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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 / Review

[예술] [과학] 다 빈치의 유산 <★★> [예술/과학]

zeno 2006. 12. 3. 15:24

  가장 완전한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유산.

다 빈치의 유산
뷜렌트 아탈레이 지음, 채은진 옮김/말글빛냄

  20세기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장 폴 사르트르는 쿠바 ․ 볼리비아 등지에서 활동한 혁명가 체 게바라를 일컬어 ‘20세기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 평한바 있다. 『다빈치의 유산 (원제 MATH & THE MONA LISA)』를 읽고 난 지금, 내가 그 표현을 조금 빌자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르네상스의 가장 완전한 천재’가 아닐까 한다. 표현이 좀 더 유사성을 띠자면 특정 세기의 인물이라 해야 옳겠지만, 그가 15세기 후반과 16세기 초반에 걸쳐 살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특정 세기보다는 르네상스라는 문화적 격변기를 온전히 살아낸 천재라고 하는 것이 보다 적절할 것 같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천재성은 익히 알려져 있는 바다. 하지만 그 명성은 보통 ‘관념적’인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그의 천재성을 관념적으로만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여름 유럽 여행을 하면서 그의 일러스트 ․ 스케치 ․ 발명품 혹은 그 모형 등을 실제로 보고, 이번에 이 책을 읽음으로써 그의 천재성에 대한 내 관념성은 보다 ‘구체화’ 되게 되었다. 책 전반에 걸쳐서도 여러 차례 언급되었지만, 많은 학자들은 레오나르도가 공학에도 관심을 쏟기보다 미술에만 관심을 쏟았더라면 당대 라이벌로 꼽혔던 미켈란젤로보다 훨씬 더 위대한 작품들을 많이 만들어냈을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다시 말해, 레오나르도는 미켈란젤로와는 달리 ‘파트타임 예술가’였다는 것이 책 전체에 걸친 키워드이다.

  책 전반에 걸쳐 그의 그런 분산된 천재성은 여러 차례 입증되고 있다. 저자 뷜렌트 아탈레이가 여러 자료들을 통해 면밀히 조사한 레오나르도의 행적을 되짚어 나가다 보면, 예술에 들인 시간보다 오히려 공학에 들인 시간이 훨씬 더 많았던 것이다. 다른 예술 대가들은 대체로 평소에는 스케치 등 기초를 쌓는 작업에 몰두하다가 의뢰가 들어오면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대작들을 만들어 내곤 하지만, 레오나르도는 달랐다. 레오나르도 역시 그를 둘러싼 주변에 대한 다양한 스케치 등에 몰두한 것은 같았지만, 그의 스케치는 예술뿐만 아니라 무기 ․ 과학 등의 분야와도 직접적인 연관을 맺었다. 레오나르도가 불법성에도 불구하고 깊이 몰두했던 것으로 일반에 널리 알려진 해부 같은 경우도 예술과 과학 모두와 연결되었던 것이다.

  나는 이런 점 때문에 그를 단순히 ‘예술가’라고 부르기 보다는 ‘천재’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는 다른 어떤 예술가들보다도 수학적 연구 혹은 사실 등을 자신의 예술에 활용하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책 전체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라 할 수 있는 ‘황금비’로부터 나온다고 할 수 있는 황금 직사각형 ․ 황금 정사각형 ․ 황금 피라미드 등이 레오나르도의 작품 세계 전반에 관련되어있다. 물론 그 외에도 서구의 많은 예술가들이 예술 작업을 할 때 황금비를 많이 사용하였다는 점은 저자가 수차례 언급한다. 하지만 역시 레오나르도만큼 의도적으로, 또 세밀하게 황금비를 사용한 예술가는 없었던 것 같다. 많은 예술가들이 황금비를 때때로 의도적으로 활용하기는 하였지만, 무의식적으로 혹은 경험적으로 황금비를 활용한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레오나르도가 얼마나 황금비를 능수능란하게 활용하였는지는 <지네브라 데 벤치> ․ <흰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 ․ <모나리자> 등의 ‘유명한 여인 초상화 3점’ 뿐만 아니라 여러 작품에 걸쳐 입증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천재성은 수학적 연구로부터 더 나아간 그의 과학적 발견들이 수백 년 이후 등장한 학자들의 업적을 일찌감치 예견했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세간에 익히 알려져 있는 비행에 대한 관심 및 설계 외에도, 레오나르도는 훗날 코페르니쿠스가 주장한 태양중심설의 근본 원리인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라는 주석을 노트에 남기기도 하였고, 1세기 후 갈릴레오가 실험한 바 있는 진자와 낙하 물체를 이용한 실험들도 미리 했었다. 게다가, 그의 연구가 실려 있다고 할 수 있는 여러 노트들 중 하나인 『코덱스 아틀란티쿠스』에 실린 각도 조절이 가능한 수직으로 세워진 관 바닥에 오목거울을 설치하고 여기에서 반사되는 빛을 연구한 내용은 2세기 후 뉴턴이 발명한 반사망원경의 원리와 유사성을 띠고 있다. 이처럼 레오나르도가 일생동안 보인 폭넓은 분야에 대한 깊은 관심은 르네상스 이후 근대 ․ 현대에 걸쳐 급속도로 발전한 과학의 상당 부분을 미리 탐구하였던 것이다.

  이 책은 이런 레오나르도의 천재성을 맛보게 해 준 괜찮은 교양서였다. 하지만 독자의 주의를 좀 산만하게 하는 측면이 있었다. 레오나르도 개인에게만 초점을 맞추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로부터 촉발된 파장 등을 다루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뉴턴을 지나 아인슈타인의 양자역학 등까지 이르러서는 너무 범위가 넓어졌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한편, 앞부분에서 오늘날 피보나치로 많이 알려져 있는 피사의 레오나르도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이름이 같다고 소개된 부분도 전반적인 이해를 보다 심화시켜 주었다기보다는 주의를 분산시키는 역할이 컸다. 저자가 애초에 집필할 때 너무 큰 욕심은 버리고 근본 주제에 보다 천착하였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가 레오나르도로부터 더 나아가 서양 과학사를 다루고 싶었더라면 차라리 별도의 다른 책을 쓰는 것이 더 나았을 것 같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레오나르도라는 예술가의 경지를 뛰어넘은 천재를 보다 알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의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처럼 예술에도 무지할 뿐만 아니라 과학에는 더욱 무지한 인문사회과학도가 ‘친절하다’고 느낄 정도로 지나치게 전문적이지 않은 문체로 알면 좋을 사실들을 전달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이 책을 읽은 것은 지나치게 전공 관련 분야에만 천착되기 쉬운 내 관심을 다양화하는 계기가 되었기에 충분히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