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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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 / Zenol

재수가 없으려니까

zeno 2008. 12. 27. 18:20
  연말이다 보니 이래저래 올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음, 쉣! 온갖 일들이 있었고, 나름 즐겁고 행복한 일들도 많았지만, 뭔가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일들이 많았다.
  재수가 없으려니까! 가방을 도둑맞았다. 코엑스에 있는 카페 파스쿠치에서 친구랑 커피를 마시고 일어나는데, 어라? 의자에 걸어두었던 가방이 없어졌다. 제기랄! 아무리 혼잡하고, 도둑질이 많이 일어난다고 해도 그렇지, 내게 그런 일이 벌어질 수가! 가방에 귀중품은 안 들어있었다. 목도리, 필기구,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오늘 지은 약, 오늘 만난 친구에게 주려던 편지. 그리고 3년 정도 쓴 까만색 노스페이스 크로스백. 사실 이 가방이 문제의 가방이다. 재작년 여름, 유럽에서 도난당했을 때에도 이 가방에 넣어 두었던 쌕을 도난당한 것이었다. 그랬던 것이 이번에는 가방 째로 없어진 것! 분실 신고는 해두었지만, 솔직히 기대는 안 하고 그냥 책하고 편지하고 약하고 목도리가 좀 아깝다. 책은 산 지 며칠 되지도 않은데다 한 절반쯤 봐서 한창 빠질 때이고, 편지는 어제 힘들여 썼던 것인데다 다시 쓰면 그 때의 그 감정이 살지를 않고, 약은 또 다시 찾아온 감기와 주말 동안 싸워서 이기기 위해서 필수품이고, 목도리는 5년도 넘게 쓰며 정든 거라.
  야, 너 훔쳐간 녀석. 형한테 걸리면 혼난다. 모바일이나 지갑, 엠피는 몸에 지니고 있었던터라 값나가는 것도 없는 걸레 같은 가방이었는데 그걸 훔쳐가냐. 대담한 놈. 내가 겉옷을 입고는 있었지만 의자에 등을 대고 있었고, 내 맞은편에는 일행이 나를 마주보고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그 상황에서 가방을 슬쩍 집어가다니.
  사실 집에 오면서 생각해보니 의심가지 않는 사람이 없지는 않다. 앉아있는 와중에 한 걸인이 왔었는데 피했다. 그에 대한 보복심리로 집어간 것이 아니려나. 사실 이런 시각 자체가 내게 뿌리깊게 내재된 편견의 반영일지도 모르겠다.

  덧. 이상하게 크게 분노감이 든다거나 하지 않다. 유럽에서 털렸을 때에도 그랬는데, 왜 난 무언가 도난당하면 무덤덤한지. 그런 감정을 느끼는 세포가 죽은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