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째 포스트를 하려다 만 내용과 앞으로의 일에 대해 몇 자 적으려 합니다. 하지만 사실 많은 이들에게 매우 재미없는 내용이 될 수 있기에 한 칸 접어서 넣겠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클릭해서 보시길.
역시 시작은 며칠 째 고민했던 내용에 대한 썰로 시작해야겠습니다. 지난 며칠간 부끄러웠습니다. 스스로의 관념성 혹은 비겁을 깨달았습니다. 촛불집회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촛불집회가 어느덧 50회를 넘어 60회를 향하고 있습니다. 정세는 6.10의 대규모 집회를 지나 결국 각 교계에서 '시국'을 내걸고 집회를 주도하기에 이르렀고, 정부는 여전히 마치 국민들을 상대로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황당한 대처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50 여 회 중에서 개인적으로 몇 번 참가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6월 10일의 대규모 집회 이후에는 아직 한번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몇 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집회가 제게 '흥미'를 제공해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처음에 블로그에 '폭력 진압'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경찰의 구태의연한 진압 방식에 분노했었고, 그래서 나갔었습니다. 첫 날의 경험은 흥미로웠습니다. 태어나서 가 본 집회 중 그렇게 대규모로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서울 도심의 차로를 거침없이 활보하는 경험은 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날 제게, 서울은 일종의 '해방구'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두번, 세번 갈 때마다 흥미는 그에 비례해 반감해갔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 탓에 들리지 않는 연단의 목소리, 정처없이 떠밀려 가는 사람들, 하나로 종합될 수 없는 각자의 목적들 등 각종 요인들로 인해 더이상 촛불집회는 제게 흥미를 제공하지 못했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공권력에 대한 저항이 어떻게 흥미의 수준에서 논의될 수 있냐며 반박하시는 분들도 있겠습니다. 네, 타당한 지적입니다. 저항의 역사를 통해 조금씩 획득해 온 민주주의는 단순히 흥미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자, 존재의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습니다. 혹은 제가 변했습니다. '내가 춤추지 않으면 혁명이 아니다'란 말도 있습니다. 소위 '신좌파'의 특성을 드러내는 말이라고 일컬어지요. 제가 최근에 생각하고 있는 바도 유사합니다. 아무리 좋은 이념과 내용이다 하더라도 그것이 대상으로 삼고 있는 대상의 행복을 저해한다면 그 의미와 가치가 떨어지고, 심각한 경우에는 무용한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번 시위의 경우에는 좀처럼 보기 힘들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모이고 있지만, 이들의 목소리가 하나의 내용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특성이 있습니다. 가장 온건한 입장에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및 재협상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이런 입장마저 정부의 태도로 인해 변화하여 反정부, 대운하 반대, 언론 탄압 반대, 공공부문 민영화 반대 등 다양한 이슈로 확산되었습니다. 제 입장 역시 이런 의견들과 대체적으로 궤를 같이합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부분에서 약간씩의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로서는 흔쾌히 적극적으로 참여하기가 꺼려집니다. 사실 변명일 수도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상과 현실을 어느 정도 합치시킬 것이느냐는 문제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시험에서 불가능해 보이는 백점을 목표로 할 것이냐, 현실적으로 노력하면 가능해 보이는 85점을 노리느냐인 것입니다. 만점을 꿈꾼다면 이는 정말 생각만해도 짜릿한 목표겠지만, 이는 현실 가능성이 극히 떨어지게 됩니다. 쉽게 지치게 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목표를 조금 낮춰잡으면 이는 현실화됩니다. 뿐만 아니라, 그 성취감은 노력을 이어나갈 수 있는 촉매제가 됩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해 제기될 수 있는 반론이 또 있습니다. 그렇게 구름 위에서 생각할 시간에 차라리 땅으로 내려 와 직접 행동하라는 것이지요. 타당합니다. 어차피 혼자 방 구석에서 머리 싸매고 고민한들, 현실과 유리되어 있는 상황의 사고는 '공상'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혼자 그렇게 몽상하게 된 것은 행동을 주저하도록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이미 경찰의 과잉 진압은 치달을 대로 치달았습니다. 시민의 손가락을 깨물고, 방패로 얼굴을 가격하고, 소화기로 물리적 불이 아닌 사람의 불을 끄려하고, 그 안에는 최루액을 섞어 몸 속의 물을 짜내려 하고, 경찰청장이라는 사람은 살수차의 물대포에 형광액을 섞어 그 물을 맞은 사람은 집 끝까지라도 쫓아가서라도 잡아내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있습니다. 이에 분노했었습니다. 그래서 시위에 나섰고, 나서던 때에 이에 맞서기 위해 무장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가는 날마다 그런 충돌은 없더군요. 혹은 집에 돌아온 뒤에야 그런 폭력이 자행됐습니다. 그러면서 제 마음속의 공포는 커졌습니다. '가서 맞으면 어떡하지? 가서 끌려가면 어떡하지?' 처음에는 그런 것에 맞서겠다고 생각했던게 점차 흐려졌습니다. 때마침 찾아온 학기말고사는 이런 비겁을 자기 정당화시켜주었습니다. 이런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해 나가기가 망설여졌습니다. 혹여 누군가 같이 나가자고 했다면, 나섰을테지만, 홀로 나설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며칠 전 아침에 동생이 묻더군요. 이제 안 나가냐고. 전 그 때 다가오는 스카우트 행사에 가야하기 때문에 만일에 있을지도 모르는 연행을 당할수는 없다고, 몸을 사려야 한다고 대답했었죠. 그건 비겁이었습니다. 한낱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 나약한 제 자신 탓이었습니다. 평소에 그토록 직접민주주의를 떠들어댔고, 양심과 정의에 따른 실천을 주장했으면서도 막상 상황이 닥치자 두려움에 뒤로 몸을 빼는 '먹물'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자아비판이 오히려 자족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난 이런 반성도 할 줄 아니 역시 양심적이야. 앞으로 잘하면 되지. 나쁘지 않아.'라고 생각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지 말아야겠지요. 누군가 그러더군요. 인간은 평생동안 자기 합리화를 일삼는 동물이라고. 그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자아비판이 현장을 떠나서야 가능한 것을 보면 정말 이 모든 글은 너저분한 자기 합리화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장을 떠나있다는 것은 지금 서울을 떠나 익산의 원광대에 와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곳에서 저는 이번에도 역시나(!) 스카우트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하는 행사는 World Scout Youth Forum(WSYF)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습니다. 만 18세부터 26세이며 스카우트 활동을 하고 있는 전세계의 청소년Youth들이 모여 하는 포럼인거죠. 실제 활동 내용은 스카우트에서 모토로 내걸고 있는 내용에 대해 세계 청소년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등을 논의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전문 학술 회의가 아니다보니, 대체로 그저 각 나라 대표들이 모여 친교를 쌓고, 자체 준비 위원회Planning Committee을 만들어 다음번 포럼을 준비시키고, 그 과정에서 투표가 이뤄지며 며칠 간 토의한 내용을 결의문Resolution 형식으로 만들어 곧이어 열리는 World Scout Conference에 제출합니다. 전 그 과정에서 한국스카우트연맹에서 Planning Committee에 파견한 한 명의 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명목적인 역할은 한국스카우트연맹과 Planning Committee를 연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를 제외한 다른 Planning Committee 위원들은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3년 전 튀니지에서 열렸던 포럼에서 자신들이 입후보하여 선거를 통해 선출된 사람들입니다. 그만큼 자존심과 야망이 크고, 열정적으로 이번 포럼을 준비했죠. 하지만 전 아시다시피 그다지 매사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성격이기도 하고, 중간에 투입되어 어떻게 해야할지도 잘 모르겠고 해서 수동적으로 지내왔습니다. 그래도 한 일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재작년 가을 경부터 이 활동을 하기로 결정되었던터라 항상 어느 정도는 부담감을 느끼며 걱정해왔고, 지난 여름 스카우트 잼버리에 참가하기 위해 영국에 갔었을 때 이 일을 위해서 시간을 냈었고, 지난 가을에는 학교 공부를 일부 포기하고 제네바와 도쿄에 다녀왔고,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지난 1년간 원광대를 수차례 오갔으며 여의도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가해왔습니다. 뭐 사실 이 너저분한 문장은 자기 합리화에 지나지 않죠. 어쨌든 그런 과정을 거쳐 지금 이 곳에 와 있습니다. 사실 지금 다른 사람들은 다 7일에 시작되는 행사 준비로 매우 바쁘지만, 전 저와 같이 일을 할 Planning Committee 사람들을 기다리느라 딱히 할 일이 없습니다. 그저 시간을 죽이면서 스트레스를 좀 받을 뿐이죠. 아마 현실 정치Realpolitik 혹은 투쟁에 돌입할 것 같습니다. 이 곳은 말 그대로 살아있는 정치의 공간이기 때문이죠. '비정치성'을 표방하는 집단의 활동에도 정치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이 같은 정치 동학의 대표적인 예는 바로 제가 겪은 경험에 기인합니다. 이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세계연맹 사람들과 Planning Committee 간에 활용한 커뮤니티 사이트에 며칠 전 행사 기간 동안의 의상에 대한 글이 올라왔습니다. 세계연맹 측에서 그 옷을 갖지 않은 두 명 분만을 가져오겠다더군요. 그 순간, 전 울컥했습니다. 제게도 그 옷이 없지만, 전 지급 대상이 아니었거든요. 전 일종의 '유령'이 되어버린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에 반발하는 글을 쓸까 했지만, 그것이야말로 상대가 원하는 대로 말리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Oh, sorry. I will check it.' 따위의 단순한 말로 상대는 웃으며 무마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제겐 그 옷이 없으며, 전 그 옷을 입지 않아도 되는지 라는 내용을 골자로 에둘러 말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어젯밤, 답변을 기대하며 확인했더니 글이 지워져 있더군요. 답변이 없는 것도 아니고, 제가 쓴 글이 아예 지워져 있었습니다. 누군가 지운 것이었지요. 그건 제게 큰 모욕으로 느껴졌습니다. 이미 세계연맹과 Planning Committee 사람들은 절 말 그대로 유령 취급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심지어 이럴 줄이야! 다시금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이 모욕을 그냥 참고 넘길 것인가, 아니면 한판 붙을 것인가. 이내 전자의 방법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앞서 그런 방법을 택했듯, 이번 역시 격한 반응은 상대의 의도에 말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아직 누가 그 글을 지웠는지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물론 강력한 용의자가 있지만요. 결국 그 용의자와 오늘 아침 조우했습니다. 순간 갈등했지만, 결국 사무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그쳤습니다. 현실 정치인들이 그렇듯, 겉으로는 웃으면서 속으로는 끊임없이 머리를 굴리는 길을 택한 것이지요. 이는 제가 현실적인 권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상대는 세계연맹의 직원이지만, 전 실제적인 힘을 갖지 못하고 Planning Committee라는 명예직에 매여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한국연맹이 협력 관계를 표방하고 있으나 세계연맹에게 저자세이기 때문에, 한국연맹 역시 제게 힘이 되어주지 못합니다. 이는 제 무력함의 단면에 지나지 않습니다. 앞으로 일주일간 진행될 행사에서 전 들러리가 될 공산이 큽니다. 역시 현실적인 권력이 없기 때문이지요. 굳이 비유하자면, 한 정당의 수 많은 최고위원 중 얼굴마담 식으로 끼워넣은 아무 힘 없는 늙은이 같은 존재랄까요? 절 제외한 Planning Committee 구성원들은 각자의 역할을 맡고 있고, 자신들의 그룹 내에서 강력하게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제가 끼어들 틈이 없는거지요. 한나라당의 비유를 들자면 친이명박계가 주도권을 잡았고, 당을 이끌기에 중견의 자리에서도 밀려난 아웃오브안중 의원 정도가 되겠습니다. 사실 윗줄까지는 어제와 그제에 걸쳐 썼던 것입니다. 근황을 쓴다는 것이 바쁘단 이유로 자꾸 끝맺지 못하네요. 아무래도 간략하게 끝내야 겠습니다. 지난 하루간의 생활은 제 처지를 정확히 인식하는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전 주제에 맞지 않는 큰 옷을 입은 꼬마와 같은 상태입니다. 송유근 군 같은 경우랄까요? 보통의 경우에는 초등학교에 갈 사람이 얼결에 대학에 간 경우랄까요. 사실 제가 하는 역할은 Planning Committee 위원들의 시중을 드는 것입니다. Planning Committee와 한국스카우트연맹을 연결한다는 것이 결국 그들을 돌보는 역할에 불과한거지요. 실제로 제가 지난 하루 동안 한 일들은 보면 의식주를 챙기고, 비행기에서 없어진 짐을 찾아서 항공사에 전화하고, 지급품을 챙겨주고, 인터넷 연결해주고, Planning Committee 회의에 들어가는 것이 전부입니다. 회의에 들어가긴 하나, 제가 맡은 역할은 실제 포럼 진행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기에 그저 Planning Committee 위원들의 '시종' 역할을 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지요. 이 같은 처지 때문에 홀로 지내고 있습니다. 저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없고, '한국연맹' 소속이기에 할 수 있는 일도 없습니다. 덕분에 세계연맹 직원에게 하루에도 수십번씩 엿먹고 있습니다. 언제나 다른 Planning Committee 위원들은 세계연맹 소속이지만 전 한국연맹 소속이기 때문에 다르다는 거죠. 그래서 제 유니폼은 한국 공식 단복이고, 그들은 세계연맹에서 만든 티셔츠를 입고 포럼을 진행하게 됩니다. 하하. 눈에 띄게 되다니! 이 같은 처지는 꽤나 큰 모멸감을 안겨 줍니다. 한국연맹 측에서도 제 정확한 역할을 모르고, 저보다 다른 스태프들을 챙기는 것이 급하기에 알아서 하기를, 나아가 나라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기를 요구하죠. 하하. 시종 짓으로 국위를 선양한다니! 이래서 현실주의가 맞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실적으로 힘이 없는 한국과 그에 소속된 전 힘이 강한 - 특히 사대주의에 찌든 한국에서는 더한! - 세계연맹과 다른 Planning Committee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대부분 이런 경우에는 그 안에서 강대한 권력을 좇는 것으로 행동양식이 정해지곤 합니다. 하지만 다른 방법도 존재합니다. 틀거리Frame 자체를 사고하고, 이에 대항하는 틀거리를 형성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제가 스카우트를 했던 지난 몇 년 동안 계속 구상해왔던 일종의 대안 청소년 운동입니다. 이는 곧 스카우트를 그만둔다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이번 행사 이후에는 당분간 활동을 쉬며 좀 더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전복을 꿈꾸는 혁명적 사상 역시 유의미하지만, 체제 내에서 개혁을 추구하는 의회주의 류의 사상과 실천 역시 타당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떤 종류의 실천이 되었든 필요한 것은 자기 성찰과 체제 분석인 것 같습니다. 이제 글을 마무리 할 시간이 왔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이번 행사기간 동안 과연 어떻게 지낼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나와야지요. 전술한 것과 같은 상황으로 인해 사실 몸은 고되더라도 마음은 행복하게 지내기란 힘들 것 같습니다. 권력 관계와 이를 둘러싼 강자와 약자가 존재하는 곳에서 '정치'를 빼놓고 생각하긴 힘들겠죠. 그래서 일종의 현실 정치 수업으로 생각하며 견뎌내보려고 합니다. 내외가 다른 자아를 형성하는 것이 현실 정치의 본질일 테니까요. 일종의 미래가 될 지도 모르는 상황에 대한 수업이자, 최근에 깨닫고 있는 매우 약한 제 자신을 좀 더 성장시키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힘들어 죽는 것만은 막아야겠죠. 이외에도 이 곳의 정치는 또 존재하니다. 사회운동에서도 남북문제가 나타나듯이, 이 곳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지요. 실제로 Youth Adviser 선거가 이뤄지기에 앞으로 1주일간 이 곳은 총성없는 전쟁의 공간이 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소외되는 이들, 구조로 인해 약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이들이 존재할 것입니다. 이미 제 존재를 어느 정도 깨달은 저로선 그들과 많은 교류를 나누는 것이 훗날의 틀거리 외적 행동에 도움이 되겠죠. 체제 내화되는 것보다는 밖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유용하니까요. 혹자는 이 것을 '연대Solidarity'라고 합니다. 혹자는 이 것을 친교라고도 하죠. 무엇이 됐든 좋습니다. 그 내용과 결과가 '나의 투쟁'이라는 본질은 바뀌지 않을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