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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전반사 레포트 계획서 - 히틀러 유겐트, 그 ‘일상’적 억압에 대하여 본문

저널 / Zenol

20세기 전반사 레포트 계획서 - 히틀러 유겐트, 그 ‘일상’적 억압에 대하여

zeno 2008. 4. 4. 03:04

  “그레이하운드같이 날렵하고, 가죽처럼 끈질기며, 크룹사(社)의 강철처럼 강인한” 젊은이. 독일에서 2001년 출간된 『민족사회주의 백과사전』의 「청소년Jugend」항목에 대해 찾으면 나오는 정의이다. 이는 히틀러가 1930년대 당시 꿈꿨던 독일의 이상적 청소년 상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나치는 ‘히틀러 유겐트Hitler-Jugend’라는 청소년 조직을 만들었고, 이는 귀도 크노프라는 독일 제2국영방송ZDF의 역사 담당 편집자에 의해 “히틀러의 아이들Hitlers Kinder”라고 불리기도 했다. 히틀러 유겐트에 속한 10세에서 18세 사이의 독일 청소년은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한 1933년 말 약 753만 명 중 230만 명(30.54%)에서 6년 후인 2차대전 발발 초기 1939년에는 약 887만 명 중 870만 명(98.08%)으로 급속도로 증가했다. 이처럼 독일 청소년 역시 다른 제3제국의 구성원들처럼 ‘나치’라는 국가 조직을 구성했다.
  이 ‘동원’된 청소년들에 대한 동정적인 시각은 “1930년대와 1940년대 초 성장한 독일의 소년과 소녀들에게” 히틀러 유겐트라는 국가 조직은 자신들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가입하고 탈퇴할 수 있는 단체가 아니었다”는 크노프의 말에서 잘 드러난다. 물론 당시 유겐트들의 일상을 그린 리히터의 소설 『우리는 그때 거기에 있었다』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자발적’인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고 이에 적응한 청소년들의 선택이 되었던 것이지 ‘동원’의 측면이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실제로, 이 소설에 묘사된 모습이나 하우페르트의 『십자가와 나치의 갈고리십자가 사이에 선 청소년 : 파시즘의 일상사로서 전기 재구성』에 나타난 전차 조종수 세퍼의 일대기는 당시 유겐트의 ‘동원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청소년들에 대한 동원성이 중요한 문제가 되는 까닭은 이들의 일상생활에 동원이 스며들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들에게 끼치는 여파가 다른 어느 집단 혹은 계급보다도 컸기 때문이다. 먼저, 그들의 일상생활에 동원이 스며들었다는 점은 앞에서 언급한 두 일상사 관련 저작에서 잘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학교와 집이 사회생활 공간의 거의 전부인 청소년들에게 ‘유겐트’라는 새로운 사회적 공간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을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특정 ‘직업인’이 아니라 ‘학생’ 신분이었기 때문에 더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어느 특정 직업을 가진 성인이라면 자신의 생활적 측면뿐만 아니라 직업에서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계급성’이 나치에 대한 지지와 동원에 많은 영향을 끼쳤겠지만, 학생의 경우에는 그런 계급성이 없거나 약하였기에 동원의 결과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런 유겐트에게 이뤄진 동원을 ‘일상사’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청소년이라는 나이의 특성 상, 일상이 가장 좋은 관찰 및 연구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는 현실적 요건도 작용한다. 독일 내에서는 유겐트 관련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지만, 한국에는 단행본이나 논문 등이 거의 전무하다. 그리고 필자가 독일어를 하지 못할뿐더러, 한국에 들어온 독일어 연구서가 없어 사료나 자료를 접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권형진의 「히틀러 유겐트의 ‘일상’ 읽기」에 나온 독일어 자료들의 내용을 참고할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나치 치하에서 여성들에게 강제된 ‘젠더 이데올로기’가 유겐트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특히, 유겐트로서 ‘청소년’이자 ‘여자’인 소녀들에게는 나치의 동원뿐만 아니라 그에 수반하는 ‘억압’이 더해져 ‘이중 억압’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이중 억압의 측면을 당시의 소녀 단체, ‘소녀동맹’에 대한 연구를 통해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일종의 ‘한국적 유겐트’인 ‘학도호국단’과의 유사성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이승만 정권에서 탄생한 학도호국단은 여순사건과 관련된 학생들에 대한 ‘감시’ 목적으로 시작되어 전국의 학생들을 ‘동원’하는 기제로 작용하였고, 나중에는 급기야 ‘규율’체제가 되었다. 따라서 국가 조직의 전제성을 위해 만들어진 기제의 일종이었던 ‘히틀러 유겐트’와 ‘학도호국단’의 비교는 유의미한 시사점을 던져줄 것이라 기대된다.
  따라서 이 리포트의 목차는 서론 - 일상사를 통해 본 히틀러 유겐트의 ‘동원’ 및 ‘억압’의 성격 - ‘이중 억압’의 대상, 소녀동맹 - ‘한국적 유겐트’, 학도호국단 - 결론의 순서를 갖게 될 예정이다. 이 리포트를 위한 참고문헌으로는,
 - 알프 뤼트케, 「일상사란 무엇이며, 누가 이끌어가는가?」, 『일상사란 무엇인가』
 - 데틀레프 포이케르트, 「일상사 - 새로운 전망」, 『나치 시대의 일상사』,
 - ___, 「청소년의 동원과 그들의 거부」, 『나치 시대의 일상사』,
 - 권형진, 「히틀러 유겐트의 ‘일상’ 읽기」, 『대중독재 3』,
 - 권형진, 「“너도 역시 지도자(Fuhrer)의 자녀야”: 나치즘의 젠더 이데올로기 - 독일 소녀동맹(BDM)을 중심으로」, 『역사교육 제 104호』
 - 연정은, 「감시에서 동원으로, 동원에서 규율로 - 1950년대 학도호국단을 중심으로」, 『역사연구 제 14호』
  등을 참고할 것이다. 이외에, 리히터의 소설 『우리는 그때 거기에 있었다』와 하우페르트의 『십자가와 나치의 갈고리십자가 사이에 선 청소년 : 파시즘의 일상사로서 전기 재구성』 등은 원문을 구할 수가 없을뿐더러 독일어 해석이 용이치 않아 권형진의 「히틀러 유겐트의 ‘일상’ 읽기」에 나온 내용을 참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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