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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라는 화두 본문

저널 / Zenol

자유라는 화두

zeno 2008. 8. 3. 23:52
  p. 22

  민족의 문제를 회피하고 '개인'의 자유를 찾으려 했던 사람들은 군사주의와 엄혹한 유신 통치에 저항하지 않았다. 즉 이론적으로 자유주의는 공동체 혹은 집단을 우선시하는 민족주의와 양립할 수 없지만, 개인의 운명이 민족과 일체화된 조건에서는 민족을 무시한 자유는 존립할 수 있는 근거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초기 자유주의자였던 김규식이 어떻게 민족주의자로 변했는가 하는 사실을 통해서도 바로 한국에서의 자유주의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정치적 자유'를 위해 투쟁하지는 않앗지만 자유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원리인, 개별자로서 인간의 개성의 자유와 인격의 자유를 추구하면서 유교젹인 가부장적인 문화, 명분과 체면의 도덕률, 가족주의 질서를 근저에서 부정했던 사람들 역시 지나칠 수는 없을 것이다.

  pp. 27 - 28

  물론 인간은 그렇게 용감한 존재가 아니다. 문제는 겁많고 소심한 보통 사람들을 정신적 불구자로 만든 것은 일차적으로는 분단이라는 폭력 체제, 그것에 의해 조장된 보수의 완강함에 있을지 모른다. 한국에서 원칙 그대로의 자유주의자로 살기는 대단히 어렵다. 군사 통치하에서는 정치적인 박해를 받을 수밖에 없었고, 고루하고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하에서 자유를 내세우고 실천하는 것은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였다. 따라서 자유주의자가 권력에 참여하게 되면 파시스트가 되거나 무이념, 무사상의 존재가 된다. 일찍이 송건호가 말하였듯이 "지식인에게 경제적인 기반이 없고, 무엇인가 외부의 힘에 의지해서 생활을 유지해 나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지식인의 권력 참여는 반드시 권력에 대한 지식인의 예속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되면 지식인은 더욱더 비굴해진다. 그나마 한국에서 약간의 자유주의자가 존재한다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불필요하게 굴종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아도 되는 대학 교수들에게서나 가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당수의 자유주의자들은 엄혹한 군사 독재를 거치는 동안 냉소적인 인간이 되었다. 즉 권력에 적극적으로 편승하기에는 자유에 대한 평소 생각이나 소신이 용납하지 않고, 저항을 하기에는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냉소적인 인간은 중립적인 인간은 아니다. 그의 침묵 자체가 부정의하고 부도덕한 현실을 용납하는 행위이며, 동시에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노력을 외롭고 약화시키는데 일조한다. 냉소는 무기력과 좌절의 표현이고, 이러한 무기력과 좌절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탐욕을 추구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 결국 냉소주의는 끝까지 냉소주의로 남아 있을 수 없으며, 다른 방식으로 현실 영합적인 권력 추구욕으로 발현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냉소의 철학은 이기의 철학이며, 생존의 합리성을 모든 사회적 가치보다 우위에 놓는 태도이다. 원인이 어떠하건 이러한 냉소주의자, 정신적 불구자 들에게서 고상한 생각이나 남을 감동시키는 이야기들이 나올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그리하여 '자유를 지키기 위한 용기'를 발휘할 수 없었던 한국의 문화와 사상, 지식과 학문은 이렇듯 왜소화되고 황폐화되었다.

  pp. 31 - 32

  포스트모더니즘 담론과 1990년대의 문화적 지향, 성 담론과 동성애론자들의 주장도 사실은 일제 이후 전통적인 한국 자유주의의 연장선에 있다. 그들의 말과 행동은 가족주의 가치, 권위주의로 포장된 민주주의의 허구성과 이중성을 폭로하는 데 가장 전복적이고 진보적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그들의 '해방적 실천'은 일제 시기 신여성들이 그러하였듯이 주저하는 다수의 사람들을 감동시키지 못하였고, 더욱이 그들이 비판하는 질서를 가장 최종적으로 지탱하고 있는 정치적 지배 질서를 위협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마광수 교수의 외로운 투쟁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볼 수도 있으나, 대학 사회의 보수성과 기득권 구조, 문화에 깃든 권위주의를 무너뜨리는 데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것은 바로 한국의 자유주의가 가진 전통적인 한계, 즉 가족 가치를 파괴하는 데는 진보적이엇으나 개인의 자유에 대한 국가의 억압에 대항하는 데는 거의 무기력하엿으며, '주체'를 세우기 위한 투쟁, 정치 사상의 자유를 위한 투쟁의 과정에서 어떠한 역할도 수행하지 않음으로써 파괴된 가족 가치를 다른 형태의 가치로 대체하거나 자유주의적인 사회 윤리를 확산시키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조건에서 보자면 정치가 모든 사회적 영역의 결절점으로 남아있는 한, 정치를 회피하는 자유주의는 언제나 자유의 정신을 발양시킬 수가 없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의 시점에서 더 심각한 것은 범지구적인 자본주의의 물결이다. 앞에서 말한 바 신세대의 자유는 '자본'의 울타리 속에서 길들여진 자유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자신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이들이 원하는 바 "자신의 일과 관심에 충실하도록" 경제적 정치적 조건이 허용된다는 전제하에서 가느한 일일 것인데, 불행히도 시장 경제는 돈 있는 사람들에게만 자유를 허용하는 속성이 있다. 이렇게 볼 때 전쟁과 독재 치하에서 살아 남은 한국의 소수 양심적 자유주의자들이 그렇게 원햇던, 권력과 돈으로부터 자기 개인을 지킬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된 것처럼 보이는 오늘날 우리는 과연 자유로운가? 자유롭다면 과연 얼마나 자유로운가? 해고의 위험과 실직의 고통이 생활인들을 옥죄고 있는 이 시대에 자유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오늘날 보이는 검열자나 보이지 않는 검열자가 사라진 대신 '상품'이라는 검열자가 우리를 둘러싸고서, 우리가 자유롭다는 느낌까지도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어쩌면 한국에서 자유주의자가 최초로 탄생하는 오늘의 시점은 이제 더 이상 자유주의자가 존재할 수 없는 시점일지도 모른다. 

  pp. 72 - 73

  인권과 자유의 개념이 처음으로 태동한 프랑스에서 개인의 자유는 더더욱 존중된다. 프랑스 사회에서 개인의 성생활은 사생활 문제이며 침범할 수 없는 자유의 영역이다. 미테랑 전 대통령의 성생활에 얽힌 한 일화가 있다. 미테랑 대통령 말년, 영부인 다니엘 미테랑이 아닌 다른 여자와의 사이에 둔, 미테랑의 숨겨둔 딸이 드러나 한때 언론의 화젯거리가 되었던 일이 잇다. "르 피가로" 같은 보수 우익 언론들은 이를 연일 특종으로 다루었고, 이를 기회삼아 미테랑의 정치 경력에 흠집을 내려 햇다. 이에 프랑스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르 몽드"지는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라는 유명한 사설로 정치 생활과 사생활의 무관함을 주장햇던 일화는 유명하다.
  같은 서구 국가라도 청교도주의에 바탕하고 있는 앵글로색슨 쪽으로 가면 문제는 좀 달라진다. 클린턴 성 추문 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대통령의 사생활은 언론과 전국민의 관심거리가 되고 그것이 정치 생명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영국이나 미국의 경우, 유명 인사의 섹스 스캔들이 허구한날 신문지상을 대문짝만하게 장식하는 데 비해 프랑스나 독일 같은 유럽 대륙 국가들은 전혀 다른 성 문화를 가지고 있다. 클린턴 성 추문이 세계 언론의 1면을 도배하고 있을 때, 대부분의 프랑스 인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프랑스 언론은 "대통령 성 추문 사건이 정치적인 문제가 될 수 있는 미국 사회는 개인의 자유가 결여된 사회이며 미분화된 사회"라고 평가했다. 프랑스는 자유주의적 성 관념이 사회 깊숙히 뿌리 내리고 있는 사회라 섹스 스캔들이라는 것이 없는 사회이다. 개방적인 만큼 성이 양성화되어 있고 그만큼 건강한 사회이다.

  pp. 76 - 77

  마광수 필화 사건에서 재미있는 점은 서로 적대적인 양극의 대응이 동일한 양태의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마광수가 모럴 테러주의자라고 말하는 수구적 보수주의자들이 성의 문제에 대해서 극단적인 적대감을 나타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치자. 왜냐하면 그들은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사회를 옭아 매고자 하는 봉건 세력들이니까. 하지만 자유의 가치를 신봉하는 진보주의자들마저 마광수에 대해 적대감을 나타내는 것은 우리 사회의 진보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그 토대가 빈약한가를 드러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진보주의자들은 도덕적 우위를 가져야 하고 금욕적인 선비상을 가져야 한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한국적 시각에서 보면 개방적이고 문란한 프랑스 사회는 한국보다 덜 진보된 사회라는 걸까? 혁명가들은 색을 밝혀서는 안 되며, 진보주의자는 모두 금욕주의자가 되어야만 한다는 걸까?

  ...

  D. 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에술이고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는 외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위선적이거나 아니면 사대주의에 찌들어 있는 사람이다.  

  pp. 147 - 148

  나혜석이 생각한 연애의 이상은, 상대방의 개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전인류 중 하필 너는 나를 구하고 나는 너와 짝지으려 하는 데는 네가 내게 없어서는 아니 되고 내가 네게 없어서는 아니 될 무엇 하나를 찾아 얻는"("이혼고백서") 그런 관계로 맺어지는 것이었다.
  이런 관계가 성립하려면 선택의 자유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혜석은 조선에서 연애할 줄 아는 사람은 기생밖에 없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하였다. 기생들은 이성 교제 경험이 많으므로 여러 이성들 중에서 마음에 맞는 한 사람을 선택할 만한 판단력과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여학생들은 이성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우연히 만나게 된 한 이성에 대하여 본능으로만 접근하게 된다는 것이다.("강명화의 자살에 대하여", 1923년 7월) 나혜석은 관념적으로나마 진정으로 자유로운 선택을 추구했다. 여러 인물을 비교하여 자기가 사랑할 만한 한 사람을 선택할 수 있는 판단력과 여러 인물 중에서 오직 한 사람만을 좋아할 선택의 기회가 있을 때 그때 자유 연애는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그런 연애 관계일 때 두 사람은 영혼과 육체가 합일하는 완전한 연애의 가치를 누리게 된다고 하였다.

자유라는 화두 - 8점
이상경 외 지음/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