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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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 / Zenol

밥벌이의 괴로움

zeno 2008. 5. 8. 23:02

  블로그를 재개하려 합니다. 이유는 단 한가지 입니다. '밥벌이' 때문입니다.

  김훈은 '밥벌이의 지겨움'에 대해 이야기 한 바 있습니다. 그에게는 글 쓰는 것이 결국 밥벌이이고, 그 밥벌이가 지겹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 그나마 잘 할 수 있는게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밥벌이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봤습니다. 내가 무엇으로 밥벌이를 할 수 있을까.

  막막하더군요. 아무런 기능도, 기술도, 재주도 없는 제가 당장 제 한 몸 건사하고, 나아가 가족을 비롯해 제게 딸린 수많은 입들을 먹여 살릴 방법이 보이지 않더군요.

  울음이 납디다. 무기력해서요. 제게 주어지는 이런 상황이 정말 싫어서요. '세상 참 뭐 같다'는 말도 나오더군요. 수백번도 더 읊조렸던 비정규직 철폐,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동일 노동 동일 임금 등 온갖 경제와 관련된 말들이 떠오릅디다.

  하지만 도무지 방법이 없습디다. 이 몸뚱아리를 갖고 날품을 제대로 팔 수도 없고, 취직을 할 수도 없고, 공부를 할 수도 없고(솔직히 공부해선 돈 안 나오잖아요. 결국 취직해야 되지.).

  한 명은 제게 전업 과외를 권해줬습니다. 솔깃하더군요. 사실 제 상황에서 그나마 일정 수준 이상의 돈을 손에 쥘 수 있는 기회니깐요. 하지만 제겐 한계가 있습니다. 고교 시절 동안 '정규 과정'을 제대로 이수하지 않아 수능이나 내신에 매우 취약하다는 점이요.

  그보다도 끔찍했던 건, 제가 그토록 싫다고 읊조려왔던 이른바 '학벌'의 고착화에 제가 두 손 두 발 다들고 머리를 써가며 기여하게 된다는 것이니까요. 밥벌이를 위해 신념을 꺾을 수도 있다지만, 지금껏 그토록 고고한 척 하고 있다가 갑자기 손에 피를 묻히는 기분이라니.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는 사고하지 못하게 하고, 그저 '일단 공부해라'라는 말을 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절망적이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으로 밥벌이를 할 수 있을 것인가. 답답한 마음에 우석훈의 블로그에 들어갔습니다. 88만원 세대를 쓴 자신이 20대에게 책 팔아먹으려는 장사꾼으로 매도당하기 싫다며 6천 여만원에 달하는 인세를 기회만 되면 20대에게 돌려주겠다더군요.

  머릿속의 전구에 불이 들어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우석훈은 글 쓰고 강의하며 밥벌이를 합니다. 전 강의할 수준이 되지 못합니다. 물론 글 써서 밥벌이할 수준도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강의하는 것보단 글 쓰는게 제게 밥벌이의 가능성을 높여줍니다. 그래서 블로그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밥벌이를 위해서요.

  사실 지금 제 블로그에 있는 글 수준이 밥벌이를 할 정도가 안 된다는 사실은 저도 느낍니다. 그래서 블로그를 중단하려고 했으니까요. 하지만 1인 미디어, 블로그는 결국 제게 밥벌이의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제가 아는 출판인은 전무합니다. 아는 출판업자가 있어도 책이 나올까 말까 하고, 책이 나와도 1쇄를 털까 말까 하는 현실에서 출판인 한 명조차 알지 못한다는 건 글 써서 밥벌이를 하기 힘들다는 현실을 너무도 명백히 보여줍니다.

  하지만 현재 제가 할 수 있는,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방법은 이 뿐 입니다. 블로그 글을 책으로 내 밥벌이를 하는거죠.

  출판계에는 스노우볼 이펙트가 존재합니다. 한번 책을 내서 어느 정도 팔아 지명도를 확보하고 배우들의 티켓 파워와 같은 일종의 셀링 파워를 갖게 되면 다음 번 책은 좀 더 팔리게 되고 점차 언론도 타게 되어 나중엔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되는거지요.

  또한 크리티컬 매스라는 것도 존재합니다. 임계 질량이라는 거지요. 어느 정도만 팔리면 그 이후의 가능성은 커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도전해보려고 합니다.

  괴롭겠지만, 블로그를 통해 글을 쓰고, 이 글들을 모아 책으로 내 밥벌이를 하고 싶습니다. 괴롭겠지만, 매우 힘들겠지만,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방법이란 거의 이것이 유일할 듯 합니다. 평소의 지출을 줄이고, 블로그 글쓰기에 집중해야겠지요.

  지난 주 블로그를 떠나며 내걸었던 거창한 말은 현실 앞에 곤죽이 되었습니다. 당장 생계를 위해서, 밥벌이를 위해서 블로그를 재개합니다.

  그간 휴지기가 너무도 짧았기에 내용이나 글의 질, 방향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를 밥벌이의 수단으로 삼기 위해서는 좀 더 '대중적'이어야 할 것입니다. 좀 더 쉬워지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노력해야겠습니다.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당신의 날 선 비판을 받아가며, 노력해야겠습니다. 밥벌이가 괴로워서 미칠 것 같아도, 지겨워질 때까지 할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블로그는 이제 밥벌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