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돈 후안, 왜곡을 거듭하는 욕망 본문

평 / Review

돈 후안, 왜곡을 거듭하는 욕망

zeno 2008. 4. 14. 22:54

  태어난 지 400여 년이 되도록 인기가 식을 줄 모르는 희대의 바람둥이가 있다. 구전민담이 1630년, 스페인의 신부이자 극작가인 띠르소 데 몰리나에 의해 『돈 후안, 세비야의 난봉꾼과 석상의 초대Burlador de Sevilla y convidado de piedra』로 정리되며 탄생한 ‘돈 후안’이다. ‘귀족’신분과 그에 따르는 ‘명예’를 도구 삼아 욕망에 충실히 수많은 여자들을 농락한 돈 후안은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하지만 이후에도 그는 많은 작가들에 의해 재창조됐고, 많은 민중의 성원을 받으며 죽지 않았다. 1844년, 역시 스페인 출신의 호세 소리야 이 모랄에 의해 『돈 후안 테노리오Don Juan tenorio』로 다시 태어난 그는 조금 변형된 욕망에 따라 난봉을 거듭하다 다시금 죽음에 이른다. 하지만 그는 욕망의 대상이었던 ‘도냐 이네스’의 극적인 구원을 받는다.
  정동섭(2003)은 이런 돈 후안이 시대적 변화를 겪으며 상이한 욕망 구조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한다. 르네 지라르(2001)의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Mensonge romantique et vérité romanesque』에서 제시한 ‘욕망의 삼각형 이론’을 차용하여 소설 주인공의 욕망 체계가 당시의 시대적인 욕망 체계를 반영하여 사회적인 특성을 드러낸다고 보기 때문이다.[각주:1] 먼저, 띠르소作에서 돈 후안의 욕망은 자신의 본능에 따라 아름다운 여인을 농락하는 일에 동원된다. 정동섭은 이것이 스스로의 ‘열정’에 의해 대상을 욕망하는 것이라며 지라르의 ‘열정’ 개념을 대입해 긍정적으로 바라본다.[각주:2]
  한편 소리야作에서 나타나는 돈 후안의 욕망은 ‘속물’[각주:3]의 ‘허영심’[각주:4]이라며 부정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지라르의 이론에 빗대어 볼 때, 돈 후안은 직접 대상을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중개자이자 경쟁자인 ‘돈 루이스 메히아’를 통해 욕망을 실현하게 되는 ‘간접화한 욕망(désir médiatisé)’을 드러내며 ‘욕망의 삼각형’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돈 후안은 돈 루이스와  ‘내면적 간접화(médiation interne)’를 이루며 경쟁 관계를 형성한다.[각주:5] 그로 인해, 도냐 이네스나 ‘도냐 아나’에 대한 농락은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돈 루이스와의 경쟁의 도구, 승리 지표로 전락한다. 정동섭은 이것이 “바로크의 순수하고 진실된 욕망이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거짓된 욕망으로 왜곡, 굴절된 것”[각주:6]이라 주장한다. ‘바로크적 사랑’의 시기에 자신의 ‘순수하고 진실된 욕망’에 충실했던 돈 후안이 낭만주의 시대에 들어서는 스스로의 욕망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왜곡, 굴절된’ 방향으로 투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이분법은 옳지 못하다. '근대적 개인‘의 등장과 그/녀의 사랑에 대한 반작용으로 오히려 보수화 된 사랑의 시기였던 바로크 스페인은 명목적으로는 ‘명예’를 중요시했지만, 실제 귀족들은 돈과 권력을 위해 정략결혼을 한 뒤 ‘정부(情婦)’를 두는 것이 일반화된 사회였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들은 가부장의 명예와 직결된 정절을 강요당하며 억압받고 있었다. 이런 현실에서 ‘전형적 인물’이었던 돈 후안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여 난봉을 거듭한다. 하지만 사랑의 본질이 두 사람의 교류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일방적으로 자신의 욕망에만 충실한 돈 후안을 긍정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는 자신의 ‘순수하고 진실된 욕망’은 가졌을 지언정, 상대의 욕망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왜곡된 형태를 보이기 때문이다.
  ‘돈 후안 테노리오’의 욕망 역시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애초에 ‘간접화한 욕망’에 따라 왜곡된 욕망을 갖고 있던 돈 후안이 성모를 연상시키는 도냐 이네스를 만나 파멸의 순간에서 참회하며 남녀 간의 고결하고 순수한 ‘낭만주의적’ 사랑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정동섭의 관점에서 볼 때,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던 돈 후안이 200년 후 ‘간접화한 욕망’을 갖게 되는 것은 시대 변화에 따라 허영심에 찬 속물이 되면서 타인에게 비춰지는 자신의 모습을 중시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돈 루이스라는 경쟁자를 패퇴시키며 ‘간접화한 욕망’을 충족시키고 마침내 도냐 이네스라는 욕망 대상에 도달하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그는 일종의 ‘이중왜곡’된 욕망을 갖게 된다. 역시 도냐 이네스라는 상대 여성의 감정에 대한 존중 없이 자신의 일방적인 감정 투사로 발현된 돈 후안의 욕망은 이미 한번 왜곡을 겪고, 돈 루이스라는 경쟁자를 통해 ‘간접화한 욕망’을 갖게 되며 두 번째 ‘왜곡’을 겪게 되기 때문이다.
  시대가 바뀌어도 소멸되지 않는 돈 후안의 왜곡된 욕망은 모두 가부장적인 시대상을 반영한다. 바로크적 사랑이 낭만주의적 사랑으로 바뀌어도, ‘난봉’이라는 남성의 일방적인 욕망 추구는 여전히 ‘사랑’으로 일컬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욕망은 당연히 왜곡된 것일 수밖에 없다. 사랑의 대상이자, 또 다른 주체인 여성의 욕망이 제대로 드러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띠르소作에서 드러나는 이사벨라 같은 여성의 욕망은 기껏해야 상대 남성 자체가 아닌 그 남성의 신분에 기인한 명예를 향할 뿐이다. 결국 사랑에 대한 여성의 욕망 역시 가부장제 사회에서 왜곡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공통적인 한계를 가진 두 작품의 돈 후안의 욕망은 시대상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단순히 바로크적 사랑의 한계만을 보이던 욕망이 근대라는 시대 변화에 따라 허영적 측면이 더해져 이중으로 왜곡되기 때문이다. 특히, 남녀간의 고결하고 순수한 사랑을 그리는 낭만주의는 ‘허구’라는 자체적인 한계로 인해 욕망의 왜곡을 부채질한다. 낭만주의는 사랑의 상대를 지나치게 ‘이상화’하여 구체적인 측면을 간과시키는 문제점이 있다. 즉, ‘이상적인 사랑’의 대상이던 상대의 현실태와 환상 간의 차이로 인해 금세 감정이 식어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돈 후안 테노리오의 모습은 문학 작품의 ‘전형적 인물’이라는 평가를 벗어나기 어렵다. 애초에 돈 루이스와의 경쟁심으로 말미암은 도냐 이네스에 대한 왜곡된 욕망이 그녀를 만나면서 변하게 되는 과정이 일견 낭만주의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그 자체가 기독교적 구원의 모티프를 적용하기 위해 도입된 성격이 짙어 극중 개연성도 떨어지고, 돈 후안의 관점에서 도냐 이네스를 지나치게 ‘성녀’라는 이미지로 이상화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평면적인 돈 후안의 성격은 근대문학적 인물의 특징인 전형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돈 후안 테노리오로부터 또 다시 200년이 흐른 ‘지금 이곳’에서 사랑에 대한 욕망은 어떻게 변화하였을까. 사실 ‘이중왜곡’된 돈 후안 식의 욕망은 크게 바뀌지 않은 듯하다. 여전히 낭만주의적 사랑에 대한 환상은 ‘백마 탄 왕자’라는 모티프와 함께 살아있고, 그 허구성 역시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욕망의 왜곡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가부장제 역시 온존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2008년의 한국 사회는 ‘연애 권하는 사회’가 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성인’으로 인정받는 대학생이 되면 당연히 ‘연애’는 성인으로서의 기본 경험으로 간주되고, ‘소개팅’은 그 도구로 인식된다. 이는 또 새로운 ‘욕망의 삼각형’을 형성한다. 사랑하는 상대에 대한 나의 욕망은 그 자체로 순수하지 못하고, 욕망 달성의 중개자 역할을 하는 ‘연애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사회적 인정을 받기 위해 향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상대에 대한 사랑은 자칫 사회적 인정에 대한 욕망으로 치환되어 ‘간접화한 욕망’으로 변질될 수 있다. 게다가 낭만주의의 잔재는 상대를 이상화하는 경향을 덧붙이고 있다.
  잘못된 전제에 기인한 채 연애를 권하는 사회는 개인의 욕망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왜곡시킨다. 물론 순수한 사랑과 욕망도 있겠지만, ‘간접화한 욕망’이 범람한다. 즉, ‘지금 이곳’에 수많은 돈 후안이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상대와의 진실한 사랑이 아닌, ‘사회적 인정’ 혹은 ‘연애’ 그 자체를 욕망하게 되어버린 시대가 왜곡된 여성관을 낳고, 그것이 요즘 특히 범람하는 ‘성’범죄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참 고 문 헌

띠르소 데 몰리나, 『돈 후안, 세비야의 난봉꾼과 석상의 초대Burlador de Sevilla y convidado de piedra』 (서쪽나라, 2002)
호세 소리야 이 모랄, 『돈 후안 테노리오Don Juan tenorio』 (책세상, 2004)
정동섭, 「바로크적 진실과 낭만주의적 거짓 - 욕망의 삼각형 이론을 중심으로 한 돈 후안 비교 연구」, 『서어서문연구』, 제29호, 2003
르네 지라르,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Mensonge romantique et verite romanesque』 (한길사, 2001)

  1. 지라르는 한 개인이 무엇을 욕망하는 것은 그 개인이 지금의 자기 자신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그것을 초월하고자 하는 것인데, 이 때 초월은 자기가 욕망하게 되는 대상을 소유함으로써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서 아마디스라는 전설의 기사를 모방하는 돈키호테를 예로 들며 대상에 대한 주체의 욕망이 대상을 직접 향하지 않고, 중개자에 의해 간접화(médiation)되기도 한다는 것을 밝혀낸다. 즉, 주체의 욕망이 대상을 향해 수직적으로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비스듬히 상승하여 중개자를 거쳐 대상에 이르는 이른바 ‘욕망의 삼각형’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참고로 돈 후안은 소설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같은 문학 분야인 희곡의 주인공이고 돈 후안의 이야기 자체가 하나의 스토리를 따라 진행되기 때문에 분석틀을 차용하였다. 정동섭, 「바로크적 진실과 낭만주의적 거짓 - 욕망의 삼각형 이론을 중심으로 한 돈 후안 비교 연구」, 2003, p. 373. [본문으로]
  2. Ibid., p. 385. 르네 지라르,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Mensonge romantique et verite romanesque』, 2001, p. 61. [본문으로]
  3. 속물이란 자신의 개인적인 판단을 믿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욕망하는 대상들만 욕망하는 존재이다. Ibid, ,p. 30. [본문으로]
  4. 스탕달은 ‘복사’(copie)와 ‘모방’의 모든 형식을 허영심(vanité)이라는 이름으로 지칭한다. 허영심 많은 사람(vaniteux)은 자신의 욕망을 자신의 내부에서 끌어내지 못한다. … 어떤 허영심 많은 사람이 어떤 대상에 대한 욕망을 품기 위해서는, 그 대상이 명성이 높은 제삼자에 의해 이미 욕망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만 하면 된다. 여기서 중개자는 허영심이 만들어낸 한 경쟁자가 되는데, 허영심은 말하자면 경쟁자의 존재를 불러들인 다음 그 경쟁자의 실패를 요구하게 된다. Ibid,. pp. 45 - 47. [본문으로]
  5. 지라르는 스탕달의 『적과 흑』의 예를 들면서 중재자가 주인공과 동일한 세계의 내부에 있어 서로 침범하는 것이 가능한 경우를 ‘내면적 간접화’라고 부르고,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나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에서처럼 중개자가 주인공의 외부 세계에 있는 경우를 ‘외면적 간접화’라고 지칭한다. 그리고 ‘내면적 간접화’의 경우 주인공과 중개자는 경쟁관계에 들어간다. Ibid., pp. 49 - 50. 정동섭, 「바로크적 진실과 낭만주의적 거짓 - 욕망의 삼각형 이론을 중심으로 한 돈 후안 비교 연구」, p. 385 [본문으로]
  6. Ibid., p. 385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