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겨레] 권태선칼럼 / 몸통을 흔드는 꼬리, 대학 영어강의 / 권태선 본문

스크랩 / Scrap

[한겨레] 권태선칼럼 / 몸통을 흔드는 꼬리, 대학 영어강의 / 권태선

zeno 2007. 9. 14. 00:04

글로벌 인재를 키운다며 영어로만 수업하는 국제학부나 국제대학원을 다투어 만든 대학들이 이제는 일반 학부에서까지 영어강의 개설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른바 ‘민족대학’을 자임했던 고려대가 전체 강의의 35%를 영어로 해 그 선봉에 서고, 연세대, 이화여대 등 사립대는 물론 서울대까지도 경쟁에 가세하고 있다. 영어강의 여부를 학과 평가와 교수 개인 업적평가 기준의 하나로 삼는 대학이 늘어남에 따라 중문과 등 외국문학과는 물론 국문과나 국사학과조차 영어 강의 개설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영어강의 가능 여부가 신규 교수 채용 요건의 하나고 신규 임용 때는 영어강의 서약까지 해야 한다. 일본에서 학위를 한 뒤 몇 년 전 임용된 한 교수는 시간표를 짤 때마다 과에서 영어강의를 맡길까봐 좌불안석이라고 토로한다. 임용 때 영어강의 서약을 했지만, 일본어라면 몰라도 영어강의는 영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일을 피하기 위해 일부 학과에선 영어권 교수 초빙을 추진하기도 하지만 쓸 만한 학자들은 웬만큼 파격적인 조건이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최근 서울의 한 대학에서 아파트 제공 등 국내 교수의 몇 배나 되는 대우를 내걸었음에도, 미국에서 공부한 비영어권 출신 한 명만 응모해 울며 겨자먹기로 채용한 사례가 단적인 예다.

문제는 영어교육을 위한 대학의 이런 눈물겨운 노력이 학생들의 전공 실력은 물론 영어 실력 향상에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며칠 전 한 지인한테서 교환학생으로 서울의 한 명문대학 국제학부에 왔던 재미동포인 조카가 2주를 못 넘기고 미국의 원 대학으로 돌아갔단 말을 들었다. 교수들의 영어강의를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어서였단다. 국제학부 교수인 후배에게 내 귀를 의심하게 했던 이 이야기를 전하자, 놀랍게도 그는 그럴 수 있다고 답했다. 영어권에서 학위를 취득해 영어를 잘한다 하는 사람도 일반적으로 모국어 소통 능력의 50~60% 정도 수준이라고 했다. 국제학부가 이 정도니 일반학부 수준은 짐작할 수 있지 않으냐고 그가 되물었다. 실제로 철학과에서 영어강의를 하는 한 교수는 “강의 준비에 열 배 이상 시간을 들여도 한국어로 20분이면 끝낼 내용을 1시간에 마치기도 힘들고 그나마도 미진한 느낌이 남는다”고 호소했다.

이런 현실을 모르지 않을 대학들이 경쟁적으로 영어강의를 늘리는 데는 대학평가 기준 등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학이 우리 사회의 지성의 보루라면, 이제는 양심에 손을 얹고 영어강의의 무분별한 확대가 넓게는 한국 사회를 위해, 좁게는 학계의 학문 수준을 위해 바람직하기만 한지 되돌아봐야 한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추산에 따르면, 2005년 기준으로 우리 국민들이 영어교육에 퍼붓는 돈은 전체 사교육비의 절반인 15조원이다. 대학의 영어강의 확대는 이런 광풍에 기름을 붓는 꼴일 뿐 아니라 국민들로 하여금 영어를 지나치게 숭배하고 모국어를 무시하게 해 궁극적으로는 정체성 상실로 이끌 위험이 큰 도박이다. 오죽하면 원로 영문학자 김진만 교수가 우리 사회의 영어에 대한 강박을 인권유린 수준이라고 질타하겠는가?

영어교육학자인 인하대 이현우 교수는 한국 영어교육 발전을 가로막는 오적으로 대학입시, 상업주의적 비전문교육, 문제풀이식 교육 및 그릇된 처방전을 들면서 이 모든 것에 앞선 제1의 적은 영어가 경쟁력이란 믿음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국제적 경쟁사회에서 앞서려면 창의력 있고 모국어 구사력이 뛰어난 바른 인성을 가진 인재들을 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영어는 도구이지 결코 목적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본말이 전도된 영어강의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권태선 편집인 kwont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