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김영하 (6)
.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 김영하 지음/문학과지성사 p. 196 여행이란 그렇다. 그것이 일이든 여가이든 오래 하다 보면 묵은 상처들이 드러난다. 그게 서로에게 소금이 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약이 된다. 조그만 외로움도 증폭되어 서로에게 전가된다. 차가운 도시 남자 김영하의 초기작이다. PC통신이 주로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90년대 도시의 느낌이 물씬 난다. 전반적으로 좋다. 역시 김영하는 단편이 장편보다 나은 듯. 그는 정말 영리한 작가다.
오빠가 돌아왔다 - 김영하 지음, 이우일 그림/창비(창작과비평사) p. 183. 여자는 요즘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그렇듯 관습적으로 우울하고, 물론 살기도 혼자 살고, 친구도 없다. 나중에 죄도 없이 할복을 당한 인형이 그녀의 유일한 친구다. p. 227. 재만은 입맛을 잃었다. 역겨웠다. 그는 찬찬히 면면들을 둘러보았다. 저 철면피들. 수천 명의 재산을 간단하게 꿀꺽하고도 아침이면 호텔 식당의 메로구이를 집요하게 발라먹는 저 놀라운 식욕, 추악한 욕망. 문제는 재만도 그들과 전적으로 같은 종자라는 데 있었다. 그제야 재만은 동업자들에게 철저히 냉소적인 조지 쏘로스의 심정을 속속들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 희대의 국제투기꾼을 생각하다보니 재만의 결론은 다소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그러니까, 네놈들 돈까..
지난 주에 이 곳에 와서 처음으로 운동exercise을 했다. 농구를 했는데, 문제는 농구 자체가 아니라 체력. 반 년 정도 거의 운동을 안 해서인지, 원래 체력이 약해서인지 이 곳에 와서 처음으로 스스로가 싫어질 정도였다. 그래서 거금 140$를 내고라도 체육관에 등록하기로 마음 먹었다. 오늘은 그 이후 처음으로 운동을 하러 갔다. 30분 정도 트레드밀에서 뛰고 왔는데, 조금 힘들지만 좋다. 일단 목표했던 '응어리'는 풀고 왔다. 오후 늦게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해 가슴이 답답하고 안절부절 못 하고 있었는데 말끔하게 해결! 애초에 이 곳에 오면서 세운 목표 중에 하나가 건강해지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언제부턴가 달리는 체력을 잠으로 해결하곤 했었는데, 이젠 좀 벗어나고 싶다. 하고 싶은 일도 조금씩 명확해..
p. 36. 그녀 덕분에 나는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지적인 교감을 나누는 것이 생각보다 흥미롭고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계몽주의시대 파리의 살롱이 아마 이렇지 않았을까? 적절한 지능과 타인에 대한 배려, 유머감각을 겸비한 누군가만 있다면 삭막한 채팅방도 파리의 살롱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p. 54. "기회는 신선한 음식 같은 거야. 냉장고에 넣어두면 맛이 떨어져. 젊은이에게 제일 나쁜 건 아예 판단을 내리지 않는 거야. 차라리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게 더 나아. 잘못된 판단을 내릴까봐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거, 이게 제일 나빠." p. 78. "내가 오빠를 잘못 생각했었나봐. 오빠는 아무래도 안 되겠어. 뭐랄까, 뼛속 깊이 게으름이 배어 있다고나 할까. 오빠는 이러니저러니 멋진 ..
p. 184 오랫동안 박의 꿈은 아주 소박한 것이었다. 여자와 손을 잡고 커다란 슈퍼마켓에서 쇼핑 카트를 밀고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이 카트 안에는 여섯 병들이 맥주팩이 들어 있어야 한다. 물론 영주를 만나기 전까지 그는 누구와도 이런 일을 해보지 못했다. 그는 많은 여자와 잠자리에 들었지만 그 여자들을 데리고 시장에 가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그가 스스로를 가련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오랫동안 외롭게 살아본 사람들은 의외로 그렇게 살아내는 방식들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소식(小食)을 하다 보면 양이 줄어들 듯이 인간이라는 것도 만나지 않다 보면 필요량이 감소한다. 물론 자기 연민은 금물이다. 자기 연민은 가끔이야 달콤할지 몰라도 오래 하다 보면 괴물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자기 연민은 에일리언처럼 숙주를..
p. 117 권용준은 이진우의 눈빛에서 어린 사내들 특유의 불안한 매혹을 읽었다. 그들은 아주 쉽게 저보다 나이 많은 사내들에게 혼을 빼앗긴다. 그들의 힘과 여유, 허세에 홀딱 넘어가 한동안 정신을 못 차리고 자발적으로, 기꺼이 복종하는 것이다. 나같은 어린 사내는 정말 "아주 쉽게 저보다 나이 많은 사내들에게 혼을 빼앗긴다." 예를 들어, 학생회 인자 재생산만 하더라도 그런 이치 아닐까. 어느 이들은 나의 이런 비유에 분노하겠지만, 나는 분명 이 구절에서 그 것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