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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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 / Zenol

부실한 기초과학

zeno 2006. 9. 22. 00:52
  핵심교양과목  "문명과 수학"의 참고문헌 중 재밌을 것 같은 것들을 훑어보던 도중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기초과학의 부실성'이 정말 심하다는 것을. 대부분의 참고 문헌이 외국어 원서 혹은 번역본이었다. 우리말로 된 건 대부분 딱딱한 학술서적들 뿐. 나 같은 비전공생으로서는 쉽게 손이 가지 않는 것들 뿐이다. 흥미로울 법한 교양서들은 대부분 외국어 번역본. (원서는 전혀 흥미롭지 않다.)
  내가 알기론, 교먕서는 일반인들이 쉬이 이해하기 어려울 법한 전문 지식을 쉽게 풀이한 책이다. 따라서, 아무리 쉬운 표현이다 하더라도 전문 지식이 일부 필요하게 되고, 이는 기초과학에서 대부분 기인하게 된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학자들이 연구할 환경이 충분히 조성되어 있어 기초과학의 바탕이 제대로 깔렸다면, 그로부터 양질의 교양서도 많이 나왔을 것이다. 허나, 이미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나라의 이공계 기피현상은 그 정도가 극도로 심하여 비전공생인 내가 봤을 때에도 미래가 심히 우려될 정도이다. 이런 현실에서 과연 양질의 교양서가 쉬이 나올 수 있을까. 혹자는 정재승 씨의 "과학 콘서트"를 반례로 내세울수도 있겠지만, 일반인들의 과학 교양서에 대한 관심이 유독 그 한 권에만 쏠려서 기형적 판매고를 보였다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그만큼 우리나라의 교양서적 배경이 일천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에 오히려 슬퍼질 뿐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라는 교양서 한권이 얼마나 전세계적으로 많이 읽혔으면 우리나라에까지 번역이 되었을까. 그러나, 우리나라 출신 교양서적 중에서 과연 그렇게 세계로 뻗어나간 것이 몇 권이나 될까.
  기초과학의 그다지 밝지 않은 미래는 단순히 자연과학분야에만 닥친 문제가 아니라 내가 직접 관계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관계할 인문 사회과학 분야에도 해당되는 문제이다. 요 며칠간 동아일보에 게재된 '인문학 위기'에 대한 기사들을 보면, 인문 사회과학 분야 역시 그 층이 점차 얇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학생들은 당장 졸업 후 취업을 먼저 생각하여 진정한 '학문 (學問 : 배우고 물음)'에는 관심이 없고, 실용적인 지식만 학원에서 '취득'하고자 한다. 사회 역시 대학에게 '학문'보다는 실용 '지식'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런 풍토에서 과연 인문 사회과학이 제대로 발달할 수 있을까. 자연과학에서는 그래도 세계 상위권에 들지만, 인문 사회과학에서는 그 세계적 수준이 현격히 낮다는 현실을 떠올리자면 사회과학도로서 이공계 기피 현상보다 더 걱정되는 것이 당장 내 자신이 직면한 '인문 사회과학 기피 현상'이다. 자체적 학문의 층도 충분히 배양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반인들의 흥미를 끌며, 필요한 지식을 제공할 수 있는 교양서적이 과연 탄생할 수 있을까.
  이런 기초과학의 부실성에는 '학문의 종속성'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영향을 끼친다. 물론, 우리나라가 지금껏 알지 못했던 지식을 외국으로부터 들여올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허나, 외국의 언어로 쓰인 외국의 지식을 흡수하는데 급급하여, 우리의 관점에서 우리의 사고로 이루어내는 학문은 사라진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된다. '온고지신'은 단순히 과거의 지식을 그대로 뱉어내는데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새로이 소화해 내는 것'에 그 의미가 있다. '학문'은 단순히 '학 (배움)'으로 의미를 갖지 못한다. '문 (물음)'으로부터 새로운 의미를 생성해내고, 또 '내 것'이 되는 것이다. 왜 우리는 이 간단하면서도 자명한 진리를 어느새 망각하고 학문을 할 때 겉은 노랗지만, 속은 하얀 '바나나'가 되려고 노력하는 걸까. 잘 쓰지도 못하는 글을 끄적거린 한 사회과학도의 오래되었지만, 아직 정제되지 않은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