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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Gender And The City - Sex And The City (SATC), 새끼 마초로 하여금 Gender를 고민케 하다. 본문

평 / Review

[영화] Gender And The City - Sex And The City (SATC), 새끼 마초로 하여금 Gender를 고민케 하다.

zeno 2008. 6. 29.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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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x And The City. 번역하자면 성/섹스와 도시. 누가 지었는지는 몰라도 절묘한 제목이다. 이토록 이 영화/드라마의 내용을 간명히 요약해 낼 수 있는 제목이 어디 있겠는가. 주인공 캐리 브래드쇼는 뉴욕이라는 세계의 수도에서 발에는 마놀라 블라닉의 하이힐을 신고, 손에는 루이 뷔통의 백을 들고, 귓볼엔 샤넬 넘버 파이브를 뿌리는 'chick'이다. 사실 한국에는 이 같은 여성을 '된장녀'라 부르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긴 하지만, 필자가 개인적으로 그 표현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 대신 보다 전세계 - 그래봤자 미국을 비롯한 영어권 국가에서겠지만 - 에서 보편적으로 그 의미가 통하는 chick이란 말을 쓰도록 하자. 사실 뭐 영화에서 스스로 40대임을 인정하고, 친구 사만다의 50세 생일을 축하하는 - 한국 나이로는 52 겠지? 맙소사! 우리 엄마보다도 다섯 살은 더 많아! - 캐리를 chick이라 부르기는 민망하기는 하다. 특히 영화 중반에 모든 화장을 지우고 퀭한 얼굴로 등장하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옆에서 보던 여성이 '세상에, 스무 살은 더 늙어보여! 완전히 할머니잖아!'라고 했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하지만 그녀가 영화 도입에서 정의했듯, 20대는 사랑과 명품을 찾아 뉴욕을 찾는다면 그녀 역시 아직 억지로나마 '20대'라고 불러줄 수 있을 듯 하다.
  그런 chick에게 사랑은 sex 없이 불가능하다. 여기서의 섹스는 독자가 예상하는 그런 물리적 사랑, 맞다. 실제로 영화에는 섹스신이 여러 차례 나오고, 등장인물들도 그에 대한 적극적인 감정 표현을 주저하지 않는다. 뭐, 중간에 어느 소녀의 교육을 위해서 '색칠Color'이라는 말로도 잠시 바꿔서 부르기도 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Sex! Sex! Sex! 하지만 단순히 섹스라고 해서 그녀들을 그저 소위 '색녀'만으로 치부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뭐, 사실 색녀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긴 하다. 다만 40대인 그녀들에게 필요한 것은 책임이 이끄는 사랑Responsibility Driven Love이기에 무책임한 하룻밤One Night Stand은 노. 그래서 그녀들의 사랑과 몸은 불장난의 장작이 아니라 숭고한 사랑이라는 의식의 제물이다. 그렇게 그녀들의 몸은 단순히 섹스의 매개일뿐만 아니라 그녀들의 생물학적 성sex, 여성을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하다.
  여성의 상징은 섹스 뿐만이 아니다. 하이힐, 백, 향수. 이 셋 역시 여성을 상징하고, 또 그녀들을 도시와 이어주는 매개물이다. 진흙탕 투성이인 농촌에서 하이힐을 신는다는 것은 발이 푹푹 빠지는 물침대를 느끼게 해주고, 디자인만 화려할 뿐 실용성이란 도통 찾아보기 힘든 명품 백은 이래 저래 한번 옮기려면 무겁고 큰 덩어리 뿐인 시골에서 굴러다니는 검은 색 비닐봉지보다도 쓸모 없을 뿐더러, 매력을 더하라고 풍기는 향수는 가축들의 냄새와 뒤섞여 악취만을 더할 뿐이다. 그래서 도시는 여성의 것이다. 오은수가 그러지 않던가, '달콤한 나의 도시'라고. 삼위일체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한 성, 여성에게 도시는 그 자체로 천국이요, 에덴동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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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도대체 '여성'이란 무엇인가? 생물학적 여성이면 다 여성인가? 어릴 적엔 '공주님' 소리 듣고 자라며, 10대에는 얼굴에 여드름 난 소년들에게 고백 몇 번 받았다가 튕겨보고, 여고에선 소녀들끼리 키스도 몇 차례 나누고, 20대가 되면 하나같이 모두 다 스키니 진을 입고 15센티 하이힐을 신고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명동과 강남 거리를 활보하다가 잘 나가는 남자와 데이트 좀 즐겨주고, 서른이 넘어가면 슬슬 잡은 자리에 부비고 있다가 '골드 미스' 소리 피하려고 능력남 찾아 결혼하면서 연하남 애인 하나 만들어두고, 40대가 되면 평범한 주부가 되거나 간지나지만 드세다는 소리 들어가는 삶을 사는, 그런 존재면 다 여성인가? 사실 male이란 sex를 가진 존재가 여성성을 논한다는 것은 주제넘은 짓일 수도 있다. 세상이 그러하다면, 혹은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러하다면, 여성성은 그렇게 규정되는 것 아닌가?
  다행히도 우리에겐 gender란 존재가 있다. 굳이 설명하자면 '사회적 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젠더는 여성성이 사회화 과정에서 타의에 의해 형성된 것, 혹은 주입된 것이란 주장을 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준다. (페미니즘 ㄳ.) 예를 들어, 어릴 때는 꼭 로봇 대신 인형을 선물로 받고, 엄마가 반바지보단 치마를 사주고, 대학에 가면 시원한 단발보다는 '남자'들에게 예뻐보이는 '긴 생머리'를 요구받고, 내 몸이 무거워지면 불편하다고는 하지만 과연 그게 다이어트 이유의 전부인지는 알 수 없으면서 '스키니'해지려고 하고, 밥 먹을 때면 내용물과 양에 대한 남의 시선을 항상 신경써야 하며, '귀여움'에 대해 깊은 사색에 빠지게 하는 이 모든 과정은 어쩌면, 여성들이 정말 욕망하기보다는 '사회' 혹은 그 비겁한 이름 아래 뒤에 숨어 아직도 '여성'들을 자신들의 '인형'으로 삼고자 하는 '남자'들의 욕망이 전이된 것일지도 모른다.
  라캉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자본주의는 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욕망이 아닌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게 만든다.' 어쩌면 이 짧은 한 문장이 젠더적 여성의 행태에 대한 적확한 묘사일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서울의 된장녀와 뉴욕의 chick은 아침 출근 - 학교도 직장이라고 해보자. - 길에 스타벅스에 들러 아메리카노나 라떼 한잔을 사 들고 쪽쪽 빨며 하루를 시작한다. 물론 그 한 잔의 여유가 그녀들에게 효용이 되었든, 사용가치가 되었든, 무엇인가를 가져다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껏 알려진 꽤 많은 횟수의 블라인드 테스트들은 스타벅스 커피와 일반 인스턴트 커피 간의 차이를 느끼기 힘들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아침부터 일어나 3센티 짜리 화장이 아닌 '변장'을 하고, 44 사이즈 스키니 진을 입고 15센티 하이힐을 신고, 머리는 제대로 말리지도 못한 채 집을 나서야 하는 그녀들은 과연 sex에 따른 여성일까, gender에 따른 여성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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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지금까지 늘어놓은 소리들은 전혀 정제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중립적인 시각'이지도 않고, '과학적 근거'도 없는 새끼 마초의 세설에 불과하다. sex/gender적 남성인 필자로선 -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새끼 마초일 것이다. - sex/gender적 여성은 그 누구라 하여도 온전히 이해하긴 어려운 존재다. 나도 나를 모르는데 네가 날 어찌 알겠느냐, 라고 묻는다면 뭐 그런 식으로 따지면 그 어떤 글도 쓰이기 힘들고, 세상엔 개인의 일기만이 넘쳐날 것이란 말로 반론을 대신하겠다. 다만 하고자 싶었던 이야기는 섹스와 시티가 모두 나오는 이 영화, SATC는 이 새끼 마초에게 젠더적 여성성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다는 것이다. 
  어제 SATC를 본 영화관은 일종의 찜질방이나 카페 같은 분위기였다. 관객 중 여성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아서인지 영화를 본다기보다는 카페나 찜질방에서 여성들의 수다를 듣는 기분이었다. 그만큼 영화의 시퀀스마다 전후좌우에서 어찌나 코멘트들이 많던지. 꽤나 색다른 경험이었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필자가 영화관에서 봐 왔던 영화 중 이처럼 여성의 비중이 높은 영화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기껏해야 커플들로 가득해서 비중이 비슷하거나 남성이 더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오던 길에 옆 커플 중 한 남자가 '이거 남자애 둘이서 보러 오면 진짜 이상한 애들이겠다. 패션 공부하는 애들끼리라도 말이야'라고 하던 말이 그 분위기를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것 같았다.
  그녀들은 여느 사회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영화에 한 두어번 쯤 나오는 동성애 신엔 기겁하고, 명품이 나올때마다 감탄사를 연발하고, 섹스신은 부끄러워하는 그녀들의 44 사이즈 워너비는 계속된다. 이 같은 모습을 '젠더'라 느끼지만 '섹스'일지도 모르는 의문이 고개를 쳐드는 까닭에 새끼 마초인 필자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하지만 섹스와 젠더를 이렇게 단순히 구분하는 것은 이런 블로그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즉, 조금 더 많은 경험과 생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덧. SATC를 보면 남자가 여자한테 선택 받으려면 섹스를 잘 하던가 돈이 많아야 한다. 설마 진짜인가? 그렇다면 진짜 남자가 여자의 성적 매력을 중시하는 것도 그닥 비난받을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덧2. 사실 마지막 문단을 제외한 글은 지난 일요일에 썼었다. 하지만 개인적인 사정 (절대로 여자한테 차인거 아님) 때문에 글을 쓸 수 없었다. 그런데 마지막 끝맺음을 하다 보니 저번에 써 뒀던 덧. 이 눈에 띈다. 난 섹스를 해본적은 없으니 잘 할지 못 할지는 모르겠고, 돈이 없어서 그런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