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산문] 불량소녀 백서 <★★★☆> 본문

평 / Review

[산문] 불량소녀 백서 <★★★☆>

zeno 2008. 12. 25. 21:39

불량소녀 백서 - 6점
김현진 지음/한겨레출판

  p. 56

  살면서 가장 편한 길은 기존에 닦여져 있는 길 위로 그대로 걸어가는, 기존 제도를 답습하는 길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귀차니즘'은 인류의 어떤 이즘보다 우선한다! 그러나 시간과 정성을 기울여 얻지 않은 것은 그만큼 자신에게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는 법이다.

  p. 65

  하지만 매일같이 성난 암고양이로 살 수는 없다. 무엇보다 화를 낸다는 것은 우리의 소중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행위고, 우리들이 살기에는 세상에 화나는 일이 꽤나 많고 우리에게 날아오는 쓸데없는 소리는 빗자루로 쓸면 열 포대 채울 정도로 많기 때문에 여기에 일일이 화를 냈다가는 서른도 되기 전에 고혈압으로 죽을지도 모른다. 누구 좋으라고!
  좋은 일도 많이 해서 후배 불량소녀들에게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어야 할 우리 불량소녀들은 일찍 죽어서는 안된다.

  p. 74

  기본적으로 인생은 외로운 것이라는 걸 인정하면 혼자 밥 먹고 나다니기 참 쉽다. 애인이 없다는 사실에도 필요 이상으로 예민해지지 않을 수 있다. 내 옆에 누군가 있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니라 아무도 없을 수 있다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실은 어벙한 내가 인생에서 받아들이기 가장 힘든 진실 중 하나였다.

  누군가 함께 있어주기를 너무나 열망하고 혼자 있는 외로움을 도무지 견디지 못해 사람들에게 '놀아줘~'를 외치며 끊임없이 치대거나, 나와 함께 있어준다면 아무나 가리지 않고 연애 감정을 남발해 버린 한참 후에야, 내가 소중한 사람들을 지겹고 힘들게 했으며 감정을 낭비함으로써 나 자신을 마모시켜 왔다는 것을 깨달앗다. 그러고 나서야 사람에겐 혼자 있는 것이 디폴트값이며, 행성의 배열처럼 나와 궤도가 맞는 사람이 있어 그 순간 함께 있을 수 있다면 그 사실에 대해 고맙게 여겨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후 혼자 있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를 불러내서 '따분해', '심심해' 소리나 계속하는 관계 같은 건 절대 맺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따분할 때 몇 번은 친구가 도움이 될지 몰라도 이내 친구에게 따분함을 전염시키는 민폐를 끼치기 때문이었다. 

  p. 126

  '다름'은 그냥 '다름'일 뿐이다. 나의 다름을 남에게 굳이 설명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
  사실 그 선택은 열여섯 살의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한 방식을 선택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인생 뭐 있어? 천년만년 사는 것도 아닌데, 짧은 인생 나 꼴리는 대로 하련다.' 이런 거였다. 사람들이 그런 나를 보고 '일반적이지 않다', '급진적이다'고 한 것은 진지하게 내 문제에 접근하려던 태도가 절대 아니었다. 다만 그들은 내가 한 짓이, 그리고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뿐이다. '일반적이지 않다'는 말은 결국 '난 그게 싫어', '난 네가 싫어'라는 표현에 다름 아니었다.
  ...
  '일반적'이라든지 남들 눈도 생각해야 한다는 것 따위는 다 함정이다. 이런 함정에 일일이 빠져들었다가는 자기가 원하는 길로 십리는커녕 10센티도 나아가기 전에 발병이 날 것이다. 어차피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도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우리에게 최우선이어야 하는 것은 일단 우리 마음이 무엇을 원하느냐 하는 문제다. 우리들은 착한 소녀로 길러지면서 우리의 마음이 뭘 원하는지 무시하고 귀를 막는 법부터 먼저 배웠다. 귀를 막고 친절한 미소를 띤 채 다른 사람의 욕망부터 먼저 만족시켜야 세상이 우리를 원할 거라고 배웠다.
  따라서 그 고약한 배움을 뛰어넘어 우리가 뭘 원하는지 확실하게 마음의 목소리를 듣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알아들었다면 그게 일반적이든 급진적이든 신경 쓸 필요없다. 누가 뭐라든 상관없다. 그런걸 갖고 이러쿵저러쿵 비난하는 사람들은 자기네나 일반적이고 온건하게 잘 살라고 하자. 사실 진정한 온건파는 자기 잣대를 남에게 휘둘러대지 않는다.

  p. 136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러나 그 과정(연애)을 너무 괴로워 하지 않아도 좋다는 이야기다. 남들은 다 예쁘고 아기자기하고 애틋하고 행복하게 사랑하는 것 같은데 나만 외롭게 삽질하고 있는 게 아니다. 사실은 누구나 삽질을 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인생 잘 견디는 데 좋은 약이 된다. 내 눈에 부러워 보이는 저 예쁘고 아기자기한 연인들도 대부분 각자의 병신 삽질 같은 연애의 터널을 지나왔을 것이다. 그러니 어깨를 펴자. 연애 실패는 실패가 아니다. 그대는 그 흔한 연애조차 못하는 외로운 여자가 아니다. 그저 정말로 사랑할 만한 사람을 찾고 있는 과정일 뿐.
  그러니 애인이 없다고 너무 외로워하지도 말자. 헤어진 뒤 울고불고 매달리고 자기 스스로를 학대하지도 말자. 전화를 통해 악담을 퍼붓는 것보다 조용히 고통을 혼자 견디는 편이 훨씬 낫다. 견디기 어렵다면 나에겐 더 좋은 사람이 어울린다는 것, 나는 분명히 이 이별과 괴로움을 통해서 정말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제대로 된 남자 Mr. right에게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는 것을 명심하고 또 명심하자.

  p. 140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연애란, 굉장히 개인적인 것이다. 그래서 누구의 충고도 연애 문제에 있어서는 절대적이고 보편적으로 '바로 이거야! 유레카!' 하는 식으로 잘 들어맞기란 불가능하다. 잘해 봤자 70퍼센트나 80퍼센트 정도 상황에 근접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95퍼센트나 100퍼센트 가까이 갈 수는 없다. 당연히 남의 일이니까, 직접 그 사람이 되어 보지 않는 한 그 상황을 100퍼센트 이해할 수는 없다.

  p. 182

  불량소녀는 '나쁜 년'이 아니다. 자기 이익만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몸뚱이든 뭐든 아무거나 동원하는 그런 여자가 아니다. 불량소녀는 상황을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할 몫은 받아들이지만, 나쁜 년은 전통적인 여자의 이미지(예를 들면 연약하고 가냘픈, 보호해 주어야 할...)와 페미니즘이 일구어놓은 앞길에서 자기 좋은 것만 꼬치 빼먹듯 쏙쏙 취한다. 심한 말로 하면 암캐bitch다.
  ...
  불량소녀와 나쁜 년 사이에는 크레바스처럼 깊은 간극이 존재하는데도 어째서 많은 사람들이 두 집단을 정확히 구분하지 못하고 불량소녀까지 나쁜 년 취급하며 비난하는 것일까?
  첫 번째 이유는 '나쁜 년'이 카멜레온이기 때문이다. 나쁜 년은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는 어떤 집단으로든 가장한다. 실제로 그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이 이쪽에 있을 때는 카멜레온처럼 얼른 이쪽 집단인 척한다. 불량소녀들은 분하지만 아직까지는 소수 세력에 불과하므로 이쪽 편인 것 같은 사람을 만나면 동지를 만난 것처럼 반긴다. 그래서 나쁜 년까지도 반가워하는데 그러다가 보기좋게 속아 넘어간다. 게다가 속아 넘어가더라도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낡아빠진 끈적끈적한 거미줄 같은 함정에 걸려들어 전체 여성을 욕먹일까 봐 화도 못 내고 입을 닫는다.
  두 번째, 불량소녀와 나쁜 년의 결정적인 차이는 이것이다. 불량소녀는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의 권익을 생각하지만, 나쁜 년은 오로지 자신의 권익만을 생각한다. 그리고 나쁜 년은 자기 권익을 위해 머리 쓰고는 여자의 권익을 위한 거였다고 우긴다. 그러면 보는 사람들이 페미니즘을 오해하게 된다. 아, 보고 있으면 소리치고 싶을 정도다. 잰, 그냥 못된 년일 뿐이라고요!
  앞서 말했듯 우리들 불량소녀는 기존의 '좋은 여자' 기준 가운데 시대에 적합하지 않고 만인의 안녕에 걸맞지 않은 점들을 거부하는 존재다. 무엇보다 우리 여자의 의견이나 의사와 상관없이(물론 묻지도 않고) 무조건 이래야 좋은 여자라고 윽박지르는 사회에 대해 발랄하게 가운뎃손가락을 높이 치켜올린다.

  p. 200

  우리는 자기 색깔을 확실하게 보이고, 자기 냄새를 확실하게 풍기는 사람에게 끌리게 마련이다. 자꾸 누군가를 따라하고 싶어하고 뭔가가 되지 못해서 초조해하는 사람은 저절로 피하게 된다. 누군가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은 싫다. 줏대 없는 사람을 사랑해 줄 자 그 누구란 말인가. 몸을 지탱하는 척추는 등뼈이지만, 마음을 지탱하는 척추는 줏대다. 이게 분명하게 서 있지 않은 상태에서 남을 사랑하고 사랑받기란 무척 어렵다. 이렇게 줏대가 오징어 다리처럼 흐물흐물한 상태에서는 연애의 함정에 엄청나게 쉽게 빠진다.
  그 첫 번째는 나를 사랑해 준다면 아무나 사랑하는 것이다. 줏대가 없는 사람은 보통 자신감이 없다. 자신감과 줏대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절대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에는 누군가 날 좋아하고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만으로 황송해서 덮어놓고 연인이 되어버린다. 자신이 진실로 바라고,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도 하지 않고 누가 날 원한다는 기분에만 취해 잔뜩 고양되어 버린다. 이렇게 시작된 연애가 끝이 좋을 리 만무하다.
  두 번째는 상대를 나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아직까지 만족스러운 자신의 모습도 모르고, 그렇다고 지금 내 모습을 제대로 받아들이지도 못한 상황에서 시작하는 연애는 자신의 부족한 자신감을 자꾸 가장 가까운 상대인 연인에게서 채우려는 욕구를 낳는다.
  '나를 사랑하니까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가도록 도와줘야 해. 그러기 위해서 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뭐든 나와 같이 해야 해.'
  즉 아직 스스로를 잘 파악하지 못한 상황인데 지금 상황에는 만족하지 못하겠고, 그러다 보니 스스로 불안해서 상대방마저 마구 휘두르게 되는 것이다. 이러면 자기 자신도 지치지만 상대방도 지친다. 자기가 되고 싶은 자신은 자기밖에 모르는 법이니 상대가 그것을 어떻게 채워줘야 할지 모르는 건 당연하다. 두 연인은 결국 결코 채워줄 수 없는 갈증을 향해 내달리다 고갈 상태에 당도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