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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젯밤 티비를 이리저리 돌리다 '공부의 신'이라는 프로그램을 봤다. 파일럿 혹은 추석 특집용 프로그램이었다. 내용은 말 그대로 '공부의 신'이라 불리는 사람이 공부 못/안 하는 학생을 도와 성적을 올리는 것. 뭐, 나쁘지 않다. '학벌사회' 대한민국에서는. 아마 부모가 그 프로그램을 본 집들은 난리가 났을 것이다. 애들 보고 공부 좀 하라고. 그걸 본 학생들은 두 분류로 나뉘었을 것이다. 하필이면 연휴 초에 저런 걸 방영햔 MBC를 욕하거나, 프로그램에 자극 받아서 공부를 하거나. 하지만 중요한 문제 제기가 빠졌다. '왜' 공부를 해야하지? 한국 사회에서 이 물음은 어찌보면 제기될 필요도 없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좋은 대학에 가야 하니까.' 그렇다면 '왜' 좋은 대학에 가야하지? 이에 대한 답 역시 자..
캠퍼스가 온통 Recruit란 단어로 도배되어 있다. 신학기인 탓이다. 눈에 거슬린다. 무언가 'Recruit = 기업 = 자본'이라는 도식이 뇌리 깊이 박혀서 일까. 굳이 저런 말을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동아리 포스터들에 온통 큰 글씨로 Recruit란 말이 가득한 것을 보면 괜시리 기분이 나빠진다. 동아리들이 뭐랄까, 개인의 자아를 실현하는 방향을 위한 것들이 인기를 끈다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졸업 후 안정적으로 간지나게 먹고 살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에만 연관된 것들이 잘 나가는 것 같다. '노동 = 자아 실현'이라는 도식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별로 보기가 좋지 않다. 사람들이 '주체'가 되려고 하기 보다는 자본이 주도권을 쥔 사회에 억지로 자신을 끼워 맞추고, '객체'가 못 되어 안달이 난 것..
존 로크는 중세로부터 이어내려 온 유명론과 ‘주체’라는 근대적 문제설정의 결합을 통해 독자적 흐름을 형성하는 것으로부터 자신의 철학적 사고를 전개해나갔다. 그러나 그는 ‘중세적 유명론’과 ‘데카르트적 근대 철학’을 거부함으로써 자신만의 색깔을 찾았다. 먼저, 중세 당시의 유명론자들은 아무리 논의를 극단으로까지 확장시키더라도 ‘신학’이라는 ‘금단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부정’하는 ‘중죄’를 지을 수 없었기 때문에 믿음의 영역인 신학에는 이성의 논리가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한계로 지정하고 있었다. 그 결과, 그들에게 있어 인간이 진리를 탐구하는 ‘주체’로 오롯이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은 극히 적었다. 하지만 로크는 탈신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데카트르처럼 독립적 인식주체를 설정하여 과학적 진리를 추구하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