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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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 / Zenol

090129 영어 공포증

zeno 2009. 1. 30. 16:55
  살면서 이런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오기 전에는 물론이고, 지난 주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그만큼 예상치 못했던 일이기에 조금 당혹스럽다.
  요체는 이렇다. 먼저, 영어로 말하기가 두렵고, 비한국인에게 다가가는 것이 두렵다. 영어 말하기에 대한 두려움은 고등학교 때 시작된 듯하다. 학교에서 명목적으로나마 영어의 상용화를 추구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영어를 사용했었다. 그 때, 주변 남자애들이 나의 영어 사용을 놓고 시비 혹은 지적을 했었다. 일대일이라면 서로 얘기를 했겠지만 - 싸웠을지도? - 상대 쪽이 대부분 다수다보니 아무래도 심정적으로 위축됐었다. 한번 떨어지기 시작한 자신감은 영 회복될 기미가 안 보였다.
  영어 공부를 한지는 벌써 16년째인 것 같다. 엄마 손에 이끌려 7살 때부터 한 것으로 기억하니까. 스스로의 영어가 그나마 좀 도약했다고 평가하는 시기는 초등학교 6학년 겨울 방학 때 캐나다의 한 시골로 3주 가량 어학연수를 갔던 때다. 그 때는 나름 열심히 했다. 아무래도 말을 많이 해야지 늘 것 같아서 오후 3시에 수업이 끝나면 버스를 타고 열심히 돌아다녔다.
  하지만 스스로가 일종의 '브로큰 잉글리시'를 구사한다는 열등감에 휩싸이기 시작하면서 영어로 말하는 것이 조금씩 두려워졌다. 개인 대 개인의 입장에서 영어로 대화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네이티브 스피커' 수준이 되지 못한다는 데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뿐이다. 그리고 그/녀들이 말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어순과 적절한 어휘 선택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 뿐이다.
  듣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아무래도 영어를 가장 많이 듣는 원천은 수업인데, 수업 내용은 대부분 알아듣는 것 같다. 뭐, 수업 중간에 딴 생각하거나 조는 습관은 여전해서 사이사이에 내용을 놓치기도 하지만, 강사들이 대부분 명확하게 전달을 하고자 노력하다보니 들을만하다. 반면, 수업 중간에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다른 학생들의 질문은 솔직히 많이 못 알아듣는다. 워낙 빠르다보니 그런 것 같다.
  무엇보다도 어려운 것은 말하기다.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꼭 필요할 때에는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자꾸만 피하고 싶다. 스스로 완전한 영어를 구사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도망치고만 싶은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마냥 도망만 가고 싶은 것은 아니다. 입이 근질근질하기도 하고, 조금씩 더 적극적이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스스로를 다그치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쉽지 않다. 단순히 질문하고 대답을 듣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만, 이제 질문이 또 다른 질문을 낳고 그것이 토론으로 이어지면 맥락과 내용을 전부 다 이해하고 있어야 뻘타(!)를 치지 않을 수 있기에 긴장하게 되고, 한번 놓치면 지레 포기하게 된다. 한국과 달리 적극적으로 질문하는 학생들 사이에 껴 있을 때에도 말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지만, 가장 격하게 느낄 때는 아무래도 조교가 수업할 때이다.
  이 곳 수업의 특징 중 하나가, 상당수 강좌의 경우 교수의 정규 수업 외에 대학원생 조교가 수강생 전체를 20명에서 30명 내외의 그룹으로 나누어 일종의 보충 수업을 한다는 것이다. 보통 교수의 수업은 주 3시간 정도 이뤄지고, 조교의 수업은 주 1시간 정도 이뤄진다. 수업의 목적이 보충이다보니 - 구체적 방법은 조교마다 다르지만 - 내용은 대체로 수업 시간에 나온 중요한 개념이나 논리, 과제로 나왔던 텍스트의 내용 복기 등을 한다. 그 과정에서 수강생들의 자유로운 질문을 장려한다. 실제로, 학생들은 사소한 개념에 대한 질문부터 반박까지 자유롭게 발언을 한다. 그 곳에 있다보면 나도 자꾸만 무언가 얘기를 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그저 관조만 하려고 온 건 아니니까.
  두 가지 장벽에 부딪힌다. 내가 하려는 말이 너무 진부하거나, 맥락을 놓친 말은 아닐까.한국에서 공부하다보니 든 습관일 것이다. 내가 너무 소심한 탓일지도 모르지만, 한국에서 온 학생들이 대부분 공통적으로 겪는 경험과 하는 생각이기에 역시 한국 탓을 할 수밖에 없다. 다른 장벽은 내 말이 한번에 전달이 될까, 하는 두려움이다. 이건 보다 개인적이다. 스스로의 영어가 브로큰 잉글리시에 가깝다고 생각하다보니 자꾸먼 고민하게 된다. 그러다 타이밍도 놓치기 일쑤.
  이런 이유 때문에 일종의 영어 공포증을 느끼고 있다. 게다가 생각보다 기숙사에 한국인이 몹시 매우 엄청 많고, 그 사람들 중에 개인적으로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 같이 놀면 재밌는 사람들이 많아서 자꾸 그/녀들이랑 놀게 된다. 심지어 하루에 한국어를 영어보다 많이 쓰는 듯도. 그렇다고 한국인들을 일부러 멀리하고 싶지는 않은데 조금 고민이다. 결국 이 문제는 내 스스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는데. 한 학기 지내면 극복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