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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 / Review

[뮤지컬] Is Your Life The Beautiful Game?

zeno 2008. 1. 5.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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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A.utiful. 영화 <Bruce Almighty>에서 짐 캐리가 일상적으로 내뱉어서 유명해진 말이다. 사실 뷰티풀이라는 말, 한국에서는 일상적으로 쓰이지 않는다. 브라보, 원더풀이라는 말은 간혹 쓰이더라도. 그래서 이 뷰티풀이라는 말, 한국인들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는다. 그저 학생 때부터 학교에서 가르치니까 배운 사전적 의미 - 아름다운 - 만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 그래서 <뷰티풀 게임>이란 이름을 단 이 뮤지컬은 낯설 수 밖에 없다.
  뷰티풀 게임이란 축구를 의미한다고 한다. 20세기의 축구 황제라 불리는 펠레가 자서전 제목을 'My Life and The Beautiful Game'에서 비롯된 말이란다. 나아가, 이 뷰티풀 게임은 인생을 의미하기도 한다. 극 중 오도넬 신부가 존을 비롯한 선수들에게 늘 상대를 전투의 '적'이 아닌 경기의 '상대'로 볼 것을 강조하는 부분으로부터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공존하기를 바라는 극의 메시지가 암시되기 때문이다. 극의 전개에 따라 뷰티풀한 줄 알았던 주인공 존의 인생이 아름답지 않게 끝나는 모습에서 우리는 인생을 되새겨보게 된다.
  극은 아일랜드 한 마을의 축구팀의 떠들썩한 등장으로부터 시작된다. 마을 청년들로 구성된 축구팀은 뛰어난 공격수이자 주장인 존의 리드 아래 상대를 하나 둘 이겨나간다. 그리고 결국 2부로 구성된 극의 1부 피날레를 리그 결승전으로 장식하며 극의 흥분을 최고조로 이끈다. 특히, 극 도입부터 한 팀당 11명이 아닌 7명으로 구성된 축구팀을 등장시켜 박진감 넘치면서도 흥겨운 군무를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10여 명의 선수들이 뒤엉켜 리그 결승전을 형상화해 낸 군무는 압권이다. 다른 여타 대형 뮤지컬 - 오페라의 유령, 맘마미아 - 등에서 보여주지 못하는 스펙터클함과 참신함을 보여주며 인체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포즈와 리와인드를 번갈아가며 사용하여 축구 선수들의 실제 땀방울 까지 보여주는 듯하고, 양 팀의 공방 역시 정석적인 스토리에 따라 전개시켜 보는 이로 하여금 스릴을 맛보게 한다. 다시 말해, 지금껏 봐온 뮤지컬의 군무 중 단연 최고이다!
  여느 대형 뮤지컬 넘버처럼 이 뮤지컬 역시 극 전반을 관통하는 러브라인이 있다. 주인공 존과 그의 여자친구 메리가 엮어내는 러브라인이 바로 그것이다. 처음에는 여느 연인처럼 티격태격하지만, 결국 결혼에 이르고 그들에게 주어진 시련 앞에 비극적으로 헤어지고 마는 그들의 관계는 솔직히 조금 평면적이다. 하지만 이들 외에도 영국인 프랭크와 아일랜드인 크리스틴 사이의 관계, 1부의 긴장을 조성하는 컬리와 버나뎃의 관계는 다채로운 연애 관계를 보여주며 양념 역할을 한다. 게다가 2부 앞부분을 장식하는 주인공 커플의 베드씬은 여느 극에서는 보기 힘들 정도로 솔직하면서도 웃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극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실화에 배경한 스토리 라인이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다시피 주인공 존이 속한 축구팀은 '아일랜드'의 팀이다. 당시 아일랜드는 이미 영국 제국주의의 침탈을 받은 상태였고, IRA(Ireland Republic Army - 아일랜드 공화국군)의 활동이 전면에 드러난 상태였다. IRA는 영국을 타도하기 위해 테러도 불사하는 것이 현실이었고, 아일랜드 정부는 영국 정부의 조종을 받아 이들을 억압하기에 바빴다. 이런 상황에서 축구팀이 이런 갈등으로부터 오롯이 자유롭기란 불가능했다. 특히 조부와 부를 모두 영국인들에게 잃은 극의 안티히어로 토마스가 영국인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감을 표하기에 극 초반부터 시대배경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특히, 토마스의 영국에 대한 악감정은 같은 축구팀에서 뛰는 영국인 프랭크에게 향하는 것에서 드러난다.
  주인공 존은 이런 이야기에 대해 무관심하다. 그가 관심있어하는 유일한 것은 축구 뿐. 연애마저 그에게는 부차적인 것이다. 축구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토마스의 말도, 최소한의 양심을 표출하기 위해 함께 촛불집회에 나갈 것을 종용하는 연인 메리의 말도, 그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그에겐 오직 축구로 성공하여 EPL(English Premier League)에 스카우트 되는 것만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해방'등의 담론을 자기와는 부차적인 것이라며 거부하는 그는 결국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며 인생의 최절정기에 도달한다.
  하지만 그 지점에서부터 불행이 시작된다. 1부의 감초 노릇을 하던 컬리가 영국인 부랑배들에게 살해 당하면서 그의 앞날에 갑작스런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 일을 계기로 토마스는 IRA에 투신하게 되고, 팀은 와해된다. 하지만 존은 여전히 축구에 빠져 산다. 하지만 그에게도 사랑은 있는 법, 존과 메리는 결혼에 이른다. 하지만 첫날 밤, 컬리가 허망하게 죽은 뒤 3년간 연락이 끊겨 있던 토마스로부터 전화가 오고 존은 그를 만나러 간다. 하지만 그게 정치범을 도운 빌미로 작용해 그의 발목을 붙잡게 된다. 바로 EPL의 어느 팀으로부터 스카우트 된 날, 유치장으로 끌려가게 되기 때문이다!
  20년이 넘는 인생 동안 자신은 정치적인 문제와 전혀 무관하다고 여겼던 존은 7년간의 감옥 생활을 하며, 사회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모든 개인은 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IRA의 투사로 거듭난다. 하지만 그는 행동 한번 제대로 펼쳐보이지 못하고 짧은 인생을 마감하고 만다. 자신을 영국 경찰에게 팔아넘긴것이 토마스임을 알고 그를 찾아가지만 결국 그에게 총을 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다른 이에게 살해당하고 말기 때문이다. 이렇게, 축구를 사랑하던 한 젊은이의 인생은 뷰티풀하지 않게 끝나고 만다.
  이 뮤지컬은 독특하게도 이렇게 '무거운' 이야기를 바탕에 깔고 있다. 주인공의 깨달음처럼, 현실 사회 문제를 도외시하는 개인에게 행복 혹은 인생의 아름다움은 언제든 외부적 요인에 의해 깨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요즘 한국은 다들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경제'라는 프레임을 독점한 한 후보에게 대권을 넘겨 주었다. 이념, 정의 같은 것은 구시대적 이야기, 혹은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라며 당장 눈 앞에 먹고 살기 힘든 걸 해결해주는 실용적인 대통령이 좋은 대통령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각자의 인생을 행복하게,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자기 계발'에 몰두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도 그들의 그런 삶을 위협할 수 있는 잠재적 불안요소는 늘 존재하고 있다. 통일, 비정규직 같은 문제들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 관심 갖기를 거부한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관심 갖는 학생은 '운동권'이고,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일반인은 '빨갱이'다. 하지만 존의 인생이 한 순간 무너졌듯, 우리의 인생도 언제나 '포르투나' 앞에 취약하다. 북한 핵을 둘러싼 북-미 관계가 한순간 틀어져 전쟁으로 치달을 경우 우리 모두 생명의 위협에 놓이게 되고, 나 혹은 내 가족 중 한 사람이 갑자기 비정규직이 되거나 이미 비정규직인 상태에서 잘리는 경우 생계를 위협받게 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 무관심하다. 그건 내 일이 아니라고, 난 그런거 싫고 내 취미가 좋으니 귀찮게 하지 말라고.
  이 뮤지컬에서 가장 독특한 점은 이런 스토리가 대형 뮤지컬로 형상화되었다는 것이다. 애초에 이런 상황을 연출해 낸 영국의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을 기저에 깔고 있는 이 연극은 오늘날에도 그 제국주의와 크게 떨어져 있지 않은 자본에 의해 만들어졌다. 신기하지 않은가? 내가 나에게 칼을 겨누다니? 사실 뭐 그렇게 놀랄만한 것이 아니긴 하다. 에비타도 대형 뮤지컬로 태어났고, 체 게바라는 티셔츠에 그 얼굴이 새겨져 전세계 이곳저곳에서 젊은이들에게 '저항의 이미지'로 팔리고 있다. 물론 배후에 숨은 것은 자본. 그래서 같은 맥락에서 사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이 뮤지컬을 보고 제국주의나 자본에 대한 분노로까지 이어지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테고, 있더라도 금세 현실에 매몰되어 내일 회사 갈 일, 학교 갈 일을 걱정한다. 그러니 자본은 부담없이 그들에게 이런 뮤지컬을 제공하는 것이다. 관객들을 정의감에 불타게 해주면서도 자신의 입지는 수입을 바탕으로 더욱 굳힐 수 있으니까. 게다가 내게는 놀랍게도 사람들의 분노는 영국이 아닌 토마스에게 향하더라! 주인공을 수렁에 빠뜨렸다는 이유로.
  여담이지만, 토마스는 딱 80년대 운동권을 닮아있다. 모든 불만과 문제를 영국 제국주의라는 하나의 원인으로 돌리고, 적으로 상정하여 분노하며 행동에 나서지만 결국 자신의 상황이 위급해지자 적과 타협하여 자신의 안위를 확보하고 다시금 이념에 불타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 살며 행복을 느끼는. 그의 어설픈 모험주의는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주변 여러 사람의 삶만 파괴했을 뿐.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이런 안티히어로 캐릭터가 너무 정형화되고 허술하게 설정되어 아쉽다. 보다 중층적이고, 이성적 사유를 바탕으로 한 캐릭터였다면 극의 완성도도 더욱 높아졌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극을 매우 재밌게 보았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캐릭터들을 너무 단순하게 정형화시켰다던가 평면적인 러브라인, 뒷부분에 가 주인공을 허무하게 죽이고 마는 내용,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부각시키지만 기저의 심층은 보여주지 못하는 점 등이 눈에 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부의 축구 결승전 씬은 이 아쉬움을 뒤로 하게 하고 다시금 이 뮤지컬을 보고 싶게끔 이끈다. (다시 말하지만 박건형을 중심으로 배우들이 음악과 어우러지며 만들어 낸 그 장면은 가슴을 뛰게 하고 몸을 들썩이게 만든다. 가히 지금껏 봐온 뮤지컬 중 최고의 장면이라 단언하고 싶다!) 우리의 삶을 정말 Beautiful Game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문화 생활을 즐기고 삶의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거, 정말 Beautiful Game을 만드는 방법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