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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실 어제도 공포를 느껴오던 것에 대한 꿈을 꿨다. 바로 3년 전에 활동했던 야구부의 경험이다. '다수', '관습', '남자'의 이름으로 '소수'에 대한 폭력의 문제의식을 못 느끼는 이들에게 나는 공포심을 느낀다. 이젠 좀 세상사에 닳아서 예전보다야 낫겠다만, 굳이 돌아가고 싶진 않다. 덧. 이 글을 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 길게 적지 못하겠다. 음, 아직 나도 의식적으로 무서워하는 게 있구나.
매일 싼 잘 곳을 찾아 움직이다 보니 인터넷을 하기도 하고 못하기도 한다. 이틀 정도 만에 들어간 리더에 온갖 글이 다 수집되어 있길래 훑어보는데 김규항의 글이 참 좋았다. 나도 "대기업 그만둬도 잘 살 수 있어"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여자를 만나고 싶다.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면, 큰 힘이 될 거다. 물론 그렇지 않은 상대에게 그러기를 강제로 요구할 수는 없지. 애초에 그런 사람을 만났으면, 하고 바랄 수 밖에. 상대를 바꾸려는 노력은 분명 가치 있는 행위이지만 지나친 기대를 할 수는 없다. 사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상대에게 저런 남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심지가 좀 더 굳어져야 한다.
'케빈 베이컨'이나 '에르도스'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세상은 경험적으로 참 좁다. 오늘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고등학교 후배를 만났다. 서로 얼굴을 확연히 알아본 것을 보면 서로 아는 사이가 맞다. 처음에는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지만 - 고등학교 때 말을 몇 마디 나눠본 게 전부니까. - 이제 생각났다. 김영민군. 그나 나나 외양은 그대로인 걸 보면 - 그랬으니까 서로 알아봤겠지. - 참 한국 남자애들은 대학 가도 안 꾸미는 애들이 허다하다. 사실 이렇게 세상이 좁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말이 있다. '그건 우리가 일종의 상류 사회 - 문화적 자본을 가진 - 의 일원이기 때문이지.' 물론 이는 '상류 사회'에 속해있음을 자부심으로 여기고자 하는 말은 아니다. 그저 사실이 그렇다는 것일..
그 남자는 나에게 바래다달라고 한다 - 이지민 지음/문학동네 p. 205 진짜 똑똑하고 예쁜 여자들은 능력 있는 남자를 사랑하는게 아니라 그냥 사랑하는 남자들이 죄다 능력이 있다. 선정적인 제목 탓에 보게된 책이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봤는데, 나쁘지 않다. 일종의 연작 소설 시도도 보이고.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의미가 있었던 것은 똑같은 상황을 보는 시각의 차이를 느끼게 되었다는 것. 생물학적 성의 차이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잘못하다간 섹스 결정론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에 판단 보류. 사실 읽은지 너무 오래 됐다. 간간이 관심을 갖고 지켜볼 작가가 생겼다는 정도.
벌써 10여 년이 되어 가는 일이다. 소위 고래를 잡았던 것이. 요 근래 허지웅의 글 중 가장 웃겼던 '포경수술의 음모'라는 글이 저 아련한 기억을 끄집어 냈다. 포경은 내 또래 한국 남자들의 대부분이 거친 신성한 제례다. 굳이 비율을 따지자면 한국 남자 중 연애 못해 본 남자가 고래 안 잡은 남자보다 많지 않을까. 사실 요즘 들어서는 그다지 필요하지도 않고, 허지웅의 글과 그에 딸린 댓글들에 따르면 무려 318가지(!)의 폐해가 있는 포경수술은 겉만 번지르르하되 속은 아직도 '후진국'을 벗어나지 못한 한국 사회를 그대로 반영하는 걸지도. 개인적으로 허지웅처럼 극적인 경험은 없었다. 발기, 몽정, 자위의 '3위일체'가 시작되기 이전인 중1때 포경을 했던터라 허지웅처럼 달밤에 창 밖을 보며 애국가를 부르는..
그 남자 그 여자 - 이미나 지음/랜덤하우스코리아 말머리를 달기가 어려웠다. 에세이로 분류해야 할지, 연애로 분류해야 할지, 잡문으로 분류해야 할지. 알라딘의 분류는 '예술/대중문화.' 그래서 이를 따르기로 했다. 긴 말을 하지 않아도 감이 올 것이다. 이 책의 성격이 얼마나 불분명한가를.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연애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남자'와 '여자'의 시각에서 쓴 1페이지 짜리 짧은 글들이 수백개가 실려 있다. 책 안에 있는 소개로는 '이소라의 음악도시'에 실렸던 내용이라 한다. 굳이 평가할 만한 것이 없다. 그 안에 글이라고 있는 것이 활자화되어 인쇄되어 있긴 하나 '예술'이라 부르기에는 아무런 예술성도 갖추고 있지 못하고, 책을 9500원이나 주고 사기에는 차라리 2500원 더 보..
우연히 어떤 남자를 만났다. 그 남자는 나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말했다. 전 커피를 좋아해요. 갓 볶은 빈을 받아먹는 곳이 있죠. 물론 에스프레소만 마셔요. 허브티도 좋아하지만요. 와인도 좋아합니다. 나중에 공부를 해서 바리스타와 소믈리에가 되는 게 꿈이에요. 참, 클래식도 좋아한답니다. 게르기예프의 반지 초연을 보러 갔었죠.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공연의 티켓은 100만 원이 넘었다.) 와인과 커피를 팔고 클래식이 흘러나오는 북카페를 차리는 게 장차 꿈이랍니다. 나는 생각했다. 이런 젠장. 더 젠장스러운 일은 내가 그 남자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거였다. 자기 집에 나를 데려간 그 남자는 부엌에서 한참 동안 나오지 않았다. 부엌칼이라도 물고 죽었나, 하고 부엌문을 열어 보니 그는 딸기의 꼭지를 따서 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