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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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 / Zenol

경성애사

zeno 2008. 7. 31. 20:58
  pp. 180 - 182

"당신의 일이라는 거 말이야. 애국주의, 민족주의를 낭만으로 포장한 사람들을 위해 하는 일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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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밥에 굶지 않을 정도의 도시민과 감상의 껍질을 핥으면서 서구 문물로 계몽의 깃발을 든 지식인들이 말하는 애국이 바로 독립운동이지. 허영 덩어리에 위선으로 가득 찬 말로 천하를 봉기하고 백성들 가슴에 피멍 같은 희망을 줬다 뺏었다 하는 것이 너희 투사들이 하는 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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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지면 노동자는 밥알 대신 쥐약이라도 삼켜야 하지. 농촌에서는 소작료가 밀려 농기구에 빨간딱지가 붙어도 찍소리 한번 못 내고. 그런데 독립투사들은 다 어디 있지? 암살이 있고 쿠데타 기도가 있고 계급투쟁, 노동쟁의, 여성해방운동이 있는 도시 어디에 있냐고. 치밀하고 교활한 왜놈들이 문화 정책을 내세워서 예술을 팔고 예술가들을 타락시키는 마당에 너희는 어디서 투쟁을 하느냐 말이야. 밟을 땅조차 없는 만주 벌판 설한풍을 향해 가는 망국인, 임금 노예로 전락한 일본 땅의 우리 조선인 노동자들 한을 알고나 있나? 백성들 가슴 밑바닥에 깔린 독립의 의지, 희망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 언제까지나 왜놈들 발길질에 나둥그러져 있지만은 않는다고. 하지만 모두들 독립투사가 되어야 하나? 너희 이름 앞에 붙은 명예와 명성이 굴레라는 걸 알고나 있는지 궁금하군. 이런 말 할 자격 없는 놈이라고 비꼬지 마. 나라니 민족이니 독립이니, 관념이나 이상 따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백성들에게는 하늘의 뜬구름 같은 게 아닌가? 제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으면 그나마 보지 못하는 하늘의 구름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