지 나만 아는 인간으로 만들어 만인이 만인을 상대로 아귀다툼을 벌이는 사회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만 하면 그 사회는 설사 지금 제 아무리 휘황하..
"졸업식은 급진성이 현실로부터 검증 받기 시작하는 날. 더욱 근본적이며, 더욱 유연하길. ㅎ" 한 '급진적인' 청년에게 보낸 졸업식 덕담. --- 졸업이 머지 않았다. 대학에 다니는 동안 스스로를 '급진주의자Radicalist'로 규정하게 되었다. 지금도 현실이지만, 졸업 이후 내딛는 발걸음은 더욱 현실에 가까워지게 된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Radical은 급진적임과 동시에 근본적임을 의미한다. 거기다가 하나가 더 붙었다. '유연.'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기록될 필요가 있다. 유연하되, 근본적으로, 또 급진적으로.
이명박 씨의 끝없이 이어지는 가공할 행태 속에서 '상식의 회복'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이명박 씨의 행태가 제정신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몰상식으로 여기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 몰상식에 대응하는 모든 태도 역시 하나의 보편적인 상식이라 할 수 있을까? 그 몰상식이 종식되는 일은, 다시 말해서 이명박 씨가 물러나는 일은 과연 그가 물러나길 바라는 모든 사람들에게 상식의 회복일까? 정신적 고통이나 미감이 문제인 사람들, 얼마간의 문화자본을 가지고 주류사회에 걸쳐 생활하기에 이제나 저제나 먹고사는 데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이명박 씨의 행태를 보고 있자니 도무지 쪽팔리고 짜증이 나서 살 수 없는 사람들에게 그건 상식의 회복이 분명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누구보다 앞장서서 누구..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힘은 좋은 이야기에서 나온다. 왜냐하면 좋은 이야기는 우리 각자의 내면을 풍요롭게 하면서, 우리들을 서로 결합시켜주는 정신적 에너지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자본-국가의 지배 밑에서, 그리고 동시에 인간차별을 정당화하는 온갖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이데올로기의 지배 밑에서 갈갈이 찢어진 채, 만인이 만인에 대하여 늑대가 된 세상을 당연지사로 받아들이며 살고 있다. 이런 시대에 아직도 인간의 존엄성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삶의 원점을 되돌아보게 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 김규항의 에 대한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의 추천사 中 시대에 구애받지 않는 이야기, 과연 그 중 어떤 것이 우리 인간을 구원할 것인가.
어떤 이가 그러더란다. "김규항 씨의 교육관은 존중해요. 하지만 아빠 때문에 아이가 희생되어선 안 되잖아요?" 올해 중3이 되는 내 딸이 학원 같은 데 하나도 안 다니는 걸 두고 한 이야기였다. '희생이라...' 이야기를 처음 전해 들었을 땐 씩 웃고 말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에 내내 걸렸다. 그가 보수적인 사람이라면 그러려니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지난 해 여름 내내 촛불집회에 개근한 사람이며, 이명박이라면 아주 이를 가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 사람이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는 걸 아이를 희생시키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아이가 학원을 안 다니면 경쟁에서 뒤쳐질 것이고 경쟁에서 뒤쳐지면 결국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명박 이름만 나와도 이를 가는,..
살다 보면 아픈데 상쾌할 때가 있다. 오늘 예로 들고 싶은 건 평소 자신의 지적 수준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가 의외의 인물로부터 일격을 받을 때. 보통 그 상대는 자신보다 어린 사람일 때가 많지 싶다. 그럴 땐 아프다. 감히 내가 무너지다니!
촛불은 아름다웠다. 어른들이 ‘세상이 다 그런 거지’ 뇌까리며 느물거릴 때 촛불을 들기 시작한 여중생들도, 아이들 손을 잡고 나온 사람들이 이룬 거대한 대열도, 그들이 보인 유쾌한 직접 민주주의의 풍경도. 제정신을 가진 누구도 그 아름다움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왜 이렇게 달라진 게 없을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외치고 행동했는데 이렇게 달라진 게 없을 수 있을까? 딱히 달라진 건 없더라도 사회진보의 열기가 살아나는 계기라도 되었어야 마땅한데, 오히려 다들 맥이 빠져버린 모습이니 대체 어찌된 일일까?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렇지만 다들 너무 이기적인 것 같다. 촛불 시위 피켓엔 “이명박 너나 미친 소 쳐먹어” ''내 인생 좀 펼쳐보려고 하니 광우병 걸렸네“ 등 내가 죽..
저걸 내가 다 지킬 수 있는 건 결코 아니다. 오늘 하루는 여느 때와 같이 치밀어 오르는 짜증에 낑낑대었다. 자기 긍정을 안 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다. 정말 힘들다. 생각나도 생각하지 않고, 하고 싶어도 하지 않고, 참지 못하겠어도 참아야 하는거니까. 이거 다 할 줄 알면 진즉 잘 나갔지 이러고 있겠냐? 우석훈은 늘 20대, 혹은 10대를 거론하면서 얘네가 살아야 한다고 한다. 그 말 들으면 솔직히 '저요! 저요!' 하고 손들고 싶다. 그런데 책 내고 싶으면 A4 100매에서 150매는 글을 쓰란다. 망할. 그거 할 줄 알면 진즉 잘 나갔지 이러고 있겠냐? 언제부턴가 잠으로는 짜증과 분노를 잠재울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다가 술을 마시게 되..
처음 촛불시위에 다녀오던 날 “쌍절곤을 가져올 걸 그랬나봐”라고 말해 일행을 유쾌하게 만든 김건(12살 먹은 내 아들)이 며칠 전 밥을 먹다 말했다. “그런데 아빠. 어른들이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뽑았잖아.” “그랬지.” “그런데 자기들이 뽑아놓고 왜 이명박만 욕 해. 어른들은 왜 그래?” “그러게. 어른들은 왜 그럴까? 그런 말 하는 친구가 또 있니?” “응, 우리 반에도 여러 명.” “그래...” 촛불 시위와 광장의 열기 속에서 우리가 잊고 있는 혹은 함께 생략하고 있는 중요한 사실은 이명박 씨는 박정희나 전두환처럼 군사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게 아니라 ‘자유롭고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는 사실이다. 지각 있는 사람은 이런 경우, 말하자면 자신의 책임이 포함된 어떤 나쁜 일이 벌어졌을 경우 두 ..
블로그를 잠시 떠날때가 온 것 같습니다. 혹은 영영 떠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그간 블로그를 한지도 벌써 2년이 다 되어 갑니다. 미니홈피를 떠나 새로운 자기표현공간으로 시작한 블로그에서 그간 제 나름의 글쓰기를 통해 여러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노력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볼 때, 이 목표는 거의 완전히 실패한 듯 합니다. 제 블로그는 거의 항상 제가 일방적으로 발화하는 공간에 불과했고, 블로그 활동을 통해 이루고 싶었던 제 의견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동조는 달성하지 못한 것 같네요. 쉽게 말해, '대중적 글쓰기'를 하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실패한 것 같습니다. 책을 보다보니 박노자가 그런 말을 했더군요. 아무리 대중적 글쓰기를 해도 안 바뀐다고. 대중이 듣는 것 같지도 않고, 생각이 바뀌는 것 같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