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에세이] 여자에게 <★★★☆> 본문

평 / Review

[에세이] 여자에게 <★★★☆>

zeno 2009. 3. 30. 17:07
여자에게 - 6점
장영희 외 지음/한겨레출판


  p. 16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1분이 걸리고 그와 사귀는 것은 한 시간이 걸리고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하루가 걸리지만, 그를 잊어버리는 것은 일생이 걸린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남의 마음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만큼 보장된 투자는 없다. 사람은 단지 인(人)에서 끝나지 않고 인간(人間), 즉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형성되어야 존재 의미가 있다.

  p. 39

  내가 20대로 돌아간다면 괜히 긴장하지 않겠다. 무작정 무서워하지 않겠다. 다가오는 사람들을, 사랑을 두려워하지 않고 겁내지 않고 차분히 받아들이겠다. 지나친 독서는 미리 겁을 주는 역할도 한다. 다 자라기도 전에 마구잡이로 읽은 무수한 소설들은 사랑을 무서운 일로, 파괴적인 일로 묘사했다. 고전 소설에서 여자 주인공이 늘 사랑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타락하거나 버림받아서 죽어가는 걸 나는 너무 많이 읽었다.
  그래서 사랑을 방어적으로 대했다. 방어적이라기보다 무조건 피했다. 어떤 남자가 단둘이 차만 마시자고 해도 그를 의심했다. 내 인생을 망치려 드는 사람이라고 단정했다. 사랑은, 시작은 어느 것이나 달콤해도 끝은 천태만상이라고 여겼다. 무조건 공부를 많이 해서 사회적으로 힘을 기르고 나서, 변별력이 생기고 나서, 아주 강해지고 나서 인간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려고 애를 썼다. 틈만 나면 일부러 어려운 문장으로 된 영어책을 읽고 고전음악을 들었다. 그렇게 어렵고 힘들게 살면 막연히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p. 88

  우리에게 뭔가를 팔려고 하는 '보이지 않는 손'의 본질은, 불안을 자극하여 영혼을 잠식하는 것이다. 이것이 물신(物神)이다. 그리하여 이 세계에서 우리는 끝없이 무언가를 사도 끝없이 불안해진다.

  p. 132

  남들이 다 하면 왜 그걸 꼭 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꼼꼼하게 따져보자. 무조건 유별나게 튀어가며 살자는 게 아니다. 그저 자신이 결정하는 자신의 삶에 건강한 자신감을 가지라는 거다.

  p. 174

  사랑한다는 것은 남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남과 내가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 차이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사랑일 것이다.

 

  한 친구에게 선물할 책을 고르던 중에 추천받아 보게 되었다. '여자'를 타겟으로 삼고 있는 탓인지 사실 오롯이 공감되지는 않는 것 같다. 다만 서로 다른 9명의 여자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 꽤나 인상 깊다. 글 실력이 제각각이긴 하지만, 각자의 색깔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자기계발서 한 권보다는 차라리 이 책 한권을 책꽂이에 꽂아놓고 이따금 방황할 때마다 꺼내 읽어보는 것이 스스로에게 훨씬 도움될 것 같다. 생각 같아서는 이 곳을 찾아주는 많은 여자 친구들에게 한 권씩 선물하고프지만, 현실적으로 사정이 허락하지 못하니, 직접 사 보시길 권해 드린다.
  이 책으로 처음 알게 된 화가 김점선이 알고 보니 지난주에 타계했다. 조금 섬뜩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꽤나 멋진 사람 같은데. 부디 편한 곳에서 쉬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