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19세기 문명 (2)
.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변화의 방향이나 속도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라면 당연히 그 변화는 억제되어서라도 공동체의 안녕을 위협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19세기 영국에서 자유주의와 공리주의에 의해 추동된 경제 성장의 옹호와 공동체적 통제에 대한 비난은 이 같은 상식을 소멸시켜 버렸다. 이 같은 경제적 자유주의의 오류는 산업혁명보다 이미 훨씬 더 먼저 경제 개발 논리를 앞세워 삶의 터전을 파괴한 바 있는 - 비록 궁극적으로는 사회 전체의 부를 증대시켰을지라도 - 종획운동enclosure를 살펴보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종획운동 같은 경제 개발은 결국 보상효과 - 농업이 목양업이나 양모 제조업으로 바뀌고, 서비스업이 자동차제조업으로 바뀌는 등의 과정을 걸쳐서 형성되는 장기적 균형을 가능케 하는 것 - 를 가져왔지만 이는 시장경제의..
19세기 문명의 붕괴에 가장 결정적인 것은 국제 금본위제의 소멸이었다. 세력균형 체제, 자기조정시장, 입헌 국가라는 다른 세 가지 기둥과 같은 제도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국제 금본위제의 붕괴로 말미암은 19세기 문명의 몰락은 막을 수 없었다. 사실 19세기 체제의 모태는 자기조정시장이었다. 국제 금본위제는 국내적 자기조정시장의 국제적 버전이었고, 세력 균형 체제는 이에 의존하는 상부구조였다. 입헌 국가 역시 자기조정시장의 피조물이었다. 그러나 자기조정시장이라는 개념은 그야말로 유토피아적이었다. 따라서 실현 불가능한 개념을 실현하려고 한 결과, 파국은 처음부터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사실 이처럼 하나의 개념을 통해 문명의 붕괴를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는 그야말로 억지로 보이기 쉽다. 다양한 요인의 상호작용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