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소설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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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 / Zenol

새해

zeno 2009. 1. 5. 15:01
  2009년 첫 해가 떠오른지 5일이 지난 이 시점에서야 이런 제목을 단 글 쓰기가 좀 민망하긴 하지만, 다 사정이 있었다. 사실 달력의 숫자만 바뀌었을 뿐이지, 2008년 12월 31일과 2009년 1월 1일은 고국 이탈이라는 중차대한 거사로 인한 초조함에 시달리는 연속된 나날들에 불과한데, 갑자기 '오늘부터 새해야. 난 바뀌겠어. 이젠 스물둘이라구!' 라는 식의 닭살스러운, 혹은 가식적인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던 거다. (물론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겠다, 라는 평소의 신념도 작용했다.)
  그렇다고 새해 계획이 아무 것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시간과 노력을 많이 기울여 생각한 건 아니지만, 일단 요 근래 계속 생각하고 있는 것은 '혼자 놀기.' 감히 혼자 놀기를 마스터한다던가, 이 시대 마지막 솔로로 남는다던가, 하는 거창한 계획은 세우지 않는다. 그냥 현실적으로 필요하니까 그렇게 하겠다는 것일뿐. 그래서 요 근래 몸소 실천하며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거창한 건 아니다. 그냥 영화 혼자 보러 가기, 길 가다가 식당 혼자 들어가서 밥 시켜 먹기, 카페에서 혼자 책 보며 커피 마시기 정도?)
  인생 80년으로 볼 때, 어디 보자. 지금 만 20세니 이제 1/4 살았다. 별 개념없이 앉은 자리에서 뭉개며 산 최초의 5년 빼고, 그냥 엄마가 이끄는 대로 학교 다닌 10년 빼고, 이후 5년 정도, 그 중에서도 절반 정도 어느 정도 내 마음대로 살았다고 봤을 때, 앞으로의 60년은 지금까지 내가 마음껏 산 인생의 무려 24배에 달한다. 그 중 혼자 지내야 할 시간을 보자. 엄마 아빠는 아무리 오래 살아도 20년에서 40년일테니 평균 30년 잡고. 동생님이랑은 지금도 그렇게 친하진 않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친하진 않을 것 같고. 친구들을 보자. 본래 어려서부터 유별난 성격 탓에 친구를 몇 명 키우지 않은 것도 있지만, 그 중 과연 평생동안 놀 수 있는 친구가 몇 명이나 될 까? (물론 지금도 언제나 늘 함께하는 사람은 없다.) 나를 상당히 높은 등급의 친구로 여겨주는 좋은 사람들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얘야, 그렇다고 내가 너랑 평생 함께할 건 아니잖니? 동성 친구 중에서는 - 안타깝게도 게이가 없어서 - 대부분 곧 지 짝을 찾아 떠날테고, 그러면 나랑 놀아주기 힘들테고, 이성 친구 - 안타깝게도 레즈가 없어서 (아, 있긴 한데 그녀는 나를 친구로서 좋아하지 않는다.) - 역시 곧 지 짝을 찾아 떠날 것이다. (특히 한국이란 공간은 이성 간의 '친구 관계'라는 것을 거의 금기시 혹은 이단시 하는 괴상한 곳이라 지금에야 잘 놀더라도 더 나이먹고 만나기는 '사회적으로' 쉽지 않다.) 이성 친구 중에서 '연인'이란 관계에 돌입할 사람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뭐 지금으로 봐서는 그다지 높지 않다.
  결론은 앞으로의 대략 60여 년을 장기간동안 혼자 지내야 될 것으로 예상되는 바, 하루라도 속히 혼자 놀기에 익숙해질 중차대한 필요성이 도출된다는 것이다. 때마침 아는 사람들과 훌쩍 떨어져 혼자 지내게 되었으니, 이 참에 연습하는 수밖에. 나중에 무슨 일을 하고 살던, 이 스킬은 아마 살면서 가장 긴요하지 않을까 싶다.

  덧. 블로깅의 좋은 점은 취향이 비슷한 사람의 블로그를 통해 영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영감은 이 글과 같이 자유로운 생각의 표출로 이어질 수 있어서 더욱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