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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 / Zenol

공부의 신

zeno 2007. 9. 24. 21:24

  어젯밤 티비를 이리저리 돌리다 '공부의 신'이라는 프로그램을 봤다. 파일럿 혹은 추석 특집용 프로그램이었다. 내용은 말 그대로 '공부의 신'이라 불리는 사람이 공부 못/안 하는 학생을 도와 성적을 올리는 것. 뭐, 나쁘지 않다. '학벌사회' 대한민국에서는.


  아마 부모가 그 프로그램을 본 집들은 난리가 났을 것이다. 애들 보고 공부 좀 하라고. 그걸 본 학생들은 두 분류로 나뉘었을 것이다. 하필이면 연휴 초에 저런 걸 방영햔 MBC를 욕하거나, 프로그램에 자극 받아서 공부를 하거나. 하지만 중요한 문제 제기가 빠졌다.


  '왜' 공부를 해야하지?


  한국 사회에서 이 물음은 어찌보면 제기될 필요도 없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좋은 대학에 가야 하니까.'

  그렇다면 '왜' 좋은 대학에 가야하지?

  이에 대한 답 역시 자명하다. '잘 살려면.' 허나 다른 나라를 보면 굳이 대학 나오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무려 대학을 나오고나서도 잘 살기 힘들다. 오죽하면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일까.

  이런 현실에 대한 처방은 간단하다. 모든 문제의 근원인 학벌주의 - 대학에 가야 하고, 이왕이면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보편'적인 생각 - 를 타파하는 것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불가능한 것 아닌가?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하나 둘 차츰 빠져나오다 보면, 이왕이면 다수가 빠른 시일내에 빠져 나오면 가능하다. 허나,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로부터 빠져 나오길 거부하고 있다. 아니, 두려워하고 있다. 그래서 하루 24시간 중 6시간 자고, 18시간 공부하며 '공부의 신'이란 '미명'뒤에 숨은 '공부 기계'의 현실을 외면하며 자기 자식들이, 혹은 스스로 그런 '기계'가 되길 바라고 있다. 학업을 노동으로 보았을 때 이는 '공부'로부터의 '소외'요, 단순히 '공부' 그 자체로 봤을 때 역시 '소외'임이 분명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텐가!

  모든 문제는 근본이 중요하다. '왜'라는 물음을 항상 던질 수 있어야 하고, 이에 대한 답 역시 할 수 있어야 한다.그렇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주체'가 아니다. '주체'적이지 않은 삶도 과연 '삶'이라 할 수 있는가?

  그러나 학벌사회 대한민국에서는 학생들로 하여금 이런 의문을 던지지 못하게 한다. 모든 생각은 '일단 대학부터 가고 생각하자'라는 명제 하나에 스러진다. 이래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어 의심치 않는 허구적 개념인 '국가 경쟁력'도 없을 뿐더러 - 이미 없고, 또 미래도 전혀 밝지 않지만 말이다 - 결코 행복하지도 않다. '주체'가 되지도 못한채 사회에서 주입 받은 욕망에 충실한 걸 갖고 '나는 행복하다'라고 자기 세뇌하는 생명체들만 빼고.

  불쌍하다. 한번 사는 인생, '주체' 한 번 제대로 되보지 못하고 스러진다는 것이 불쌍하다. 청춘도, 노년도, 그렇게 '행복 유예적'인 사고에 물들어서 기계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불쌍하다.

  자, 행복'해 질 것'인가, 아니면 행복'하다고 믿을 것'인가.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