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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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 / Zenol

어느 토요일

zeno 2006. 11. 11. 23:55
  단상들이 여럿이라 정리해보고 싶어졌다.

  1. 오늘도 놀았다. 이것 저것 은근히 레포트가 많은 걸 감안하면 기간이 많이 남았지만 슬슬 하나씩 처리해가야 할텐데 생각만큼 쉽지 않다. 자꾸 놀게 된다. 오늘도 그냥 어영부영 하다보니 하루가 가버렸다. 이러면 또 평일이 고달픈데.

  2. 수능이 5일 남았다. 이상하게 내가 수능을 보는 것도 아닌데 마음이 들뜬다. 수능 뒤에 기대했던 일이 코 앞이어서 일까. 오지 않을줄만 알았던 2007학년도 수능이 코 앞이라니. 자신이 없다.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일이 내 뜻대로 이루어질까. 설레면서도 두려운 5일 후다.

  3. 아리스토텔레스 꽤 굉장한 것 같다. 지금까지 그의 사상을 요약한 글은 여럿 봤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처음 그의 글을 직접 읽어보았다. 물론 번역본이다. 정치학 원론 과제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정치학' 일부를 읽는 중인데 오늘 한번 마음 먹고 읽어 보았다. 박영사 번역본인데 번역은 지랄맞다. 정말 심각하게 안 좋다. 시중 번역본이 이것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산 거지만 정말 비추천. 하지만 그 지랄 맞은 번역 와중에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굉장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짧은 부분에 불과했지만, 설득적이었달까. 때마침 어제 한겨레 서평에서 보고 기회가 되면 사고자 마음먹었던 '니코마코스 윤리학' (이제이 북스에서 나옴)을 거의 반 값에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또 질렀다. 시간이 되면 읽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4. 전태일 평전, 괜찮다. 요즘 읽고 있는데 섬뜩하다. 주로 10대 아이 혹은 여성들이 하루에 14시간씩 주당 98시간을 노동하고 있었다는 부분에서 (당시 근로기준법에서는 주당 48시간을 기준으로 삼았다고 한다.) 재작년에 공상적 사회주의자 로버트 오웬에 대한 글에서 읽었던 산업혁명 초기 영국에서 비슷한 조건으로 착취당했던 아이들과 여성들이 떠올랐다. 지금까지는 6, 70년대 노동 상황에 대한 피상적 이해만을 갖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정말 끔찍했다. 역시 직접적인 텍스트를 보지 않고 간접적으로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실감이 다르다. 전태일 평전을 읽지 않았더라면 그냥 '힘들었지, 정말'이라고 생각하고 말았을 내용을 실감하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 성장 혹은 강제적 발전을 긍정하지는 않았지만 더 '증오'하게 될 것 같다.
  그 뿐이 아니다. 전태일이 막노동 판에 뛰어든 시기를 읽고 있는데, 역시 느끼는 바가 예전과 다르다. 지식인 입네 하고 '관념적'으로 이해하는 거하고 이렇게 느끼는 거 하고는 다르다. 뭐 그래도 내가 지금 이해한다고 지껄이는 것 역시 피상적인 것에 불과하겠지만 그래도 그냥 막연히 힘들겠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것 같다. 직접 체험해보는 것이 필요할까. 또 그것이 지식인의 허세에 불과하다고 비웃음을 사지나 않을까. 조금 두렵다.
  원래 사회적 문제에 대한 관심이 적은 친구에게 선물하려던 책이었는데, 읽다 보니 내가 다 읽고 판단한 후에 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문체가 '평전'에 걸맞는 '중립적'이라기보다는 '편파적' 혹은 '선동적'으로 느껴진다. 나야 그래서 다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입장은 아니지만 그 친구가 행여나 너무 빠지거나 편향된 인식을 갖게 될까봐 우려가 된다. 그래서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

  5. 다시금 하는 생각이지만, 어느 걸 해야할지 고민하거나 무언가 꼭 해야 할 것을 하기 싫어서 딴 짓을 할 바에야는 책을 읽는게 낫겠다. 책을 읽는게 시간을 낭비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서 실천에 잘 옮기지  못하는 것인데 역시 그래도 읽는게 안 읽고 딴 짓으로 낭비하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