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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 / Science

[철학] 철학과 굴뚝청소부 2장 로크 부분 - 작업중

zeno 2007. 1. 24. 17:50
  존 로크는 중세로부터 이어내려 온 유명론과 ‘주체’라는 근대적 문제설정의 결합을 통해 독자적 흐름을 형성하는 것으로부터 자신의 철학적 사고를 전개해나갔다. 그러나 그는 ‘중세적 유명론’과 ‘데카르트적 근대 철학’을 거부함으로써 자신만의 색깔을 찾았다. 먼저, 중세 당시의 유명론자들은 아무리 논의를 극단으로까지 확장시키더라도 ‘신학’이라는 ‘금단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부정’하는 ‘중죄’를 지을 수 없었기 때문에 믿음의 영역인 신학에는 이성의 논리가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한계로 지정하고 있었다. 그 결과, 그들에게 있어 인간이 진리를 탐구하는 ‘주체’로 오롯이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은 극히 적었다. 하지만 로크는 탈신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데카트르처럼 독립적 인식주체를 설정하여 과학적 진리를 추구하였고, 이로써 자신의 경험론을 중세적 유명론과 차별화 시킬 수 있었다.
  한편, 로크는 근대적 주체를 설정하였다는 점에서는 데카르트와 같았지만, 진리를 확인할 수 있는 ‘본유관념’이라는 것의 유래를 신에게서 찾은 데카르트를 비과학적 · 중세적 · 스콜라철학적 잔재라며 비판함으로써 그의 철학과 자신의 철학 사이에 경계선을 분명히 그었다. 데카르트는 그 자신이 ‘데카르트 평면’을 창조해낸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수학적 지식’은 진정한 ‘진리’라고 생각하여 의심하지 않았지만, 로크는 그마저도 역시 경험 · 관찰로부터 생성된 것이라며 어떠한 본유관념도 있을 수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 어떠한 개념이라 하더라도 신이 준 것도, 타고난 것도 아니라 ‘경험’으로부터 추출되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이 때 단 ‘한번’의 관찰로 진리를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여러 불완전한 모습들을 관찰하여 불완전성을 제거하고 완전한 모습을 그려내야만 비로소 진리라 할 수 있는 ‘보편 개념’이 형성된다고 보았다. 이는 결국 모든 보편 개념은 사고가 만들어낸 것이기에 이름으로서 의미를 가질 뿐이라는 주장과 다름없기에 ‘유명론’과 닿아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주장을 정리해보자면, 인간은 사물의 자극을 받아 1차적으로 ‘판단’을 한다. 이것은 로크의 용어로 ‘단순관념’이라 하는데, 이것이 ‘오성Understanding'에 의해 결합됨으로써 ’복합관념‘이 된다. 이 때, 이 복합관념이 진정한 ’진리‘라 일컬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로크의 주장은 두 가지 점에서 난관에 봉착한다. 먼저 그는 ‘사유’와 ‘연장’이라는 두 가지 ‘실체’를 상정하고 있는 데카르트를 비판함으로써 그의 주장을 시작하였는데, ‘근대철학’이라는 틀 안에서 진리를 추구하려다 보니 결국 우리의 감각적 경험 외부에 존재하기 때문에 불변하고 우리의 경험으로 환원불가 한, 단순관념을 야기하는 ‘물질적 실체’와 인식의 불변적 주체인 ‘정신적 실체’라는 ‘두 가지 실체’가 남고 마는 것이다.
  또한, 그는 ‘진리’의 문제에서도 딜레마에 빠지고 만다. 그가 새로이 도입한 용어 중에 ‘제1성질’과 ‘제2성질’이라는 것이 있다. 제2성질이란 경험 안에 존재하는 성질이기 때문에 주체에 따라 다르게 경험하는 성질이고, 제1성질이란 물체 자체에 속하기 때문에 주체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동일하게 느끼는 성질이다. 다시 말해, ‘제1성질’은 그 물체의 ‘본유성질’이다. 이로써 인간은 그 자신의 인식과 대상이 일치하도록 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이는 데카르트의 ‘본유관념’ 비판으로 시작한 로크의 철학이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도출된 ‘본유성질’로 귀결되기 때문에 결국 스스로 자신의 철학을 무용지물화 하는 꼴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딜레마’에 빠져버리게 되고 마는 것이다.
  이런 로크의 생각은 애초 표면적으로는 ‘근대철학’과 ‘과학주의’에 기반 하였지만, 실제로는 ‘과학주의’대신 ‘유명론’에 기반을 둔 것이다. 다만 글 서두에서 언급하였다시피 중세적 유명론의 틀에서는 벗어났다. 그러나 이 역시 ‘진리’라는 질문을 탐구하는 근대적 문제 설정에 포섭되고 말기 때문에 결국 그의 경험주의는 ‘유명론의 근대화’ 또는 ‘근대화된 유명론’에 그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