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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 조지 오웰 / 삼우반 <★★★☆> 본문

평 / Review

[소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 조지 오웰 / 삼우반 <★★★☆>

zeno 2009. 6. 22. 09:31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 6점
조지 오웰 지음, 신창용 옮김/삼우반

  p. 159.

  요약해보자. 접시닦이는 노예이고, 대개는 불필요하고 쓸모없는 일을 하는 낭비되는 노예이다. 궁극적으로 말하자면, 그에게 계속 일을 시키는 것은 그가 여가를 얻을 경우에는 위험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다. 그리고 마땅히 접시닦이의 편을 들어야 하는 교육 받은 사람들은 접시닦이에 대해 아는 것이 없고, 그 결과로 그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이런 과정을 묵인하고 있다. 내가 접시닦이에 관하여 말하는 것은 그의 사례를 고찰해왔기 때문이다. 다른 무수한 유형의 노동자에게도 이것은 똑같이 적용될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직접적인 경제 문제와 관련 없이 접시닦이의 생활에 대한 기초적인 사실들에 관하여 나 자신의 의견을 밝힌 것뿐이며, 대체로 진부한 견해임에는 의문이 없다. 호텔에서 일하면서 들게되는 생각들의 한 표본으로서 나는 이것을 밝히는 것이다. 

  pp. 228 - 230.

  걸인의 사회적 지위에 관해 해둘 말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들과 교제를 하고 그들도 평범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사회가 그들에게 보이는 이상한 태도가 문득 떠오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걸인과 "일하는"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걸인들은 별개의 인종이고, 범죄자나 매춘부처럼 버림받은 사람들이다. 일하는 사람들은 "일"을 하지만, 걸인들은 "일"을 하지 않는다. 걸인은 기생충이고 본질적으로 무가치하다. 벽돌공이나 문학 평론가가 생활비를 "버는" 것과는 달리 걸인은 생활비를 "벌지" 않는다. 걸인은 사회적 궂은살에 불과하며, 지금의 세상이 자비로운 시대이기 때문에 관용을 받을 뿐이지, 본질적으로는 경멸할 만한 존재이다.
  그러나 우리가 꼼꼼이 살펴보면 걸인의 생계비와 남부끄럽지 않은 무수한 사람들의 생계비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걸인은 일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일이란 무엇인가? 잡역부는 곡괭이를 휘두름으로써 일한다. 회계사는 숫자를 더함으로써 일한다. 걸인은 어떤 날씨에도 한데에서 서 있고, 하지 정맥류와 만성 기관지염 등에 걸림으로써 일한다. 이것도 다른 어떤 것과 마찬가지로 직업이다. 물론 아주 무익한 직업이긴 하지만, 그렇게 본다면 평판 좋은 많은 직업들도 아주 무익한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유형으로서도 걸인은 다른 수십 가지 직업인들과 비교하여 더 나은 사람들이다. 걸인은 대부분의 특허 매약 판매 상인과 비교하여 정직하고, 일요 신문 사주와 비교하여 고상하며, 집요한 할부 판매원과 비교하여 상냥하다. 간단히 말해서 걸인은 기생충이지만, 상당히 무해한 기생충이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부지할 정도 이상을 사회로부터 뜯어내는 일이 거의 없고, 또 우리의 윤리 개념에 따라서 걸인을 정당화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걸인들이 고통을 당하면서 되풀이하여 갚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걸인이 남들과는 다른 계층에 속한다거나 대부분의 현대인에게 경멸당할 만한 권리를 줄 만한 점이 전혀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러한 질문이 생긴다. 걸인은 왜 경멸당하는가? 실제로 걸인은 보편적으로 경멸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걸인들이 웬만큼 생활비를 벌지 못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라고 믿는다. 실제로 일이 유익한가 무익한가, 생산적인가 기생적인가를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요구되는 것은 그 일이 수익성을 지녀야한다는 것뿐이다. 에너지, 능률, 사회 복지 사업 기타 등등 모든 현대적인 이야기에서 "돈을 벌고, 합법적으로 벌고, 많이 벌어라" 하는 의미 말고 또 무슨 의미가 있는가? 돈은 미덕의 주요한 기준이 되었다. 이 기준에서 걸인은 낙제이고, 이것 때문에 그들은 경멸당한다. 구걸을 해서 일주일에 10파운드라도 벌 수 있다면 걸인은 즉각 남부끄럽지 않은 직업이 될 것이다. 사실적으로 보아 걸인은 다른 비즈니스맨처럼 일이 들어오는 대로 생활비를 버는 비즈니스맨일 뿐이다. 걸인은 대부분의 현대인들과는 달리 명예를 팔지 않는다. 다만 그는 부자가 되는 것이 불가능한 직업을 선택하는 실수를 한 것뿐이다. 

  표제에서 명시하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각각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묘사하고 있다. 앞선 인용구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오웰의 파리 생활은 접시닦이 생활이었다고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 인용문이 속한 22장의 내용이 불공정한 접시닦이의 삶에 대한 분노의 사자후인데 그 거친 요약이 인용문이다. 사실 저 글에서 "접시닦이"를 "노동자"로 치환해도 글이 자연스럽다. 특히 "한국의 노동자"로 바꾸면 순식간에 시공간적 적실성을 획득하게 된다. 사실 이 짧은 글만으로는 그 내용이 자세히 드러나지는 않는다. 차후에 기회가 되면 22장 본문을 옮겨놓으면서 동시에 한국의 노동자에 관한 글을 쓰도록 하자.
  여하튼 100여 년 전 당시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에 대한 상세한 르포르타주를 읽는 기분은 신선하다. 요즘 한국 상황에 대한 여러 블로거들의 글들과 달리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실화는 아니라고 한다. 사실에 어느 정도 기반하되, 취재 등을 거친 추가 정보들을 종합하여 극화한 것이라 한다. 역시나 때로는 논픽션보다 픽션이 더 실감날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사회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고 쓴 글이 아니기 때문에 논리의 정합성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다만 런던에서의 걸인 생활을 바탕으로 책 말미에 서술한 두 번째 인용문에서처럼 부랑자에 대한 사회의 부당한 시선에 대한 비판은 경청할 만하다. 특히, 최근 한국이 노숙자의 증가 추세마저 미국을 따라가고 있는 시점에서 - 한국의 노숙자는 외면적 유사성을 띠지만, 미국의 노숙자는 흑인, 원주민 등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외면적 이질성에서 공포감을 안겨준다. - "걸인"과 "직업인"을 가르는 시각이 부당하지는 않은지, 과연 현재 늘어나는 장기 추세에 있는 노숙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절한 시각일지 되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