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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간의 지도 : 달력 <★☆> [시간/달력/인식] 본문

평 / Review

[수학] 시간의 지도 : 달력 <★☆> [시간/달력/인식]

zeno 2006. 12. 3. 17:03

시간에 대한 중요한 인식의 전환

시간의 지도 : 달력
E.G. 리처즈 지음, 이민아 옮김/까치글방

  달력은 오늘날 우리 일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있다. 매일매일 바쁜 일상에 쫓겨 사는 현대인이지만 우리는 수시로 오늘이 몇 월 며칠인지를 확인하고, 각자의 일정을 다이어리나 책상 위 달력에 적어놓곤 한다. 자연히, 달력은 ‘꼭’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안 하지만, 없으면 뭔가 아쉬운 존재다. 달력이 굳이 생활의 필수품은 아니더라도,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이다.
  현대인뿐만 아니라 고대로부터 인류는 달력과 함께 해 왔다. 한 예로, 이집트 나일강의 범람과 관련해 고대 이집트 인들은 시리우스 별을 관측하여 나름의 달력을 만들었었다. 매년 주기적으로 범람하는 나일강은 당장 강 주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저주인 한편, 범람했던 물이 빠진 뒤에는 토양이 기름져지기 때문에 다시금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만들어주는 신의 축복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생명 피해를 줄이는 한편, 다시금 살아가기 위해 나일강의 범람 주기를 파악 및 예측하고 대비하는 기술을 발전시켰다. 그 기술의 핵심이었던 시리우스 관찰은 자연히 사람들로 하여금 달력의 원형을 발전시키도록 이끌었다. 이외에도, ‘식(食)’을 해결하기 위해 농사를 지어야만 하는 고대인들에게 파종기와 경작기, 그리고 추수기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생존과 직결되어있는 필수적인 기술이었다. 이런 필요성 때문에, 고대인들로부터 달력의 필요성은 대두되었고 계속해서 발전해왔다.
  보다 정확한 달력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은 1582년에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주도하여 로마 시대 이래로 내려져오던 기존의 율리우스력을 고쳐서 새로운 형태의 태양력을 만들기까지 수천 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어왔다. 그 구체적인 형태는 이집트의 태음력 ․ 상용력 ․ 중국의 태음태양력 ․ 인도의 태양력 등 국가마다 다른 기준을 갖고 만들어졌고, 한편 켈트력 ․ 튜튼력 ․ 아이슬란드력 ․ 로마력 등 국가나 지역 혹은 민족의 특성을 반영하는 형태로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이런 달력의 형성 과정에는 천문학의 발전이 선행되었다.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기 이전까지도 사람들은 천체 관측을 통하여 똑같은 계절이 돌아오는 것이 한번 해가 뜨고 진후 다시금 해가 뜨기까지의 시간인 하루가 약 365번 전후로 반복되면 1년이 지난다는 것을 파악한 것이다. 물론, 1년이 정확히 며칠인가에 대해서는 각 지역의 달력마다 다른 날 수를 기준으로 삼았고, 종종 틀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윤달 혹은 윤년의 도입, 달력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1년을 제대로 맞추기 위해서는 엄연히 존재하는 날 등의 상정 등을 통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여나갔다. 뿐만 아니라, 달력의 발전과 함께, 여러 종류의 진법 및 수비학이 발전하였다.
  이 책, 『시간의 지도 : 달력』이 내게 갖는 가장 큰 의미는 역시 달력에 대한 중요한 인식의 전환을 하도록 이끌었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 여러 부와 장을 나누어 달력과 관련된 개략적인 역사와 각 지역에서 어떤 형태로 어떤 과정을 거쳐 달력이 발전하였는가를 서술한 부분은 체계적으로 이루어져 있어 이해하기 쉬웠다. 하지만 내가 달력 전공자가 아니기에, 그보다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수 체계와 시간관념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봄으로써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 더 큰 의미로 와 닿는 것이다.
  그런 인식의 전환을 하게 이끈 구체적인 개념은 ‘속세시’ ․ ‘주야평분시’ 등이다. 먼저, 속세시(temporal hour)란 동틀 녘에서 해질녘까지 길이를 1/12정도로 나눈 시간이다. 명문화된 시간이 아니기 때문에 자연히 속세시 한 시간의 길이는 계절별로 달라지며, 겨울보다 여름에 더 길었다. 한편, ‘주야평분시’란 부정확한 속세시의 개념이 천문학자들에게 불편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기원전 2세기에 히파르코스가 천문학적인 용도로 하루를 24주야평분시로 분할한 데에서부터 유래된 개념이다. 이 시간은 낮과 밤의 길이가 똑같은 춘분 혹은 추분일의 시간 길이를 토대로 한 단위이다. 당연히, 주야평분시 한 시간은 말 뜻 자체가 의미하는 바대로 24시간 전체가 계절과 무관하게 똑같고, 이는 오늘날의 우리가 사용하는 ‘한 시간’의 개념과 유사하다. 참고로, 프톨레마이오스는 『알마게스트』에서 1주야평분시를 60분으로 분할하였다.
  이런 독특한 개념의 시간들이 내 인식을 전환토록 한 이유는 오늘날 내가 받아들이는 시간 개념이 전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새삼스럽게 깨닫도록 이끌었기 때문이다. 과거 사람들은 1속세시처럼 자신의 삶에 가장 필요한 기간 동안의 시간을 ‘한 시간’으로 삼았고, 또 그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나는 자연히 60분으로 이루어진 1시간을 ‘한 시간’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살아가고 있다. 인식의 차이가 너무나도 큰 것이다. 만약 내가 오늘날의 관점에서 과거 인들을 ‘이상하다’고 치부한다면 이는 내 ‘주관’에 싸여버린 ‘독선’일 뿐이다. 다행히도 나는 그 점을 인식하고 있기에 이 책을 읽는 과정에서 잘못되었던 내 인식을 다시금 전환할 수 있었다.
  달력은 수천 년간 수많은 사람들이 보다 정확하게 만들고자 기울여 온 노력의 산물이다. 그 덕분에 우리 현대인들은 특별한 오류 없이 시간과 계절의 경과를 인지할 수 있고, 삶의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꼭 오늘날의 달력만이 ‘옳고 자연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다른 상황에서는 충분히 다른 개념의 시간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시간보다 더 적절한 것일 수 있다. 이 책은 독자인 나로 하여금 이를 깨닫게 해 주었다. 그런 점에서 『시간의 지도 : 달력』은 조금 지루하지만 읽을 가치가 충분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