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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즐거운 나의 집 <★★★★> 본문

평 / Review

[소설] 즐거운 나의 집 <★★★★>

zeno 2008. 9. 14. 16:58

즐거운 나의 집 - 8점
공지영 지음/푸른숲

  p. 16

  이상하게도 약한 모습을 자꾸 보면 우리는 그 사람을 뭐랄까, 사랑하게 된다. 걱정하게 되고, 에잇, 왜 그렇게 못난 거야, 하면서도 머릿속에서 내쫓을 수가 없게 된다.
  "내가 엄마한테 항의할 수 있는 것은 왜 우리 아빠랑 이혼했느냐는 거야. 그건 내가 항의할 수 있지. 날 놔두고 어떻게 그렇게 가버릴 수가 있냐고...... 하지만 그다음 일은 엄마의 인생이잖아. 중요한 건 엄마가 정말 행복하냐 아니냐잖아."
  p. 48

  "공부도 행복하게 해야 하는 거야. 어떤 대학에 합격하기 위해 오늘을 불행하게 사는 거 그거 좋은 거 아니야. 네가 그 대학에 합격하기 위해 오늘을 견딘다면, 그 희망 때문에 견디는 게 행복해야 행복한 거야. 오늘도 너의 인생이거든. 오늘 행복하지 않으면 영영 행복은 없어."
  ...
  "내가 만일 떨어지면?"
  엄마는 맥주 캔을 놓고 잠시 고개를 갸우뚱햇다.
  "실은 생각해봤는데, 많이 생각해봤는데 상관없더라구. 그게 뭐 어때서? 엄마는 살면서 좋은 대학 나오고 유학까지 갔다 온 박사 교수 의사 이런 사람들 중에 그 좋은 머리와 많은 학식으로 자신뿐만 아니라 남까지 망치는 사람들 많이 보았어. 중요한 건 네가 행복한거고, 더불어 사는 법을 연습하는 거고, 그리고 힘든 이웃을 돕는 거야. 공부를 하고 유학을 가는 거 다 그걸 위해서야. 그게 아니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pp. 56 - 57

  이상하게도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이혼한 가정의 아이들이 왜 불행한지. 그건 대개 엄마가 불행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부부가 불화하는 집 아이들이 왜 불행한지도 어렴풋하게 느껴졌다. 그건 엄마가 불행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아, 이 세상에서 엄마라는 종족의 힘은 얼마나 센지. 그리고 그렇게 힘이 센 종족이 얼마나 오랫도록 제 힘이 얼마나 센지도 모른 채로 슬펐는지.
  p. 64

  "사람을 웃게 만드는 건 대개는 그 말이 핵심을 정확히 찌르고 있을 때니까요."
  p. 81

  "괜찮아, 울어. ...... 우는 건 좋은 거야. 좀 정리가 된다는 거거든. 맘속에 나쁜 열기가 가득하면 온몸의 물기가 다 말라버려서 울지도 못해. ...... 그러니까 괜찮아. 울고 싶은 만큼 실컷 울어."
  p. 85

  "어떤 순간에도 너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을 그만두어서는 안 돼. 너도 모자라고 엄마도 모자라고 아빠도 모자라....... 하지만 그렇다고 그 모자람 때문에 누구를 멸시하거나 미워할 권리는 없어. 괜찮은 거야. 그담에 또 잘하면 되는 거야. 잘못하면 또 고치면 되는 거야. 그담에 잘못하면 또 고치고, 고치려고 노력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남을 사랑할 수가 있는 거야. 엄마는...... 엄마 자신을 사랑하게 되기까지 참 많은 시간을 헛되이 보냈어."
  p. 158

  언젠가 엄마가 사랑의 결핍은 그것이 다시 채워짐으로써도 치유되지만 누군가에게 사랑을 줌으로써도 치유된다고 했다.
  p. 228

  "네가 원하는 것을 해라. 괜찮아......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하는 자유는 인내라는 것을 지불하지 않고는 얻어지지 않는다.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자유롭게 피아노를 칠 때까지 인내하면서 건반을 연습해야 하는 나날이 있듯이, 훌륭한 무용가가 자연스러운 춤을 추기 위해 자신의 팔다리를 정확한 동작으로 억제해야하는 나날이 있듯이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그것을 포기해야 하는 과정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pp. 332 - 333
 
  나는 버스비조차 없는 그를 위해 책을 샀고, 차와 술을 샀다. 그리고 그에게서 혁명이라는 단어를 배웠다. 혁명, 이라니. 누가 이런 꿈꾸는 듯한 단어를 가르쳐준 일이 있었던가. 스물의 엄마에게 그것은 생을 걸고 한 번쯤 도전하고 싶은 낭만의 극한, 정의의 결정체, 혹은 박해받는 진리의 표상이었어. 나는 그를 존경했고, 그리고 숭배했다. 상상해볼 수 있니? 가난도, 투옥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밤새워 책을 읽고 시를 쓰는 스물의, 다리가 길었던 젊은이를.