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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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 / Review

[연극] 고민 있으쎄요? 닥터 이라부에게 가 보세요!

zeno 2008. 1. 5. 12:00


  이라부- 이라부- 이라부- 이라부- 마유미- 마유미- 마유미- 마유미- 마유미-. (연극 <닥터 이라부> 내내 나오는 노래이다. 중독적이면서도 기에 감긴다.) 재밌는 연극을 찾던 중 1월 특별 할인이라는 매력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연극 <닥터 이라부>를 보게 되었다. 원작자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들은 재밌게 보았던 터라, 기대하며 보았던 연극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원작의 에피소드를 충실하게 구현함과 동시에 캐릭터의 개성을 더욱 잘 살림으로써 - 특히 마유미 간호사 역이 인상적이었다 -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아쉬움도 남았다. 일본어 이름이나 지명 등을 그대로 가져다 쓰면서 '고추장'을 등장시킨다던가 '도쿄'와 '동경'이라는 이름을 혼용한다던가 하는 등의 오류는 연극의 맥을 끊었다. 게다가 소극장의 특성이기도 하겠지만 좌석간 지나치게 좁은 간격은 연극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였다. 키가 그다지 크지 않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무릎이 앞 좌석에 계속 닿아 불편해서 연극 내내 다리를 꼬거나 통로 편에 다리를 내놓아야 했고, 옆에 앉은 친구는 연극이 끝나고 다리가 저리다며 고통을 호소할 정도였다. 극장 측에서도, 극장을 섭외한 극단 측에서도 신경 써야 할 부분인 듯 하다.
  그래도 무엇보다 약속했던 큰 웃음을 주었다는 데에서 후한 평점을 주고 싶다. 상대적으로 '착한 가격'에 '제4의 벽'이라 불리는 프레임을 제거하여 관객들과 배우들간의 교류를 확대시켰고, 편안하면서도 재밌는 연극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연극이 시작하기 전에 시작하는 에피소드의 주인공을 등장시켜 휴대폰 에티켓을 교육하는 장면은 매우 신선하였다. 각 캐릭터 역시 잘 살려냈다. 닥터 이라부 역의 배우는 사실 소설 속 모습보다는 영화 <디-워>로 유명한 심혀래의 캐릭터를 닮아보였지만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재미를 제공하였고, 마유미 역의 간호사 역시 돋보이는 외모와 '락커'라는 독특한 캐릭터로 각 에피소드간, 혹은 에피소드 내의 유기적 연결을 도왔다. 뿐만 아니라 각 에피소드의 주연 캐릭터들이 충실하게 에피소드를 구연하면서 다른 에피소드의 조연으로도 훌륭히 연기해 참으로 잘 준비된, 배우들이 혼연일체 된 연극이란 느낌을 주었다. 그 결과물이 100여 분에 불과한 길지 않은 연극 내내 수십번 넘게 원만하게 바뀐 무대 세팅 아닐까. 13일까지 대학로 상상 화이트 극장에서 열리는 이 연극, 세파에 찌든 이들에게 추천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