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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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야!한국사회 / 20대여! 꿈이라도 꾸어 보자 / 김현진

zeno 2009. 1. 13. 10:33
2009년이 어떤 해가 될 것 같으냐는 질문을 받았지만, 방송 시간이 모두 끝나버린 시간에 켜져 있는 텔레비전 채널처럼 명멸하는 점과 지지직∼ 하는 소리만 날 뿐, 아무것도 안 보여서 차마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2008년을 살아낸 우리들이 2009년을 어찌 밝게 전망할 수 있을까. 물가와 몸무게를 포함해 싹 다 올라가기만 하는데, 그 중 안 올라가는 건 내 월급뿐이라는 웃지 못할 농담처럼 아직 1월인데도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을 보면 또 올 한 해를 어찌 견디나 싶어 덜컥 겁이 먼저 든다.

다만 살아서 견디는 것만이 지상 과제가 된 88만원 세대에게는 올 한 해가 또 어떤 해가 될까. 어떤 해가 되든, 더 늦기 전에 오늘의 88만원 세대들은 한번 꿈이라는 것을 꿔 봐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영악하단 말 듣는 요즘 애들은 사소한 계산, 자잘한 계획을 세우는 데는 무척 강하다. 물건 하나 사는데도 지마켓이니 다나와니 하는 사이트를 두드려 순식간에 몇백원 차이까지 척척 가격비교를 해내고, 연봉을 얼마를 올리겠다 토익 점수를 얼만큼 올리겠다 적금을 얼마를 들겠다 그런 계획들은 잘 세우지만, 정작 우리는 그 와중에 ‘꿈’이란 걸 품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직업을 바꾸어 선생님이 되겠다, 인사고과를 잘 관리해 승진을 하겠다, 올해 안에 천만원을 모으겠다는 건 구체적 목표일 뿐 꿈이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추상적으로 보일 만큼 커다랗고, 대책 없어 보일 만큼 낭만적인 그런 꿈 말이다. 전쟁 없이 평화로운 세계라든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라든가, 굶는 아이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등의, 한 사람이 꾸어서는 아무것도 안 되지만 여러 사람이 품으면 아주 약간이라도 까딱할 수도 있는 그런 초대형의 것으로. 올해가 우리 88만원 세대에게 스케일이 큰 꿈 하나 정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다시 말하지만 로또가 당첨되었으면 좋겠다, 스피디백(루이비통 가방 인기 모델)을 하나 갖고 싶다, 따위는 ‘꿈’이라고 할 만큼의 것이 못 된다.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가슴속에 간직하고 끊임없이 꿈꾸는 것, 그리고 그것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 그게 꿈이다. 어디 미칠 게 그렇게 없어서 20대보고 재테크에 미치라고 하는 세상, 걱정 말자. 재테크에 미칠 때는 얼마든지 온다. 아니, 미쳐야만 할 때가 곧 오기 싫어도 와 버린다. 밥걱정만 해야 될 때가 곧 온다. 눈 한 번 깜빡하면 스물다섯, 두 번 깜빡하면 이내 서른이다. 그 다음부터는 꿈을 꿔 보고 싶어도 그런 것들과는 어쩔 수 없이 격리되어 이 험한 나라에서 조그만 밥그릇 요만큼이라도 채우려 계속해서 싸워야 하기에, 꿈 같은 건 뒷세대에게 조용히 물려주어야 한다. 그게 어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오늘의 88만원 세대는 재테크에 미치고 가난한 아빠가 되지 않으려 벌벌 떨다가 꿈이라는 그것에는 손 하나 안 대고 마치 가져 본 적도 없는 것처럼 완전히 새것의, 미개봉 상태로 뒤따라오는 이들에게 고스란히 넘겨주어 버린 최초의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 생각만 해도 슬프고 참담한 일이다. 눈 깜짝할 사이 그때가 오기 전에, 아무것도 확실하게 손에 쥔 것이 없는 지금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누리자. 그 대책 없는 꿈은 가소로워 보일 정도로 연약한 힘일지언정, 아주 조금이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생생한 동력이기도 하다. 세월 더 가기 전에, 제발 꿈을 꾸자. 꿈이라도 꾸어 보자, 88만원 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