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유령이 세계를 떠돌고 있다, 엘리트주의라는 유령이. '어떤 특정한 일을 하는 데 있어서 1인 혹은 소수의 엘리트가 중심이 되어 목표를 달성하여야 한다' 정도로 정의될 수 있는 이 엘리트주의라는 말은 세계 곳곳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먼저 가까운 동양에서 거슬러 올라가보면 공자왈 맹자왈 할 때의 공자님, 맹자님도 결국 '왕'이라는 엘리트를 중심으로 사고했었고, 서양에서는 플라톤 할아버지가 '철인왕'의 통치를 주장했었다. 좀 더 범위를 좁혀보자면, 한국 사회에도 이 놈의 엘리트주의는 만연하다 못해, 아예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한국에 팽배한 엘리트주의가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학교'라는 공간에서다. 적어도 '국민 교육'을 표방하는 대한민국의 제도권 교육은 실상 '엘리트 양성'에 그 힘을 쏟고 있다. 사실 대학 입시를 강조하는 주체가 교사냐, 부모냐를 따지는 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문제에 가깝지만, 결국 이들 모두가 '공범자'로서 사회의 '엘리트' 만들기를, 보다 구체적으로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 혹은 자신의 자식이 엘리트가 되기를 희망하는 어른들의 생각의 주입이 바로 엘리트주의의 현실이다. 오죽하면 학교가 '지옥'이고, 친구들과의 관계는 친밀감 아래 숨은 '무한 경쟁'이라는 말이 나오겠는가. 다수의 이들을 소수의 엘리트로 만들고자 하는 - 실상 다수 중 다수를 배제함으로써 가능한 이 메커니즘 - 이 이데올로기는 실상 학생들을 '성공'이라는 달콤한 이름 아래 '배틀 로얄'로 밀어 넣은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런 체제 아래 자라난 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엘리트주의에 물들어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로 인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끊임없이 '상류층'으로 올라가고자 욕망을 투사한다. (물론 이 주장이 '오바'로 들릴 수도 있음을 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조건과 상황에 적응하여 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들의 내밀한 욕망 속에는 결국 '성공'이라는 이름의 '엘리트 되기'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음을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성인들로 가득한 세상은 '인생이 다 그런거지, 뭐' 따위의 패배주의 혹은 현실/자기 합리화로 가득하게 된다. 문제는 이런 엘리트주의가 그런 사회를 변혁하겠다는 이들 중 일부에게도 팽배해있다는 사실이다. 일종의 '영웅 사관'이다. 영웅이 사회를 이끌고, 또 바꾼다는 것이다. 영웅 중심적 역사 교육에 익숙한 - 필자를 포함한 - 보통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말 같다. 하지만 조금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과연 이 세계에서 '혁명'이 1인 혹은 소수의 엘리트 만으로 이뤄졌는가. 프랑스 혁명이 '로베스피에르'의 혁명이었나? 러시아 혁명이 '전위'의 혁명이었나? 4 19가 '명문대생'만의 혁명이었는가? 아니었다. 모든 역사적 전환점에는 '민중'이라 불리는 인민의 집단이 존재했다. 이 민중이라 호칭되는 인간의 무리는 제 멋대로인데다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고, 감정적이며 비합리적이기에 '허구'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전세계의 역사에서, 특히 이른바 '민주주의'가 인류 보편의 합의적 진리로 자리잡은 근대 이후 변화는 이 민중이라는 이들의 후원에 바탕한 여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들을 무시하고 세계의 변혁을 꿈꾸는 것은 몽상 혹은 공상에 가깝다. 사실 민중의 '무지몽매함'은 소위 지식인 또는 엘리트들의 비웃음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세상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결코 '합리적'으로 이뤄져 있지 않다. 이 세상이 합리적이었다면 벌써 맑스가 태어나기 전에 모든 인간은 '해방'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1인 혹은 소수의 엘리트만으로 결코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비근한 예로, 노무현이 세상을 바꿨는가? 아니다. 그가 애초에 엘리트도, 세상을 변혁할 의지도 없었다고 한다면, 레닌은 어떠한가? 1인 혹은 소수의 능력과 역량은 제한적이다. 오늘날 사회에서 대통령은 '상징'에 불과하고 국가는 지배계급의 - 불완전하기는 하나 꽤나 충실한 - 집행위원회이다. 이런 현실에서 어떻게 한 개인이, 혹은 소수의 집단이 세상을 바꾸겠는가? 예를 들어, KTX 여승무원 문제를 보자. 여성 문제와 비정규직 노동 문제가 중첩된 이 문제의 경우 그녀들의 편에 섰던 엘리트가 노동부 장관이 된다고 해서 단번에 문제가 해결되겠는가? 아니다. 일견 그녀들의 요구가 수용됨으로써 문제가 해결되는듯 해보일지 몰라도, 이 문제의 본질인 여성과 노동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리고 과연 그 엘리트가 이 두 가지 중첩되는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겠는가? 아니다. 심지어 사회 제반에 깔린 문제는 한 두가지가 아니다. 여성, 노동 외에도, 장애, 성소수자, 빈곤 등 여러 문제가 산적해있고, 상당 경우 여러 겹으로 이뤄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엘리트가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신의 영달을 위해 길을 선택한 이의 자기 변명 혹은 합리화에 그치지 않는다. 차라리 자신이 없다면 애초에 인정해야 한다. 만약 귀하가 이 세상을 진정 이끌고 바꿔 나갈 수 있는 엘리트라면 내게로 오라. 생각을 바꾸겠다. 하지만 개인의 힘은 미약하다. 비합리적이지만, 집단의 힘은 강력하다. 세계의 변혁에 대한 답은 오직 '더 낮은 곳으로'일 뿐이다. ZE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