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스크랩 / Scrap (55)
.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신기하다. 요즘 대학생들은 ‘연애’를 새로 시작해도 성적이 떨어지지 않는다. 내 경우, 연애를 시작하면 언제나 성적은 가파른 하향곡선으로 추락했다. 어디 성적뿐인가. 매사에 예민하게 반응해서 부모님에겐 늘 불효자가 되고 친구들에겐 ‘왕따’가 되었다. 신기한 게 또 있다. 아주 실용적인 학문이라면 또 모르지만, 문예창작학과처럼, 예술 창작을 연마하는 학생들도 이른바 모범생 타입은 모든 교과목에서 균일하게 상위권을 유지한다. 시 창작, 소설 창작은 물론이고 희곡, 평론, 아동문학 창작 과목까지 성적에서 편차가 없다. 이것 또한 지향이나 선생에 따라 과목별 편차가 심했던 젊은 날의 나와 아주 대조적이다. 나는 때로 요즘의 ‘젊은 그들’이 부럽다. 그들은 확실히 우리 세대보다 안정적이고, 감정의 기복을 무난하게..
촛불은 아름다웠다. 어른들이 ‘세상이 다 그런 거지’ 뇌까리며 느물거릴 때 촛불을 들기 시작한 여중생들도, 아이들 손을 잡고 나온 사람들이 이룬 거대한 대열도, 그들이 보인 유쾌한 직접 민주주의의 풍경도. 제정신을 가진 누구도 그 아름다움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왜 이렇게 달라진 게 없을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외치고 행동했는데 이렇게 달라진 게 없을 수 있을까? 딱히 달라진 건 없더라도 사회진보의 열기가 살아나는 계기라도 되었어야 마땅한데, 오히려 다들 맥이 빠져버린 모습이니 대체 어찌된 일일까?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렇지만 다들 너무 이기적인 것 같다. 촛불 시위 피켓엔 “이명박 너나 미친 소 쳐먹어” ''내 인생 좀 펼쳐보려고 하니 광우병 걸렸네“ 등 내가 죽..
지난번부터 나는 도쿄 아키하바라의 도리마 살인사건(아무런 이유 없이 길 가는 사람을 무작정 칼 등으로 살해하는 행위)의 고찰을 계속하고 있다. 이전에는 일본의 젊은 세대가 놓여 있는 워킹푸어(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빈곤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계층)의 문제, 미래에 희망을 갖지 못한 가혹한 노동환경의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렇지만 나는 이 문제의 배경에 또하나, 일본의 젊은 사람에게 자기긍정감의 결여라는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용의자인 가토 도모히로의 경우 그것은 학교와 가정을 포함한 교육의 문제로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가토는 중학교 때까지는 성적이 좋아서 아오모리현의 최우수 고교에 입학했다. 이 단계까지는 그가 이른바 ‘가치쿠미’(승자 그룹)에 있었다. 이 ‘성공’은 엄격하고 ..
세상은 얼마나 쉽게 이유를 만들고 합리를 씌워 결과를 만들어내는가. 누군가의 신념을 매도하고 개성을 희롱하고 사실을 왜곡하기에 얼마나 편리한 곳인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아무도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렇게, 누군가는 괴물이 된다. 최민수가 산에 들어 간지 4개월이 지났다. 산 속에서 홀로 의식주를 해결하고 있다. 가끔 급하게 필요한 물건을 매니저에게 부탁할 때를 제외하면 대개 그렇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최민수 사건은 어렴풋한 자취만 남기고 지워진지 오래다. 최민수가 훈계하는 노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칼을 휘두르고 차에 매달아 질주하다 세상의 질타를 당하고 산 속으로 숨어들어갔다지. 그렇게 막돼먹은 패륜의 기운만 묻어날 뿐이다. ‘최민수 70대 노인 폭행 의혹’ 사건이 아니라 ‘최민수 70대 노인 폭..
필자는 지난주 화요일, 한 지면에 피터 페리클레스 트리포나스의 (이제이북스, 2003)에 대한 독후감을 썼다. 그 글을 쓰면서 베이징 올림픽이 무르익고 있는 이때에 이런 독후감을 쓰는 건 “부담”스러우며, “이 글은 본전을 찾기 힘들다”고 서두를 뗐다. 원고를 송고하고 비겁함과 무력감에 시달렸다. ‘올림픽 광풍’을 혐오하고자 나는 에코라는 권위에 매달렸다. 그리고 글쟁이가 크게 손해 보는 글을 쓰면 쓸수록, 사회가 조금, 아주 조금 이득을 본다는 생각도 해 보면 안 되나? 워낙 이름 석 자에 호구가 걸려 있는 터라 나는 그걸 못한다. 기호학자이며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는 우리가 눈여겨보지 않은 사이에 유럽의 축구문화를 조롱하는 여러 편의 에세이를 썼던 모양이다. 이 책은 단번에 외우기가 힘든 긴 이름을 ..
[[삼국지]]나 [[초한지]] 같은 중국 무협 소설을 번안해서 돈을 많이 벌고 있는 번안 무협작가 이문열 -- 조갑제도 아닌 -- 이 "의병"이라는 말을 꺼냈을 때, 나는 그로써 대변되는 보수 지식인들 -- 물론 전부는 아니겠지만 -- 의 무지몽매함과 시대착오적인 사태 파악에 몹시 속상했다. 보수 지식인들은 걸핏하면 '어떻게 지켜온 대한민국인데 좌파 빨갱이들에게 나라를 내줄 수 있단 말인가'라며 핏대를 올리지만 사실 그 대한민국에 좌파 빨갱이는 한 줌도 되지 않으며, 있다해도 국민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극히 미미하다. 아니 한국 사람 전체를 좌.우 이념으로 나누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다. 오히려 한국 사람들은 돈과 권력 모두를 쥔 자, 돈 많이 벌어 떵떵거리고 싶은 자, 돈 많이 벌고 싶..
처음 촛불시위에 다녀오던 날 “쌍절곤을 가져올 걸 그랬나봐”라고 말해 일행을 유쾌하게 만든 김건(12살 먹은 내 아들)이 며칠 전 밥을 먹다 말했다. “그런데 아빠. 어른들이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뽑았잖아.” “그랬지.” “그런데 자기들이 뽑아놓고 왜 이명박만 욕 해. 어른들은 왜 그래?” “그러게. 어른들은 왜 그럴까? 그런 말 하는 친구가 또 있니?” “응, 우리 반에도 여러 명.” “그래...” 촛불 시위와 광장의 열기 속에서 우리가 잊고 있는 혹은 함께 생략하고 있는 중요한 사실은 이명박 씨는 박정희나 전두환처럼 군사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게 아니라 ‘자유롭고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는 사실이다. 지각 있는 사람은 이런 경우, 말하자면 자신의 책임이 포함된 어떤 나쁜 일이 벌어졌을 경우 두 ..
“배후는 너다”. 3일 장대비 속에 열린 촛불집회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어린 여학생의 등에 붙은 구호였다. 꺼질 줄 모르고 번져가는 촛불시위에 대해 “촛불은 누구의 돈으로 샀는지 조사해 보고하라”는 유치한 수준의 대응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통렬한 야유였다. 이날 있었던 정부의 기만적 미봉책 발표로 촛불시위가 흔들리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와 달리 이날 시위에는 2만명 이상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이번 촛불이 쉽게 꺼질 것이 아님을 알려주는 즐거운 신호였다. 그러나 진보적 정치학자로서 이번 시위에서 정말로 즐거웠던 것은 두 가지다. 우선 ‘즐거운 혁명’이다. 20세기 초의 페미니스트 운동가였던 엠마 골드만이 지적했듯이 “만일 내가 춤을 출 수 없다면 그것은 혁명이 아니다.” 그러..
글로벌 인재를 키운다며 영어로만 수업하는 국제학부나 국제대학원을 다투어 만든 대학들이 이제는 일반 학부에서까지 영어강의 개설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른바 ‘민족대학’을 자임했던 고려대가 전체 강의의 35%를 영어로 해 그 선봉에 서고, 연세대, 이화여대 등 사립대는 물론 서울대까지도 경쟁에 가세하고 있다. 영어강의 여부를 학과 평가와 교수 개인 업적평가 기준의 하나로 삼는 대학이 늘어남에 따라 중문과 등 외국문학과는 물론 국문과나 국사학과조차 영어 강의 개설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영어강의 가능 여부가 신규 교수 채용 요건의 하나고 신규 임용 때는 영어강의 서약까지 해야 한다. 일본에서 학위를 한 뒤 몇 년 전 임용된 한 교수는 시간표를 짤 때마다 과에서 영어강의를 맡길까..
신뢰도에서 '초선'보다 6배나 앞서는 1위인 한겨레에서 따 왔습니다. 자식들에게 "저렇게 살면 안된다"는 반면교사로서 교육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전여옥씨의 발언과 글 모음 -개인적으로 저는 이회창씨(당시 한나라당 총재)가 대통령이 안됐으면 좋겠어요. 이번 대선에서는 가난과 실패를 겪어본 사람이 뽑혔으면 좋겠습니다.(중략) 그래서 이회창씨보다는 노무현씨가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2002년 대선을 앞둔 시점 인터뷰) -한나라당이 구제 불능이라는 거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 (2004년 2월 인터뷰) -한나라당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이 완전히 부패한 당이다. 차떼기 정당이며 매수정당이다. (박근혜 의원이 포스트 최병렬로 거론되는 것에 대해) 그는 여전히 영남권의 공주로서, 특정지역의 편애 속에서 안주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