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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 / Zenol

마키아벨리즘만이 정치를 달성할 수 있을까

zeno 2009. 8. 26. 00:20

정치학에서 자주 나오는 말 중 하나로 마키아벨리즘이라는 것이 있다. 마키아벨리가 썼던 <군주론>을 모태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용인술을 포함한 온갖 권모술수를 다 사용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근대 이후, 서구와 서구에 의해 '계몽'된 비서구의 정치와 관련된 영역에서 <군주론>은 그야말로 성경이 되었고, 마키아벨리즘은 그 복음이 되었다.
  최근 MBC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두 개의 마키아벨리즘이 공존하고 있다. 극 초반부터 주연보다 더 주연같이 드라마를 이끌어 온 고현정의 '미실'의 철저한 마키아벨리즘과 언니 천명공주가 죽은 뒤 일종의 '각성'을 거친 이요원의 '덕만'의 마키아벨리즘이 바로 그것들이다. 특히, 오늘 일식을 놓고 두 정치가 간에 벌어진 지략대결은 그야말로 마키아벨리즘끼리 부딪치며 살과 피가 튀는 살벌한 전장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과적으로, '인의'를 내세우던 덕만이 어설픈 마키아벨리즘을 구사하고 있다고 믿게 된 미실의 마키아벨리즘이 그 허점을 이용한 덕만의 마키아벨리즘에게 졌다. 미실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던, 그 용인술에서 이긴 것이다.
  우리는 다시금 마키아벨리즘의 '현실성'을 내면화하게 된다. 자, 봐라. 아무리 마키아벨리즘이 비열하네, 목적만을 추구하다보니 수단이 정당하지 못하네, 인간을 어떻게 도구로 이용할 수 있네, 하더라도 결국 덕만도 그 마키아벨리즘을 통해 마키아벨리즘을 꺾지 않았는가. 이렇게 지배 정치세력에 대항하는 피지배 정치세력의 마키아벨리즘은 정당화된다. 하지만 만약 덕만이 미실을 꺾고 최후의 승자로 남는다면, 그 마키아벨리즘은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덕만을 '제2의 미실'로 만들 것인가.
  역사적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초한지의 최후 승리자였던 한왕 유방은 기이한 매력으로 인재들을 그 휘하에 끌어모았다고는 하지만 그 역시 철저한 마키아벨리스트였다. 자기 한 몸 살아남기 위해서 달리는 수레에서 제 손으로 딸과 아들을 집어던지기도 했고, 속마음을 숨기고 나이로 조카뻘인 항우에게 형님 소리를 서슴치 않았으며, 결국 천하를 차지한 뒤에는 '제2의 항우'가 될 수 있는 이들을 그야말로 '토사구팽'했다.
  흔히 마키아벨리즘을 비판하며 '인의' 혹은 '인간성', '도덕' 내세우면 비현실적이라 비판받는다. (닭살 돋는다고 싫어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하지만 과연 인간성의 회복을 기치로 내세우며 현행 체제의 전복을 꾀했던 이가 마키아벨리즘을 통해 권력을 획득한다면, 그/녀는 과연 스스로 내던졌던 인간성을 다시금 회복할 수 있을까. 최후의 승리자로 남은 뒤 인의를 내세우는 것이야말로 가장 '마키아벨리적'인 태도가 아닐까.
  일반적으로 정치를 달성한다는 것은 권력을 획득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방법론으로는 대개 마키아벨리즘이 손꼽히곤 한다. 하지만 과연 마키아벨리즘이 정치를 달성할 수 있을까. '인민의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이념이 이미 너무나도 대중화된 현실에서 사람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여기는 마키아벨리즘이 적용된다면 그 결과물은 과연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까.

덧. 아, 비담, 너무 섹시하게 잘생겼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