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자유주의 (5)
.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규항이 말했던 것처럼 '상식'은 '자유주의'의 것일지 모른다. (참고 : 아집에 빠진 사람) 하지만 여전히 상식의 회복이 세상의 변화를 요구하는 데 유의미한 곳이 한국이다. 이번 YTN 사태와 노종면 노조위원장의 해고는 그런 점에서 비상식적이다 못해 아주 몰상식할 따름이다. 영상에 나와있는 것처럼 '보도 채널'에 불과하던 YTN을 오늘날 만큼의 명성이나마 얻는 곳으로 만들어 준 것이 돌발영상 아닌가? 마치 애플을 키워놓았더니 쫓겨난 스티브 잡스 같지 않은가? (물론 그는 설립자였다는 점에서 더 황당한 한편, 슈퍼스타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아주 적절한 비교 대상은 아니다.) 이는 결국 '기자'라는 일군의 직업 집단 소속자 역시 '하이칼라'이자 '지식 노동자'이지만 결국엔 '노동자'라는 자본주의 사회 내의 ..
냉소주의는 비겁함의 또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어느 한 곳에도 정체성을 고정시키지 못한 채 부유하고 있는 탓이다. 일례로, 집단 속에서는 개인을 지켜야 한다며 버티는 한편, 파편화된 인간들 사이에서는 공동체의 복원을 주장한다. 결국 개인주의자도 아니고, 공동체/집단주의자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에서 균형 잡기를 시도하는 탓에 냉소라는 '제3의 길'로 빠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스스로 인간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항상 헷갈리곤 한다. 어쩔 때는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내다가도, 어느 새 팩 토라져 인간들을 저주하고 욕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양 극단에서 진동하며 살아가는 바, 늘 그 종착역은 적당한 '거리두기'가 되기 일쑤다. 이런 개인의 성격..
이명박 씨의 끝없이 이어지는 가공할 행태 속에서 '상식의 회복'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이명박 씨의 행태가 제정신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몰상식으로 여기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 몰상식에 대응하는 모든 태도 역시 하나의 보편적인 상식이라 할 수 있을까? 그 몰상식이 종식되는 일은, 다시 말해서 이명박 씨가 물러나는 일은 과연 그가 물러나길 바라는 모든 사람들에게 상식의 회복일까? 정신적 고통이나 미감이 문제인 사람들, 얼마간의 문화자본을 가지고 주류사회에 걸쳐 생활하기에 이제나 저제나 먹고사는 데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이명박 씨의 행태를 보고 있자니 도무지 쪽팔리고 짜증이 나서 살 수 없는 사람들에게 그건 상식의 회복이 분명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누구보다 앞장서서 누구..
p. 22 민족의 문제를 회피하고 '개인'의 자유를 찾으려 했던 사람들은 군사주의와 엄혹한 유신 통치에 저항하지 않았다. 즉 이론적으로 자유주의는 공동체 혹은 집단을 우선시하는 민족주의와 양립할 수 없지만, 개인의 운명이 민족과 일체화된 조건에서는 민족을 무시한 자유는 존립할 수 있는 근거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초기 자유주의자였던 김규식이 어떻게 민족주의자로 변했는가 하는 사실을 통해서도 바로 한국에서의 자유주의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정치적 자유'를 위해 투쟁하지는 않앗지만 자유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원리인, 개별자로서 인간의 개성의 자유와 인격의 자유를 추구하면서 유교젹인 가부장적인 문화, 명분과 체면의 도덕률, 가족주의 질서를 근저에서 부정했던 사람들 역시 지나칠..
p. 142 무정부주의는 예술, 해방을 위한 영감의 원천이다. 지나치게 급진적인 비판은 당장 가능한 개혁조차 우습게 보고, 그 결과 본의 아니게 현상(status quo) 유지에 복무하는 결과를 낳을 수가 있다. p. 192 포스트모던의 유행이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죽여놓았다. 그러니 게으른 자들의 반발을 무릅쓰면서까지 굳이 민중을 대변하는 지식인을 부활시킬 필요는 없다. 그들은 무덤 속에서 자게 내버려두자. 그래, 이제 지식인을 민중을 대변할 필요 없다. 이제는 민중도 다들 똑똑해져서 자기 표현을 하는 데 굳이 지식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니 지식인도 굳이 민중을 위해 희생할 필요는 없다. 더더군다나 그들을 책임질 필요도 없다. 그러니 이제 딱 하나, 자기만 책임지면 될 일이다. 그 정도는 할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