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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 / Zenol

[한겨레] 경제학의 시대, 경제학의 임무 / 이원재

zeno 2008. 3. 6. 20:01

ㄱ씨. 열아홉. 외국어고등학교 졸업 뒤 대학 진학 준비 중. ㄴ씨. 서른여섯. 대학병원 원무과 근무. ㄷ씨. 스물셋. 대학 재학생. 외국유학 준비 중. 도무지 공통점이 없을 것 같은 이 사람들, 경제학 강의실에서 만났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비즈니스 경제학 강의를 열었다. 우리 주변에서 여러 가지 현상을 경제학의 틀로 설명하면서, 경제학의 기본 개념을 가르치는 강의였다. 강의 성격상, 화이트칼라 직장인들이 업무에 참고할 교양경제 지식을 얻으려 찾아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수강 신청자는 1989년생부터 1962년생까지 폭넓었다. 고등학생부터 대기업 부장급, 전문 번역가와 출판기획자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비즈니스 경제학을 배우겠다며 돈을 내고 찾아왔다. 경제학에 관심을 둔 사람들은 이렇게 다양했다. 경제학 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요즘은 정부기관 종사자들도 경제학 용어를 사용해 이야기를 꺼내면 일단 귀를 기울인다. 엔지오 쪽에서는 비영리 사업과 관련된 비즈니스 경제학은 없느냐고 물어 온다. 대중적 경제학 서적도 인기를 끌고 있다.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대학시절 뜻을 같이하던 친구들 사이에서 전공 과목인 경제학은 인기가 높지 않았다. 현실 정합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경제학 교과서에 채워진 그림표와 숫자는 아름다운 모델을 그리고 있었지만, 그게 우리 삶의 문제와 어떻게 연관되는지 알지 못했다. 오히려 사회학이나 정치학처럼 거대담론을 다루는 학문이 현실을 더 잘 설명한다고 느꼈다. 보통 사람들에게 경제학은 먼 학문이었다. 너무 어려웠고 일상생활과 거리가 있는 것처럼 생각됐다.

그런데 지금, 그 보통 사람들이 그 ‘비현실적인’ 경제학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고 있다. 이유는 둘 중 하나일 터다. 경제학이 현실 쪽으로 움직였거나, 반대로 현실이 경제학 쪽으로 움직였거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현실이 변하고 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우리 시대는 경제학의 가정에 가까운 방향으로, 놀라운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학생도 주부도 직장인도 재테크에 열광하며 ‘합리적인’ 경제 동물이 되어가고 있다. 계산속도 다들 밝아졌다. 정부도 효율성을 중시해 구조를 조정한다. 경제학자가 교육정책에도 사회정책에도 발언하기 시작한다. 국가간 무역 자유화로 상품시장이, 금융시장 개방으로 자본시장이, 이주 노동자와 국외취업 증가로 노동시장이 더욱 완전경쟁에 가까워진다. 보호받는 시장은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보통사람의 일상과 경제학의 가정은 연결되고 있다. 이들은 매우 ‘합리적으로’ 경제학에 이끌리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시대정신에는 책임이 뒤따른다는 사실이다. 세상이 경제학의 가정을 향해 움직인다지만, 현실이 그 완벽한 모델에 꼭 들어맞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시장에서는 늘 완전경쟁보다 독과점이 더 일반적으로 보일 것이다. 경쟁사들은 독과점 지위에 오르려 때로는 반칙까지 일삼을 것이다. 신규진입 중소기업은 종종 기존 시장 지배자의 약탈적 행태에 시달린다. 소비자는 끝없이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선택을 하면서 기업을 괴롭힌다. 현실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결국 시대정신이 된 경제학이 풀어야 할 ‘비합리적인’ 문제들로 남는다.

“뜨거운 가슴, 차가운 머리!” ‘경제학의 아버지’ 알프레드 마셜이 경제학자가 가져야 한다고 제시했던 두 가지다. 경제학자의 머리가 얼마나 차가운지는 이미 알려져 있다. 경제학의 시대, 경제학의 임무를 고민하는 여정은, 뜨거운 가슴을 되찾는 데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