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감정 (5)
.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냉소주의는 비겁함의 또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어느 한 곳에도 정체성을 고정시키지 못한 채 부유하고 있는 탓이다. 일례로, 집단 속에서는 개인을 지켜야 한다며 버티는 한편, 파편화된 인간들 사이에서는 공동체의 복원을 주장한다. 결국 개인주의자도 아니고, 공동체/집단주의자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에서 균형 잡기를 시도하는 탓에 냉소라는 '제3의 길'로 빠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스스로 인간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항상 헷갈리곤 한다. 어쩔 때는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내다가도, 어느 새 팩 토라져 인간들을 저주하고 욕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양 극단에서 진동하며 살아가는 바, 늘 그 종착역은 적당한 '거리두기'가 되기 일쑤다. 이런 개인의 성격..
이제 13일의 금요일이 끝나간다. 별다른 큰 일은 없었다. 간만에 방에 혼자 앉아 있다보니 한국에서 늘 겪던 '룸펜화' - 이런 좋은 용어를 알려준 미카미 군에게 감사. - 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그러다보니 문득 한국에서보다'는' 낫다던 평소 생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룸펜화를 정의하고 넘어가자면, 감정이 이성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현대 자본주의의 전형적인 '죽음에 이르는 병', 우울증 증세가 나타나고 과거에 고민했던 문제들을 되새김질하며 주변 사람들을 귀찮게 하는 한편 끝없는 자기합리화나 비하에 빠지기도 하는 등의 현상을 일컫는다. 이 곳에 와서 룸펜화가 조금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한국에서는 거의 매일 맥주를 입에 달고 살았고, 밤만 되면 블로그에 붙어있었던 것에 비해 이 곳에서는 상대적으로 낮..
모처럼 감정의 고저가 심한 날이라, 아무래도 기록해 두어야 겠다. 얼마 만인지, 아침에 개운하게 일어났다. 7시 반,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학교도 일찍 가고. 그럭저럭 일들이 잘 풀리니 기분도 나쁘지 않은. 오랫만에 친구도 보고. 11시 쯤이었던가, 한 친구로부터 친구가 자살을 해 빈소에 다녀오는 길이라는 문자가 왔다. 기분 급다운. 수업이 끝나고, 수업 내용이 마음에 들었던 탓에 다시 밝아진 기분으로 점심을 먹었다. 제길, 또 반밖에 못 먹었어. 요즘 음식이 안 넘어감. 수업 듣고, 일 처리 좀 하고, 저녁 먹고 - 또 반 밖에 못 먹었지만 - 후배랑 놀다가 도서관가서 공부. 뭐, 그러게 나쁘지는 않았음. 집중이 안 되고 산만했지만, 지난 주말 기분에 비하면 훨씬 나으니까. 집에 ..
살다 보면 흔히 선택의 갈림길에 직면한다. 하나는 택하고, 하나는 버린다. 이건 좋고, 저건 싫다. 그렇게 자신이 선택한 길을 걷는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상당히 자주 기분이 급변하는 상황을 겪게 된다. 마치 조울증처럼, 하늘을 찌를 정도로 좋던 기분이 세상에서 더 이상 처절할 수 없을 정도로 가라앉는다던가, 미칠듯이 좋던 사람이 저주스러울 정도로 싫어진다거나. 로또를 사려다가 깜빡 하고 못 산채로 있었는데 멍하니 보던 티비에서 추첨 방송이 나오는 것을 보고 자괴감에 빠져있다가도, 컴퓨터를 켜 베토벤 바이러스를 보며 헤벌레 웃기도 한다. 그렇다고 모 아니며 도 인것만은 아니다. 동시에 상반되는 감정이 공존하기도 한다. 날 이렇게 만든 것에 대해 상대에게 온갖 저주를 쏟아붓다가도, 그 사람 이름으로 문자가..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일이 내게도 일어날 줄 몰랐다. 여자에게 홀려서 정신 못차리는 가운데 주변 사람들은 다 뜯어말리는 상황이라니. 보통 보면 주인공들은 이럴 때 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더라. 하지만 이성주의자를 자처하는 이로서 그러면 안 되겠지? 이성 만큼이나 감정도 존중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타인들이 모두 같은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그 말이 더 맞지 않을까 싶다. 후, 그런데 어쩌지. 감정은 이미 너무나도 쏠려 버린 걸. 그토록 내게 적극적이고, 매력적이며, 보호본능을 자극할 수가 있을까? 혼란스럽다. ZE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