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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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사회과학 르네상스는 오는가 / 우석훈

zeno 2008. 12. 14. 20:12

‘부분균형’이라는 분석 틀을 만든 앨프리드 마셜이 “경제학은 사회과학의 여왕이다”라고 했단다. 이후에 마셜의 책을 꽤 많이 읽었는데, 정말로 그가 그런 말을 했는지는 찾지 못했다. 요즘 다시 부활하는 케인스의 적 중에 한 명이, 바로 이 마셜이었다. 어쨌든 이 한 문장은 스무 살 청춘이었던 나의 가슴을 뛰게 했고, 내가 태어난 이유를 비로소 찾은 것 같았다. 서른 살이 되었을 때, “개뿔, 경제학!”이라는 말이 나왔다. 외환위기 시절 한국의 경제학은 모든 것을 은폐하려고만 했고, 과학은 숫자로 가득한 예쁜 도표에서만 존재했다. 이제 마흔이다. 다시 이 문장을 접하고는 “미네르바가 사회과학의 여왕이다”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점심이나 저녁식사, 그리고 차를 마실 때 미네르바보다 더 끔찍하고 참혹하게 미래를 예상하던 증권사나 연구소의 경제학자들이 다음 날 발표한 문건의 모든 문장은, “나도 월급쟁이야”라는 단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월급이 그렇게 중요하더냐, 전문가라는 사람이!

‘마르크스주의 르네상스’라는 말이 있다. 한때 마르크스 경제학이 화려하게 부활한 적이 있는데, 바로 1974년 1차 석유파동 이후의 한동안이었다. 케인스 경제학이 위기를 맞으며, ‘이것은 석유값 때문이다’ 혹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음모 때문이다’라고 되지도 않는 말을 할 때, 마르크스 경제학에서는 그게 맞든 틀리든 나름의 설명을 했다. 과잉생산 때문이든가, 부문별 조정 실패 때문이든가, 아니면 유통주의적 임금조정의 실패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다리면 좋아진다’는 우파들을 제치고 좌파끼리 논쟁하던 시기가 있었고, 이 시기에 마르크스 경제학은 다시 한 번 꽃을 피웠다. 고 정운영 선생이 평생 풀어보고 싶었던 ‘전형논쟁’이라는 것이 등장한 것도 이 시기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파 경제학에는 ‘공황론’이라는 것이 없고, 위기이론이라는 것이 아예 없다. 그러니 경제위기가 오면, 당연히 공황이라는 이론 틀에서 출발하는 좌파 경제학이 힘을 쓰게 되어 있다. 지금이 딱 그런 시기이다. 과연 한국에서 사회과학 르네상스가 올 수 있을까?

1만 권 팔면 ‘신의 영역’

자, 한국의 출판시장 규모를 살펴보자. 대한출판문화협회 통계로, 2007년 3조1000억원 정도 된다. 그렇다면 시계를 10년 뒤로 돌려서, 외환위기의 여파가 몰려들기 시작한 1998년에는? 3조7000억원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의 출판시장은 고작 6000억원만 줄어든 선방을 한 셈이다. 물론 이것은 ‘슬픈 선방’이다. 1998년 한국에서는 1억9000만 권이 발행되었는데, 2007년에는 1억3000만 권이다. 확실히 부수는 줄었다. 그렇다면 어떤 책이 가장 많이 줄어들었을까? 2007년 한국에서 사회과학 도서는 총 1532종이 발행됐다. 1999년 1351종보다 약간 늘어난 셈이다. 그렇다면 1998년에는? 두둥! 1만4460종. 1998년에서 1999년으로 넘어오는 1년 사이에 사회과학 도서가 만 종 단위에서 천 종 단위, 즉 10분의 1 가까이로 준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이 충격에서 회복하지 못한 상태가 계속됐다. 다시 말해 외환위기를 경계로 한국에서는 사회과학이 죽었고, 이게 출판시장 자체를 위축시킨 1등 요인이 된 셈이다.

아주 과학적인 방식은 아니지만, 2년 전 나는 여러 통계를 종합해서, 한국의 사회과학 독자가 ‘2만명’이라는 가설을 세운 적이 있다. 이 가설은 대체로 여러 정황에 대해 합리적 설명을 가능하게 한다. 사회과학 시장은 50권에서 시작한다. 가족과 지인이 사주는 분량이다. 교수 가 내는 책은 1000권이 넘으면, 우리끼리 베스트셀러라고 부른다. ‘명함 대신 사용하는 책’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2000권을 넘으면, 출판사의 손익분기점을 넘어 최소한 손해는 안 끼치는 책이 된다. 5000권을 넘기면, ‘50명의 글쟁이’ 안에 들어간다. 고종석 같은 저자가 대충 그 선에 서 있는 걸로 안다. 1만 권을 넘기는 것은, 신의 영역이다. 이런 책을 낸 출판사는 보통 ‘중견 사회과학 출판사’라 분류된다. 이 정도 됐을 때 저자가 받는 인세는 1000만원 안팎이다. 그 이상의 경지는 하늘이 하는 일이다. 장하준은 그래서 ‘신 중의 신’이라 불린다. 국방부 불온문서? 그것도 신의 능력에 포함된다.

최근 일본의 어느 에디터에게 놀랄 만한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일본의 출판시장은 한국보다 3배 이상 큰데도 이른바 ‘심각한 책’이 연간 1500종 나오는 데 비해, 한국에서 같은 1500종이 나온다는 것이다. 우리는 한국 사회과학을 우습게 보지만, 어쨌든 그는 이것을 한국의 저력이라 파악하며, 일본이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매번 외국 저자들에 비해서, ‘급 떨어지고, 질 떨어지는’ 저자 정도 취급받는 한국 사회과학의 지은이들이, 지난 10년간 일본보다 규모도 작고 구조도 열악한 상황에서, 정말로 이 악물고 사회과학이라는 장르를 지켜온 셈이다. 한국인은 한국 저자를 우습게 보지만, 일본에서는 그렇게 보지 않는 모양이다. 오히려 금방 망할 것 같아 보이는 한국이 아직도 학술문화에서 저력을 가지고 있다고 경계하는 눈치이다.

저자의 고령화가 진짜 위기

한국의 사회과학 시장은, 지난 10년 동안 2만명 정도의 사회과학 독자, 1000명 미만의 저자, 그리고 아직 남아 있는 사회과학 출판사들이 이 악물고 지켜온 시장이라서, 단군 이래 최악의 출판 공황이라는 작금의 위기 상황에서도 어찌어찌 버티기는 할 것 같다. ‘신의 영역’이라는 1만 권 팔아 1000만원 버는 상황에서도 버텼는데,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다. 그러나 저자의 나이가 점점 많아지고, 편집자의 나이도 같이 높아지는 것, 이건 위기다. 20대가 에디터로 활동하고, ‘지금 여기’에 대해 얘기를 던지는 20대 저자들이 등장하지 못하는 이 구조적 위기, 이건 정말 위기이다. 일본과 한국 시장의 미래 구조 차이는 바로 이 대목에 있다. 즉, 길게는 못 버틴다.

르네상스는 오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이 위기에서 더 많은 사람이 분석하고, 더 많은 사람이 쓰고, 더 많은 사람이 읽고 떠들면서 소통해야 사회적 대화가 시작되고, 사회 합의든 논의든 다음 단계를 위한 진화가 시작된다. 지금보다 10배 많은 사람이 글을 써서 사회과학 독자가 1998년 수준인 20만명이 되면, 나는 비로소 한국형 경제모델도 시작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가장 핵심 쟁점인, 사회과학을 바탕으로 한 문화예술 분야의 ‘시대와 호흡하기’ 그리고 ‘얘기 만들기’가 시작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지금, 세상은 위기이다. 많은 사람이 그 위기를 직시하지 않으면, 그 시스템은 결국 붕괴하게 된다. 한때, 세계의 제국이던 네덜란드가 그렇게 붕괴했다. 위기의 순간 사회과학적 분석과 인문학적 상상이 결국 위기로부터 세상을 구하는 것이다.

단지 ‘용기를 내라’는 이명박식 처방으로는 아무것도 구원할 수 없다. 문화경제로의 전환, 그 첫발은 이 위기 국면에서 사회과학 르네상스를 이룰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그래야 영화도 살고, 만화도 살고, 음악도 살아난다(하나만 부탁하자. 제발 도서관들, 출판사에게 ‘영광으로 알고 책 공짜로 달라’는 거, 그것 좀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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