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교양 (3)
.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마르셀 뒤샹, Bottle Rack "중세 서양에서 썼던 고문도구처럼 보이기도 하고, 냇가에서 고기잡을 때 쓰는 통발 같아 보이기도 한다. 각 단(층)마다 접합되어 있는 돌기들이 무규칙적으로 있는 것을 보아 단순한 철제골조물이 아니라 발산의 느낌을 표현한 듯 하다. 뒤로 갈수록 좁아지는 구조물의 형태는 거꾸로 수렴을 느끼게 한다. 수렴과 발산이 동시에 나타나는 인간의 양가적 감정같다. 원형의 크기가 커져도, 작아져도 돌기(인간)간 거리는 변하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 인간 간의 최소한의 거리의 상징이다." 사진에 있는 뒤샹의 작품을 본 뒤 했던 단평이다. 쓰고 나서 다른 사람들의 평을 들은 뒤에야 스스로가 얼마나 현학적인지 깨닫게 되었다. 심지어, 이것이 어떠한 심미적 가치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맥주..
‘한국 지성의 죽음’이란 이 글의 제목은 주말 잠결에 부고처럼 나에게 찾아왔다. 무심코 받았다가 눈을 부비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쓸 수 있는 것은 기껏 ‘나의 죽음’뿐이다. 물론 내가 한국 지성의 대표는커녕 지성 축에 끼인다고도 절대로 생각하지 않지만 ‘한국’ 지성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이 글은 그런 이유로 내가 지성이라는 가정 하에 쓰는 지극히 서글픈 개인적 유서 같은 것에 불과하다. 나 자신을 지성이라고 말하기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음은 지성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와 관련되는데, 지성을 ‘권력과 자본을 위시한 모든 권위와 압력으로부터 독립한 자유로운 아웃사이더 아마추어 자유인-교양인-全人의 심성과 실천’이라고 보면 더욱 그렇다. 지성을 이와 다르게 정의하는 예도 많지만 이 글에..
어제, 올해 마지막 노숙자 인문학강의를 했다. 괴상망측한 우익 역사교육 소동으로 시끄러운 탓만은 아니었지만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주제로 관련 영화와 예술작품들을 함께 보았다. 북한 배경의 007영화에 동남아의 집과 물소가 등장하는 것을 보고 아이들처럼 함께 웃은 것을 시작으로 서양의 동양침략을 정당화한 수많은 영화나 그림들을 노숙인들은 정확하게 보고 비판했다. 그 대부분은 그들이 생전 처음 보는 것임에도 그러했다. 아는 만큼 본다고? 아니다. 보는 만큼 안다. 아니다. 아는 게 중요하지 않다. 이해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여러 인간, 계급, 민족, 나라들이 서로 이해함이 중요하다. 올봄, 그 강의를 의뢰받자마자 즉시 수락한 것은 1970년대 노동야학 이후 그런 수업이 가장 즐거웠기 때문이다. 물론 돈 없이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