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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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 / Zenol

플라이 인 더 시티

zeno 2008. 6. 24. 15:46

  p. 75

  '단일민족 국가' 한국에서는 사람을 구분 지을 근거가 희박하다. '글로벌 스탠더드'인 계급, 장애에 따른 차별은 물론 여기에도 존재한다. 그 다음으로 여성을 차별하고 나면, 차별의 잣대가 별로 남지 않는다. 나이 밖에는.

  p. 79

  지난해 서울에서 북한인권 국제회의가 열리던 때였다. 벨기에에서 온 할아버지를 만났다. 그는 병역거부 운동가면서 북한인권 활동가였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남한 정부를 비판하면서, 인민의 인권을 유린하는 북조선 정권에 반대했다. 불행히도 한반도에서 남한의 양심을 옹호하면서 북한의 인권을 비판하는 포지션은 불가능에 가깝다.

  p. 113

  스무 살, 나의 꿈은 진보정당의 당원으로 늙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15년이 흘렀다.
  운동excercise을 하고, 일도 끝내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운동movement을 하는 것이 좋겠군. 그것이 건강한 시민이야. 도대체 무언가를 위해서 헌신한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다행히 비겁해서 무언가에 목숨 걸지 않고 살아온 인생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주말에 클럽에 가면서 뜬금없이 주사파 생각을 한다. 그리고 슬며시 안도한다. 어쩌면 그들은 순결한 사람이야, 인생을 송두리째 저당 잡힌 쓸쓸한 사람들이야, 생각한다. 그렇게 짧게는 수 년, 길게는 수십 년을 살아온 그들에게 이제 와서 당신의 신념은 틀렸으니 당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부인하라고 말하는 것은 좀 가혹하지 않아, 혼자서 되뇐다. 어쨋든 그들은 선의에서 출발했잖아? 물론 세상이 바뀌는데 그들은 바뀌지 않았다고, 그것도 그들의 선택이었다고 한다면, 달리 할 말은 없다. 오홋, 냉담한!

  p. 193

  희망의 결핍은 집착을 부른다. 이제야 비로소 집착하지 않는 것이 낙관의 비결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낙관하려면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올드보이에게 부족한 것은 자신감이었다. 새로운 것이 오리라는 확신이 없을 때, 과거의 것에 대한 집착은 강해지기 마련이다. 스스로에게 새로운 주문을 건다. '너를 돌보렴, 자신감을 가지렴.' 이제는 무엇을 잘못해도 다음에 잘하면 되고, 누군가에게 거절당해도 오래 비참해하지 않는다. 항상 '다음'이 있으니까 어제가 잊혀진다.
  집착을 버리니 세상이 만만해졌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들이 떠나자 사소한 것들이 나를 찾아왔다. 엄마와 놀기의 재미, 달리기의 상쾌함, 옷 사기의 즐거움, 못된 말하기의 달콤 쌉쌀함, 대충 일하기의 편안함, 일요일날 집에 틀어박히기의 달콤함 등. 새로 습득한 습관의 목록들이다. 이미 남들은 오래전부터 소유하고 있었을 즐거움의 목록들이지만, 나는 이제야 갖고서도 즐거워 어쩔 줄을 모른다. 올드 보이는 그토록 미워했던 어른들의 일상으로 서른이 넘어서야 귀환했다. 이것은 때늦은 통과의레다. 성장의 증거이며 늙어가는 징후다.
  올드 보이는 마음이 채 어른이 되기 전에 몸은 벌써 늙어간다. 아마 앞으로도 남들보다 늦게, 평생 어른이 되는 수고로움을 치러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영원한 소년으로 남는 것보다는 늦되는 것이 낫다고 위안한다. 이제는 무엇인가, 누군가 나를 떠나가도 순순히 작별인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중얼거릴 것이다. "그런대로 나쁘진 않아." 앞으로는 힘닿는 한 낙관하고, 될 수 있는 한 웃고 싶다. 그것이 어른들의 방식이다.

  p. 244

  어디에도 동지는 없습니다. 세상은 미제에 모든 탓을 돌리는 사람들과 미국이 해방군이라고 믿는 사람들로 두 동강 나 있습니다. 평화의 이름으로 미국에 반대하고, 인권의 이름으로 북한 정권에 항의하는 동지들은 찾기 힘듭니다. 그래도 살아서 함께 한반도의 봄을 맞자고 허튼 약속밖에는 못하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p. 266

  콤플렉스는 사람을 늙게 한다. 콤플렉스를 가진 자들에게 살아가는 일 자체가 시련의 연속이고, 박탈감의 나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