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파시즘 (3)
.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1920년대 중반에 Ku Klux Klan이 워싱턴 한복판에서 부활했다는 것을 아시는가. 오늘 미국사 수업을 듣다 알게되었는데, 지금으로부터 84년 전, 워싱턴 한복판에서 파시스트 인종주의자들의 행진이 있었다. 알다시피, 지난 달 그곳에서는 최초의 아프리칸-아메리칸 대통령인 오바마의 취임식이 열린 곳이었다. 부활한 쿠 클럭스 클랜에서는 단순한 '백인 우월주의'가 아니라 '백인, 개신교, 토종 우월주의'가 모토로 제창되었었다. 여기서 토종은 물론 인디언이 아닌 이주민의 후예들. 그 당시 이들의 힘은 공화당의 가톨릭 후보를 견제하며 민주당의 개신교 후보의 적극적인 지지자들로써 가공할만 했다고 한다. 공포를 느꼈다. 허연 보자기를 뒤집어 쓴 개떼같은 인간들이 워싱턴의 국회의사당 건물을 뒤로하고 사열하여 행진하..
“그레이하운드같이 날렵하고, 가죽처럼 끈질기며, 크룹사(社)의 강철처럼 강인한” 젊은이. 독일에서 2001년 출간된 『민족사회주의 백과사전』의 「청소년Jugend」항목에 대해 찾으면 나오는 정의이다. 이는 히틀러가 1930년대 당시 꿈꿨던 독일의 이상적 청소년 상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나치는 ‘히틀러 유겐트Hitler-Jugend’라는 청소년 조직을 만들었고, 이는 귀도 크노프라는 독일 제2국영방송ZDF의 역사 담당 편집자에 의해 “히틀러의 아이들Hitlers Kinder”라고 불리기도 했다. 히틀러 유겐트에 속한 10세에서 18세 사이의 독일 청소년은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한 1933년 말 약 753만 명 중 230만 명(30.54%)에서 6년 후인 2차대전 발발 초기 1939년에는 약 887만 명 중..
내가 느끼는 '불안'의 실체를 조금이나마 파악하게 되었다. 나름 스스로 파악해보려고 읽었던 알랭 드 보통의 "불안"에서는 알 수 없었지만, 오랫동안 '설레며' 기다려 왔던 김규항의 "나는 왜 불온한가"를 읽음으로써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원인은 '파시즘'이다. 좀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파시즘이 우리들에게 강요하는 '대열'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엘리트', '성공' 따위의 말과 함께 대열은 강요되어 왔다. 그게 좋은 것이라고, 당연한 것이라고 주입되어 왔다. 그 대열에서 이탈하면, 인생의 낙오자가 된다고, 패배자가 된다고, 주입해 왔다. 그래서 파시즘은 우리로 하여금 성공과 엘리트를 꿈꾸며, 부와 명예를 꿈꾸며,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가기만을 강요해왔다. 나 역시 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