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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7년의 밤 - 정유정 지음/은행나무단평이다. 간만에 베스트 셀러다운 소설을 만났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이야기가 독자를 위압한다. 충분한 양은 불볕더위를 피해 일상을 벗어나길 꿈꾸는 소시민에게 적절하다. 읽는 내내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훌륭한 이야기였다. 이야기만으로 소설(가)의 가치를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재밌는 이야기가 소설의 가장 큰 매력임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가격도 다른 소설에 비하면 과하지 않으니 더욱 좋을 수밖에. 강력히 추천한다.
서점에서 이라는 책을 발견한 뒤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배경에 넣어봤다. 편집 안 하고 그냥 넣었더니 좀 별로인듯;; 그래도 워낙 마음에 들어서. ㅇㅅㅇ 내친김에 오늘부터 블로그 제목도 으로. ㅇㅁㅇ 제노의 의식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이탈로 스베보 (느낌이있는책, 2009년) 상세보기
그 남자는 나에게 바래다달라고 한다 - 이지민 지음/문학동네 p. 205 진짜 똑똑하고 예쁜 여자들은 능력 있는 남자를 사랑하는게 아니라 그냥 사랑하는 남자들이 죄다 능력이 있다. 선정적인 제목 탓에 보게된 책이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봤는데, 나쁘지 않다. 일종의 연작 소설 시도도 보이고.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의미가 있었던 것은 똑같은 상황을 보는 시각의 차이를 느끼게 되었다는 것. 생물학적 성의 차이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잘못하다간 섹스 결정론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에 판단 보류. 사실 읽은지 너무 오래 됐다. 간간이 관심을 갖고 지켜볼 작가가 생겼다는 정도.
손님 - 황석영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p. 138 생각해보라우, 너이덜이 반말지꺼리나 하구 아무 생각두 없넌 반편이라구 여기던 이찌로가 글얼 읽게 되어서. 박일랑이라구 제 이름얼 쓰게 되었디. 해방언 이런 거이 아니가. 너이가 이밥 먹구 따스한 이불 덮구 학교 댕기멘 글을 배워 교회두 나가구 성경두 읽구 기도 찬송하넌 동안 나뭇짐이나 지구 소겉이 일만 허던 박일랑 동무가 '토지개혁'이란 글자를 읽고 쓰게 되었던 거다. 해방. 그래, 이런 것이 해방일지도. 이 역시 오랫동안 벼르고 있다 본 책이다. 기대 이상. 사실 에서 꽤나 실망을 했던터라 역시 한국 무속 신앙으로부터 모티브를 차용해온 에 대한 기대가 조금 덜 했었는데, 요 근래 본 소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축에 들게 되었다. 교차적으로 구성한..
마이너리그 - 은희경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p. 53 사람들은 자기에게 보이는 것을 중심으로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멈추고 돌아보니 그렇게 의식없이 보내버린 시간이 쌓여서 바로 자기 인생이 되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뭐라고? 나는 좋은 인생이 오기를 바라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데, 아직 인생다운 인생을 살아보지도 못했는데, 그런데 내가 무턱대고 살아왔던 그것이 바로 내 인생이었다고? p. 128 나의 신중함과 완벽주의는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다. 매사에 부정적이고 진취성이 부족하다는 거였다. 그런 판단의 저번에는 팀장이 개띠 동기의 대학 선배라는 사실, 그리고 둘다 고향이 같다는 사실이 자리잡고 있었다. 또한 학연과 지연만 패거리를 만들고 세를..
무중력 증후군 - 윤고은 지음/한겨레출판 p. 104 무엇이든 금세 잊고 치유하는 이 도시에서는 반복적인 것이 곧 두려운 것이 된다. 사람들은 하나의 절도 사건, 하나의 살인 사건에 대해서는 특별한 공포를 느끼지 못하지만, 그것이 꼬리를 물기 시작하면 겁을 내기 시작한다. 종지부를 찍지 않은 모든 것은 보는 사람을 불안하게 하고 긴장하게 만든다. 한 번은 이상한 것으로 지나가지만, 여러 번 반복되면 징크스가 되고, 또 공포의 대상이 된다. 이에 대처하는 방법은 평정심을 유지하는 길 뿐인가. 솔직히 말해서 작가가 '예뻐서' 읽기 시작했다. 한국을 떠나기 직전, 그녀가 한겨레에 쓴 기고를 보고 '아니, 소설가가 이렇게 예뻐도 된다니! 이건 사기 아냐! 공지영으로도 충분하다고!'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마침 학..
..... 사람을 냉혹하고 비정하게 만드는 것은 아주 간단해. 몇십 년이 걸릴 것 같지? 최소한 오륙 년은 걸릴 것 같지? 그렇지 않아. 이삼 년이면, 빠르면 육 개월이면...사람에 따라서는 집중적으로 두세 달이면 끝나. 어떻게 하느냐면, 그를 바쁘게 하는거야. 당장이라도 천년 동안의 잠에 곯아떨어지고 싶어할 만큼 피로하게 하고, 그러나 쉬고 싶을 때 쉬지 못하게 하는 거야. 쉬더라도 고통스러울 만큼 아주 조금만 쉬게 하고, 깨어 있는 시간 동안 끊임없이 굴욕당하게 하고, 자신을 미워하게 하는 거야. 그렇게 수백만의 불행을 만들어내는 도시, 수백만의 피로한 인간들을 뱉어내는 도시에 대한 영화야. 제목은 '서울의 겨울'이라고 붙이겠어. 겨울뿐인 도시..... 친구의 블로그에서 이런 인용구를 보았다. 아, ..
김윤식 교수는 스스로 자신을 ‘벤허선의 노예’로 표현한 적이 있다. 그는 ‘필사적으로’라는 표현에 걸맞게 한국 근대문학과 비평의 현장에서 글쓰기를 멈춘 적이 없다. 비유컨대 그에게 ‘근대’란 ‘숨은 신’과도 같은 것이었다. 신에 대한 열망이 크고 높을수록, 그것에 도달할 수 없다는 절망은 넓고 깊었을 것이다. 논문과 대담을 모은 김윤식의 는 일종의 자전적 고백의 성격도 띠고 있다. 한국전쟁 직후의 폐허와도 같은 현실 속에서, 그가 어떻게 제로 상태의 한국 근대문학 연구에 매진할 의지를 다질 수 있었는지, 또 그 학문적·비평적 실천의 야심은 무엇이었는지를 이 저작처럼 성실하게 보여주는 책은 없다. 이 책의 여러 논문에서 그는 근대문학 연구를 향한 집념의 뿌리에 ‘식민지 사관’의 극복이 있었음을 밝혔다. 그..
한국에서 가져온 책을 아껴 읽고 있습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와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을 가져왔는데, 네 달 가량 지내면서 한국어로 된 책이 보고 싶을 때마다 펴보고 있어요. 평소에 읽던 식으로, 심심할 때마다 읽다보면 금세 다 읽어버릴 것 같아서 하루에 네댓페이지씩 아껴 읽고 있어요. 미국까지 와서 영문 책도 안 보고 청승이지만, 어쩌겠나요. 사람이 쉽게 바뀌지 않는 걸. 지난 주에 도서관에 갔어요. 아직 '유사 학생증'이나마 나오지 않아 도서관 본관에는 출입이 안 되어서 'East Asia Library'란 곳에 갔어요. 작년인가 재작년에 새로 지어진 건물인데, 말 그대로 동아시아와 관련된 책을 집중적으로 소장하고 있죠. 지난 목요일에 처음 들어갔는데, 신간 코너에 지승호가 인터뷰..
대학 와서 가장 절실하게 느끼고, 또 가장 많이 내뱉곤 하는 말이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간단한 예를 하나만 들어보자. 2년 전 봄, 홉스봄의 를 처음 읽었을 때, "책을 탐독하고 서투른 시와 소설을 끼적거리며 루소를 숭배했던 젊은 지식인"이란 구절에 밑줄을 쳤었다. 내 스스로를 표현하는 데 적합한 말이자, 지향할 바로 여기는 마음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었다. 2년 반 가량이 지나 요즘 다시 봐도 이 구절에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름 많이 변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하다는 말이다. 사람은 정말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근데 그거 아시는가? 사실 저 구절 앞에는 "젊은 보나파르트처럼"이라는 말이 본래 붙어있다는 것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나폴레옹의 이름을 듣거나 볼 때면 '황제'라는 이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